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큼은 그에게 사랑한다고 할 수 없었다.
사랑이란 무엇인지, 그 믿음이 주는 의미와 이끄는 결과가 무엇인지.
소중한 친구를 만났다.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대화했다. 흐르는 시간이 아쉽지 않았다. 그럴수록 더 깊어지니까.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 답을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대화는 늘 찬연하다. 벌레 소리를 들으며, 삼계탕 냄새를 맡으며, 노을을 보며, 밤의 파도 소리를 들으며 내면의 질문을 끌어냈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는데, 가라앉고 있던 어떤 부분을 건져냈다. 꿈꿔왔던 이상을 토해냈다. 무능의 일상에서 죽어가던 아이를 증제했다. 새끼를 낳은 어미처럼 나를 보살펴야 한다는 말을 새기며 이미 태어난 아이가 다시 싹을 틔웠다. 작은 모순들이 헤엄치고 마음대로 거니느라 양수에 불순물이 가득했다. 밀려오는 파도가 모래를 머금고 구름 낀 바다로 돌아갔다. 이토록 사소한 순간들이 평생을 만들더라.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순간까지 상기될 추억을 만드는 것. 사랑이라 부를 수 없는 것일까. 반짝이는 눈빛에 꼭 그런 사람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싶어졌다. 다른 이를 사랑한다 고백하면 슬피 보내주고 싶어졌다. 현재의 애인을 사랑한다고 믿는 건 감정이 앞선 와위일까. 밤바다의 그 순간을 분명 사랑했는데 그 진심은 신기루였을까. 다디달게 녹여 응축했다. 불순물도 기꺼이 함께였다. 오늘을 음미할 준비가 됐다. 오늘만큼은 그에게 말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