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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최기자 May 27. 2024

[서평] <아우슈비츠의 자매> (록산 판이페런)

예술을 사랑한 두 자매가 피운 조용한 혁명 이야기

증오와 파괴의 광풍에 맞선 두 자매의 평범하고 위대한 투쟁.

홀로코스트의 광풍 속 사랑과 우정, 존엄과 웃음을 이야기한 영화같은 기록.


두 자매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탄압이 절정에 이른 네덜란드에서 태어났다. 유럽 전체가 반유대주의 광풍에 휩싸이며 자매들은 미래도 모른 채 나치 수용소에 끌려간다. 극한의 상황에서 동료들을 아끼고, 평범한 사랑을 하고, 인간이 최후의 순간까지 존엄할 수 있음을 보여준 그들의 삶이 남긴 증언은 어떤 예술작품보다 강렬하다.

책은 이들이 외적인 박해보다 내면의 갈등과 목소리에 더 괴로워했다고 전한다. 책 속에서 두 자매는 증언한다. 

전쟁과 박해, 폭력이 모두 내 망상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나를 괴롭게 했다.
전쟁의 가장 큰 공포는 내가 믿는 모든 것을 의심하게 했다는 것이다.



신뢰와 배려라는 단어가 ‘사치’가 되어버린 시간. 절망과 고독 속에 삶을 사랑하고 증오와 배척보다 사랑과 포용을 퍼뜨리며 살아간 자매의 이야기는 요즘 시대와 알게모르게 닮아 있다. 나치 시대와 현시대는 폭력의 정도와 방법은 다를지언정, 사람이 사람을 싫어하는 문화, 허무주의와 환멸이 가득해 서로가 서로를 잠재적 범죄자나 위험요소로만 보는 문화 속에서 모두 감옥 속에 사는 기분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

 


‘악의 평범성’을 이야기한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유대인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뒤 이런 말을 남겼다. “대부분의 악은 악한 의도보다 ‘생각하지 않는 것’에서 비롯된다.” 선을 향한 의지의 부족, 인간 존재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신뢰를 갖지 못하고 파괴적인 신념에 편승하고 동조하는 게 바로 악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현대의 시대정신은 나치즘 만큼이나 위험한 요소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치의 망령이 자아 폭발, 숭배 의지 과잉으로 인간이 세계를 파괴하려 한 것이었다면, 소위 '포스트모더니즘’이라 불리는 현대 철학은 인간 존재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부정하는 데 혈안이 돼 있다. 인본주의가 가져온 문제점이 전쟁, 환경오염 등이라는 주장에는 충분한 일리가 있지만, 앞에 빠진 수식어를 붙여서 들어야 한다. ‘(오만한) 인본주의가 세계와 인간을 파괴시키고 있다’는 말로.



도스토예프스키는 ‘개인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악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말을 남겼다. 미친 주장처럼 들리지만, 20세기 초반의 격변기에 전쟁과 폭력, 허무주의가  세상을 뒤덮을 것이라는 경고가 아니었나 싶다.


세상을 바꾸려 하기 전에
먼저 당신 자신부터 바꿔라.


세대나 나이를 기준으로 일반화하는 말을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하지만 상당기간 학생들을 가르치며 느낀 점은, 내가 속해있기도 한 MZ 세대가 유난히 성미가 급하고 ‘세상을 바꾸는’ 무언가를 보여주겠다는 과욕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이다. 글쓰기 첨삭을 할 때마다 이런 점을 여실히 느꼈다. 세상의 문제를 발견하고 여기에 참여의식을 가지려는 건 좋지만, 충분한 숙고와 준비가 뒷받침되지 않은 열정은 항상 파괴적이다. 잘못하면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닌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란 구호를 앞세운 또다른 나치가 될 수 있다. 항상 꼬리가 개를 흔드는 걸 경계해야 한다.



모든 것을 빼앗긴 척박함 속에 두 자매가 느끼고 말하려 했던 건 뭘까.

아마 엉성한 교훈보다 자매들의 생생한 증언이 더 많은 말을 해줄 듯하다.


“처음엔 직장이었다. 다음엔 학교에서, 집에서, 고향에서 쫓겨났다. 이웃을 잃고 친구를 잃었으며, 가족과 자유를 빼앗겻다. 마지막에는 옷도, 머리칼도, 그림자까지도 빼앗겼다. 하지만 중요한 건 본질이었다. 내가 지켜야 할 것, 나의 본질, 나 자신. 그것만은 뺏기지 않으리라.”
--- 353쪽 〈그 무젤만을 아시나요?〉


“주여, 소련이 중요한 전투마다 승리를 거둘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영국과 미국이 서유럽에 두 번째 전선을 구축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소서. 바라건대 파시스트 놈들이 하루빨리 망하게 해주시고 히틀러는 뒈지게 해 주시옵소서.”


“또한 우리 모두가 최후의 승리를 맞는 그날까지, 견딜 수 있는 힘을 주소서. 그리고 이 슬픔을 미래에 대한 희망과 꿈으로 이겨내도록 도와주소서.“
--- 90~91쪽 〈병역 기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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