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고향은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다. 북한과 가까워서 어쩌면 섬 주민보다 군인이 더 많았던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 시절엔 꼴 먹이던 아이였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집으로 달려가 책가방을 마루에 획 던져놓고 외양간에 있는 소를 끌고 산으로 향했다. 꼴 먹이는 아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산으로 모여들었다. 소는 산골짜기에 몰아 넣으면 골짜기를 왔다 갔다 하며 풀을 뜯어 먹었다.
아이들은 여기저기에서
“와 더덕이다.”
“여기는 산딸기 천지네”
라고 외치면, 소리 나는 곳으로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 갔다. 배가 고픈 아이들은 온 산을 돌며 더덕이며 산딸기, 칡뿌리 등을 캐어 먹고 배가 차면, 말타기, 공기놀이 등을 했다. 그러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면 잔뜩 배부른 소를 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신나게 하루를 보낸 아이는 저녁을 먹고 나면 바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초등학교 생활이 끝나고 중학생이 되어 소녀가 되면서, 소 돌보는 일은 동생의 몫이 되었다. 공부에 흥미가 없었던 소녀는 학교 가는 길이 즐겁지 않았다. 특히 수학 시간은 졸음을 참기 위해 몸부림을 쳐야 했다.
어느 날 수학 시간에 먼 산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는데 수학 선생님과 눈이 딱 마주쳤다. 얼마나 놀랬는지 마른 침을 삼키며 고개를 슬며시 내렸다. 시간이 지나 살며시 고개를 들었는데, 또 마주쳤다. 어쩌다 마주친 것이겠지 생각하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다시 칠판을 향하여 고개를 든 순간,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나를 보고 있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수학 시간이 끝날 때까지 고개를 들 수가 없었고, 놀란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다. 종이 울리고 선생님이 교실 문을 열고 나가자 바로 벌떡 일어나 뒷문으로 정신없이 교실을 빠져나왔다. 왜 나를 보고 계셨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머릿속은 그 장면이 떠올랐다.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와 수학 시간에 선생님과 눈을 마주쳤던 순간을 생각하니 잠도 오지 않았다. 왜 자꾸 눈이 마주쳤을까!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그렇다면 왜!
그날 이후 수학에 관심 두게 되었다. 수학 선생님에게 잘 보이고도 싶었고 수학을 잘하고 싶어졌다. ‘어떻게 수학을 잘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수학을 좀 가르쳐 줄래?”
그녀는 공부 잘하는 동생에게 기초부터 다시 배워야 겠다고 결심했다.
동생은 잘 못 들었다고 생각했는지,
”수학을?“
하고 되물었다.
”응“ 수학을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동생은 의외라는 눈초리로
”갑자기! 별일이네“
하며 믿을 수 없다는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았다.
”해 줄 거지?“
간절한 마음을 담아 동생의 눈을 주시했다.
동생은 대답하며 물었다
”알았어. 언제 몇 시 할 건데?“
나는 동생의 마음이 바뀔까봐 얼른 대답했다.
”오늘부터, 아버지 잠들면“
아버지는 등잔 기름을 아끼기 위해 아홉 시면 불을 끄게 해서 몰래 촛불을 켜고 해야 했다. 다행히도 동생은 싫다는 말 없이 언니를 위해 기꺼이 과외 선생님이 되어 주었다.
그렇게 동생의 수학 과외 수업이 시작되었다. 어렵고 두렵기만 하던 수학 시간이 기다려졌다. 수학 선생님은 한 달에 한 번 시험을 보게 했다. 그리고 가장 점수가 높은 학생에게 수학반장을 하게 했다. 난 수학반장을 해보리라 마음먹었다. 그렇게 수개월이 지났다.
그해 마지막 수학 시험을 치는 날이 왔다. 수학 시험지를 들고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섰다.
”시험지 뒤로 돌려“
선생님의 매서운 눈초리를 느끼며 시험을 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너무 긴장되어 손이 떨렸다. 마음을 진정시키며 시험 문제에 집중해 보니 대부분 아는 문제였다. 드디어 끝나는 수업 종이 울렸다. 시험지를 걷어 선생님이 교실을 나가자
”와 해방이다."
누군가 소리쳤다.
며칠 후 기다리던 수학 시간이 되었다. 선생님은
”이번 달 수학반장은 명아주다. 명아주 앞으로 나와"
내가 앞으로 나가자 선생님은
"박수"라고 말하자 반 아이들이
” 짝 짝 짝“ 박수를 쳤다.
소녀는 뛸 듯이 기뻤지만, 앞에 서니 쑥스러워 얼굴을 들지 못한 채 몸을 굽혀 인사 한 후 아무 말도 못 하고 서둘러 자리로 돌아와 앉으니 긴장이 풀리며 동생이 생각났다.
선생님의 그 시선은 소녀에게 수학 공부를 잘하고 싶은 의지를 주었고. 수학 반장까지 도전하게 하는 동기가 되었다. 소녀는 그 경험을 통해 공부 못하는 아이가 아니라 공부하지 않았던 아이였음을 알게 해주었다. 글을 쓰다 보니 잊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살아나서 아프기도 하고, 미소 짓게도 했다. 중학교 때 눈을 마주쳐 주신 수학 선생님은 지금도 내 기억 속에 살아있다.
꼴 먹이던 그 아이가 이제는 이순(耳順)이 넘었다. 그녀는 글쓰기를 통해 또 다른 삶을 열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