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마르트 지역은 분명 관광객들로 일 년 내내 붐비는 곳이지만, 늦은 밤, Sacré-Coeur 대성당과 Moulin Rouge 주변을 제외한 동네 길거리는 꽤나 한산해진다. 기분 전환으로 밤 산책 하기 딱 좋은 그런 분위기. 그래서인지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주민들도 저녁엔 특히 발걸음에 여유가 있다.
몽마르트 동네에 위치한 우리 집은 건물 1층이다. 3 년 전 여름, 조용한 밤, 난 다가오는 내 생일을 맞아 친구들과 하우스 파티 중이었다. 솔솔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좋아서 활짝 열어놓은 창문을 통해 밤처럼 새카만 털뭉치가 갑자기 거실로 툭 하고 들어왔다. 열댓 명이었던 우리의 시선을 순식간에 빼앗아 참 빠르게도 움직이던 그것(?)은 바로 조그마한 고양이였다.
초대도 안 받고 온걸 퉁이라도 치려는 듯, 거실을 한 바퀴 돌며 애교란 애교는 다 피우던 고양이. 모두가 신기해하며 열심히 예뻐해 주니 고양이는 자연스레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떡하니 누웠고, 금세 골골, 하고 귀여운 소리를 내며 잠들어 버렸다 - 엄청 피곤하기라도 하다는 듯이. 자기 집인 것 마냥 넉살 좋은 그 모습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새카만 털뭉치의 목에 채워져 있던 목걸이가 눈에 들어왔다. 그 목걸이에 달린 방울이 특이하게 생겼다, 싶어 돌려서 열어보니 그 안에는 작게 접은 쪽지가 들어있었다. 쪽지에 적힌 건 꾹꾹 볼펜으로 눌러쓴 한 전화번호와 메시지였다 - 대강,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툴루즈예요. 저는 밤에 몽마르트를 산책하고 남들 집에 놀러 가는 게 취미예요. 혹시 제가 집에 가려고 하지 않으면 이 번호로 연락하세요, '라고 적힌.
툴루즈는 한두 시간쯤 푹 자고 자정이 되기 전, 다시 창문을 통해 훌쩍 떠났다. 아무래도 생일 주인공이 케이크 촛불 끄는 걸 보는 데에는 별 관심이 없었나 보다. 너무 홀가분히 떠나는 그 모습이 너무 웃겨서 없어서 쪽지에 적힌 번호로 당신의 고양이가 다녀갔다고 문자를 보내니, 얼마 안 가 그를 돌봐 주어 고맙다는 상냥한 답장이 왔다.
맘껏 동네를 나다니며 발길 닿는 대로 찾아가 주민들의 예쁨을 온몸으로 다 받고, 짧고도 긴 밤 끝에 돌아갈 따듯한 집이 있는 툴루즈는 참 행복할 것 같다. 이 조그마한 고양이가 자유로울 수 있는 건 어디든 초대받지 않아도 환대해 주는 주민들의 따스함과 그런 따스함을 믿어주는 툴루즈의 집사 때문이 아닐까? 사랑스러운 툴루즈. 너 덕분에 내가 우리 동네를 한층 더 좋아하게 됐다는 걸 넌 모르겠지.
그 후로 밤에 창문을 열면 툴루즈가 또 오지는 않을까, 하고 힐끔 밖을 쳐다보고는 한다. 한 번도 다시 온 적이 없어 서운했는데, 최근에 친구를 만나고 집에 오는 길에 딱 마주친 낯익은 검은 고양이. 그는 작은 인파에 둘러 쌓여 카메라 세례를 받고 있었다. 그런 인기는 익숙하다는 듯 참 편해 보였던 툴루즈. 날 알아볼 리는 없지만, 가까이 가서 손을 내미니 촉촉한 코로 손뽀뽀를 해주고는 홀연히 떠나 버렸다.
몽마르트르 언덕의 스타 불청객, 툴루즈를 소개합니다. 조심하세요, 무작정 찾아와 당신의 맘을 훔치고서 그 뒤로는 코빼기도 안 보이니까요 :,(
(흥칫뿡)
몽마르트 지역에서 검은 고양이는 상징적으로 여겨진다.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반 보헤미안 문화의 중심지였던 이곳에서는 자유로운 분위기와 독창성에 검은 고양이가 줄곧 연관되었기 때문이다. 검은 고양이를 그려낸 무수한 예술 작품들만 보아도 그 상징성은 의미가 깊다. 프랑스에서도 종종 부정적으로 인식되곤 했던 검은 고양이는 그 당시 예술가들의 자유분방하고 창의적인 시각을 통해 재해석되어 지금까지도 보헤미안 문화와 이 지역의 마스코트로 여겨진다.
Théophile Steinlen, "Tournée du chat noir de Rudolphe Salis" (1896)/public domain
그리고 그 시절, 예술과 창작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몽마르트의 핫플레이스는 Le Chat Noir('검은 고양이')라 고 불리는 카바레였다. 창립자이자 주인 Rudolphe Salis의 의도대로 여러 계층의 파리지앙들이 어울려 음주와 함께 다양한 공연을 즐길 수 있는 자유로운 문화가 깃들었던, 그리고 여러 화가, 작가, 뮤지션이 모여 서로의 작품을 공유하고 토론할 수 있던 소중한 공간. 다양한 파리지앙들의 삶을 작품에 담아낸 Henri de Toulouse-Lautrec도 그곳의 단골이었다고 한다. 그렇기에 오늘날 몽마르트에서 마주치는 검은 고양이 툴루즈는 더욱이 반갑고 귀여울 수밖에.
하여튼, 언젠가 몽마르트에서 툴루즈를 마주치게 되면 꼭 인사해 주세요. 조그마한 게 엄청나게 부드럽고 따듯하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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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옆집 bar의 단골손님이기도 했던 툴루즈. 가만히 보니 안 본 새에 살이 좀 찐 것도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