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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준 May 20. 2023

오월의 푸른 잎

추체험의 자화상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 ‘오월’ 中, 피천득


오월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달이다.


오월의 푸른 잎이 신록의 물결을 따라 흐르고

풀잎 나뭇잎 한 데 모여 천연히 정원을 이루고

청명한 호수가 정원을 에두르며 번지는 푸른 빛.

외롭게 추위를 견뎌낸 나뭇가지 위에 수더분한 푸른 잎이 뒤엉키고

찬란했던 꽃가지는 어느새 정숙함을 갖추어 길가를 수놓고

우리의 발걸음이 녹빛으로 서서히 물드는 나날들.

이 모든 것이 창가에 넘실거리며 눈 안에 들어온다. 이때는 흔해 보이던 집 근처 공원의 정경도 황홀함으로 가득해진다.


오월과 함께라면 사랑하지 않아도 사랑으로 물든다.


그런 오월 속에 나의 자리가, 우리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아직 온전히 초록으로 여물지 않은 연둣빛의 나날 속에, 아직 만개하지 않은 풋사랑을 속삭이고 있지 않을까.

시간이 조금 더 흐르면

우리의 자리에 점점 무성한 녹음이 얹히고

슬며시 퍼져 나가는 짙은 신록의 물결처럼 삶은 잔잔히 번져갈 것이다.

따사로운 볕처럼 타오르는 순간도

장맛비에 떠내려 가야 하는 순간도 지나치면서

언젠가는 농익은 풍경마저 하얗게 잠드는 순간이 오겠지.


나 자신마저도 잠드는 순간에

늘 오월을 사랑했음을

늘 초록빛으로 물들기를 갈망했음을

나의 사랑은 늘 오월에 머물렀음을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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