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폴폴 Feb 21. 2023

소질

<자기만의 방_ 김유림>


위로에 소질 없다고 말하는 사람 치고 진짜 소질 없는 사람 못 봤다. 위로하는 법을 오래 고민한 사람은 위로를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니까. 비슷한 공식을 대입하면,


추위를 잘 느끼는 사람은 추운 날에 대한 기억을 다른 기억보다 조금 더 많이 가진 존재일까. 더위보다 조금 더, 장마보다 조금 더, 안개보다 조금 더.


겹쳐진 기억을 제본해서 들고 다니다 읽던 페이지 끝을 작게 접어 덮어 놓으면 계절에 안 맞는 날씨가 펼쳐졌다. 창틀 가까이 앉아 어제와 다른 날씨가 담긴 창을 마른 수건으로 문질렀다. 그렇게 하면 추위가 돌아왔다. 녹은 땅처럼 보이는 언 땅에 발목이 꺾이지 않게 조심해야 했다.


산책때마다 링거를 꽂은 나무가 있는 길을 지났다. 스스로 흡수하는 양분이 부족한 나무는 사람이 만든 울타리 안에 담겨 있어 둥치를 만질 수 없었다. 힘줄이 많은 기둥이었다. 보고 있으면 핏줄이 도드라진 손등이 떠올랐다.


손등에 솟은 핏줄을 손끝으로 따라가면 그 사람의 지난날을 만나는 기분이 된다. 속에 유유히 흐르는 시간을 실감하게 되니까. 기분만 남고 다른 건 다 가라앉은 오후, 보이지 않는 걸 믿게 되는 때는 그런 때다.


그런 때서로 다른 속도를 가진 사람들 있다. 올해는 아직 한 번도 안 울었어,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랑 치약 짤 때마다 눈물 나, 오늘도 밥을 먹었구나 싶어서...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동시에 존재하는 하루처럼. 같은 계절에 머무르고 있어도 서로를 알 리 없는 사람들. 바람이 밀어줄 때나 돌아볼 뿐, 서로에게 다가갈 수 없는 이파리. 잎사귀들이 가지 끝에서 맹렬히 들리느라 어제를 잊을 때


매일 같은 곡을 연습하던 이웃이 이사 가고 조용한 사람이 이사 왔다. 떠돌던 소리가 다 안으로 들어가, 문이 쾅 닫히 밤이 밤답게 짙어졌다. 짙은 눈썹을 가진  소리 담긴 병을 잠근 뚜껑 같았다.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리면 모아 둔 소리가 쏟아지게 생겼다.


엄마... 우리 엄마 왜 이렇게 차가워.

이모는 그렇게 말하며 할머니 얼굴을 어루만졌다.

브이 보다 소파에서 잠든 표정 그대로 할머니를 둘러싼 이들 그 표정과 함께 했던 평화로운 날들을 떠올다. 소리 죽여 들썩이는 어깨를 감 팔, 손으로 눈이나 입을 숨긴 혼자인 얼굴떨리고 다.


화장 좀 예쁘게 해 주지, 마지막인데.

그런  뒤에는

지금도 이쁜데... 더이상 어떻게 해.

그런 대답이 이어졌다.


할머니 속눈썹이 가진 곡선을 몰랐던 게 미안해 속눈썹을 오래 봤다. 흰 버선에 담긴 작은 발, 내 팔보다 많이 만졌던 말랑한 팔이 담긴 헐렁한 소매, 한 번도 그런 색인 적 없던 입술... 어디에 눈길을 도 이내 그렁그렁해졌다. 모두 뭔가를 깨문 표정이었고, 각자의 기억이 있는 곳으로 떠난 눈이었다. 그런 날들지나나서,


목도리를 벗고 굴튀김을 먹으러 다. 거리를 두고 선 겨울나무들처럼 적당히 떨어져 굴튀김에 대한 글을 읽 다음.


는 거 어떻게 알았어요?


끓는 기름 속에서 피어난 튀김꽃처럼 웃으며, 각자의 주머니에 각자의 손을 넣다. 가는 길에 문 닫을 채비를 하는 박물관에 들다. 계곡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널 때 꼭 디뎌야 하는 바위처럼 조용한 박물관이었다. 아무리 작게 말해도 고즈넉한 데서 뜯는 비닐봉지처럼 목소리가 바스락거렸다.

 

여기 사시는 분이 아닌가 봐요. 박물관에서 그렇게 말을  사람한테 대답할 때여기가 지구를 뜻하는 건지, 이 나라를 뜻하는 건지, 지금 이 계절을 뜻하는 건지 묻고 싶은 마음을 눌다. 눌러서 잠잠해진 마음에 문장을 써넣었다.


배고프면 얘기해요. 난 언제든 먹을 수 있고, 또 언제든 안 먹을 수도 있어요. 튀김 속에 든 굴처럼, 몸을 구붓하게 굽히고 기다리고 있어요. 튀김옷이 반으로 쪼개져서 왈칵,


속에 품은 열기가 지기를. 을 들여다보는 사람한테 확 끼 뜨거운 기운이, 아침에 출발했던 곳으로 저녁에 돌아온 표정처럼 번지기를.  


그런 튀김 먹으러 가요. 시리게 목을 통과하는 걸 곁들이면 더 좋겠죠. 맥주를 씹어 삼키고 튀김을 홀짝이는 동안, 서로를 바라봐요. 같은 바람 속을 헤매다 온 걸 기억하는 눈으로.




진샤와 폴폴이 시에 관한 모든, 뭐든 주고받습니다.


그 방에 갔어요

꿈에서.

 

저한테 없는 아침이어서

컵에 토마토 주스를 따랐는데

다 마시고 주위를 둘러보니

밤이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온도를 확인하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