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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숭깊은 Feb 13. 2023

아이 키울 때 부부싸움은 원래 많이 하는 거죠?

누가 누가 육아에 더 많이 참여하나 계산하는 순간!

  4년의 연애 끝에 결혼을 했다. 잠시도 떨어져 있기 싫고, 또 이 사람이라면 나와 함께 미래를 준비하며 늙어가도 멋진 삶이 될 것만 같았다. 신혼의 달콤함은 여느 부부와 다름없이 행복했고, 결혼 만 1년이 되는 즈음. 그 사랑의 결실을 맺었다. 4년의 연애와 1년의 신혼 기간 동안 싸움  번 해본 적이 없었다. 보통 결혼 준비할 때 정말 많이 다툰다고들 하는데 우린 그런 적이 없었다. 결혼 준비 과정에 있어 거의 전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했기도 했고, 내가 그만큼 남편을 좋아했고, 또 남편도 아마 나를 그렇게 좋아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가 태어난 뒤로는 정말 모든 삶이 바뀌었다. 제일 먼저 나의 일을 잠시 놓아야 했고, 사람의 기본적 욕구가 충족되지 못한 나날에 심신은 지쳐갔으며 이 아이가 나에게 기대는 것들에 적잖은 부담감도 느꼈고, 훌륭한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도 생기게 했다.  그래도 학창 시절 선생님께서 시키는 대로 척척 해내는 모범생의 스킬이 어딜 가랴. 이것 또한 잘 해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버티고 버텼다. 그렇지만 엄마는 그냥 되는 것이 아니었다. 여전히 서툴고 그래서 더 힘들고, 무엇보다 집 안에서 온종일 이 아이만 쳐다보며 돌봐야 한다는 것이 힘들었다. ‘82년생 김지영’처럼 '88년생 하림'도 똑같이 늘어진 옷과 씻지 못해 떡져있는 머리, 한껏 내려온 안경. 왜 엄마들은 이런 모습으로 이렇게 집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어야 하는가. 남편을 기다리며 문득 바라본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참 슬프고 가여웠다. 나도 잘할 수 있는 게 있고, 내가 하고 싶은 게 있는데 남편은 나가서 사회활동을 하는데 왜 나는. 이렇게 있는 것인가. 온통 남편에 대한 피해의식과 낮아진 자존감으로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있을 때 결국 싸움이 시작되었다.

  어제 아이가 옷을 스스로 입겠다고 떼를 썼다. 이맘때가 자신이 스스로 해야겠다는 고집을 부리기도 하고,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우는 것이 일반적인 특징이기에. 그러려니하며 곁에서 보고 있었다. 그런데 상의를 입는데 위아래를 뒤집어 놓고 입으려고 하니 당최 제대로 입어지지 않았다. 아이는 뜻대로 되지 않으니 성질을 부리고, 그걸 보고 있는 나도 화가 났다. 도와준다고 해도 스스로 하겠다고 난리, 가르쳐주겠다고 해도 난리. 결국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로 울기 시작했다. 남편과 함께 으름장도 놓고, 달래기도 했지만 실패. 혼나더라도 옷은 입고 혼이 나야지. 결국 반강제로 남편이 붙들어 놓고 옷을 입혔다. 그랬더니 거실로 뛰쳐나가 다시 옷을 벗더라. 자기가 스스로 입겠다고. '아니 이게 뭔. 뭐 저런 아이가 있지. 저만 성질이 있냐. 나도 있다.' 하며 훈육방법에 대한 오은영박사의 말들을 상기시키려 애를 쓰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갑자기 남편도 한껏 화가 났는지 엉덩이 두 대를 찰싹 때렸다.  그 소리가 제법 칼져 나라도 맞았으면 아팠을 듯싶었다. 그걸 보고 난 아니  말로 더 설명해 주고 공감해 주면 그래도 알아들을 텐데 왜 체벌로 통제를 하려고 하냐고 한 소리 하였고, 아이를 향한 화는 이내 나를 향한 분노로 바뀐 남편의 모습을 직면하게 되었다. 풋스툴을 발로 확 밀더니 방문을 쌩 닫고 거실로 나갔다. 그 모습을 아이가 보고 문을 닫았다고 더 악을 썼다. 누군 화 안 나서 참고 있는 줄 아나 나 역시 들고 있던 물컵을 싱크대로 던져버렸다. 아이도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였는지, 울다가 지친 건지  곧 울음을 그치고 잠이 들었다. 자면서도 자신의 분이 식지 않았는지 연신 씩씩거렸다.


  극한의 상황에 처할 때 나오는 것이 본디 성격이라고들 한다. 그렇다면, 육아하는 순간순간 부족한 모습들이 표출되곤 하는데 그것이 남편의 숨겨진 가면일까. 연애부터 신혼 때까지 사소한 말다툼 한번 하지 않은 것을 자부심으로 여겨왔던 터라 육아 과정에서 겪는 남편과의 갈등은 내게 적잖은 괴로움과 스트레스를 주었다. '결혼 전에는 이랬는데, 이렇게 변해버렸구나. 이 사람은 나를 위하는 마음이 없는 것인가.' 라며 남편의 마음을 왜곡하여 해석하기 일쑤였다. 그렇게 나만 힘들고 상처받는 줄 알았는데 남편 역시 나의 말과 행동에 크고 작은 마음의 옹이가 생겼었나 보다. 그것들이 곪아 결국 무난하게 넘어갈 수 있는 일을 최악의 상황으로 만들었고, 나와 아이에게 화를 직접적으로 낼 수는 없으니 주변의 물건을 던지며 분풀이를 했던 것이다.


  그날 밤, 나는 아이와 안방에서, 남편은 거실에 몸을 뉘어 잠을 청했다. 자정 넘어서까지 뒤척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남편도 퍽 자신의 행동이 부끄러워 자성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 부부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제 역할을 해내며 충분히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누가 더 많이 육아와 살림에 참여했는지 계산하고, 한편으론 나의 '힘듦'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 '채' 주어 이해받기를 원했던 것 같다. 남편도 밖에서 온종일 전투를 하고 들어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집에서 아이와 실랑이하는 것이 더 힘들다고 생각했고, 나 하나 감당하기도 버겁고 힘든데 누굴 신경 쓰고 챙기는 것은 사치처럼 느껴져 남편의 힘듦을 모른 척했던 것 같다. 주변을 둘러볼 서로의 감정을 헤아릴 여유가 없었다. 남편도 나도 그날은 마음이 참 가난한 날이었다. 이렇게 마음이 가난해지는 날이 되면 평소보다 이기적인 사람이 된다는데 그게 바로 어제였던 것이다. 이 가난한 마음을 서로 풍요롭게 채워주는 것이 부부의 역할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이벤트가 있어야만 생각하고 반성하는 나약한 나란 인간. 그럼 이제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대책을 세워야지.


  나는 이제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 것인가.

 

  긍휼히 불쌍히 가엾게 여기는 마음을 갖기로 하였다. 동정이나 측은의 마음이 아니라 '그럴 수 있지, 오늘 회사에서 조금 힘든 일이 있었나 보다. 내가 좀 더 한다고 내 몸뚱이가 없어지는 것도 아닌데, 오늘 아이 케어는 내가 해야지.' 라며 남편을 긍휼히 여기기로 했다. 내가 저녁 차렸으니까 오빠가 설거지해. 내가 분리수거했으니까 아이 목욕은 오빠가 해. 이렇게 누가 누가 육아와 살림에 더 참여하였는지 계산하고, 업무 분장표까지 만들어 분담을 강요했던 야박함을 버리고 불쌍히 여겨 내가 그를 돌보아 주기로 하였다. 가는 말과 행동이 고우니 돌아오는 말과 행동도 고운 법.


  우리 부부의 희로애락이 쌓이고 쌓여 오늘보다 아마 더 힘든 내일, 그리고 내년, 후년 시간이 흐를수록 원숙한 부부 관계가 맺어지길 간절히 바라본다. 여전히 우리 부부는 '한 아이'를 '사람'으로 만드는 과정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 과업인지 매일 체득하며,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또 하루 성장하는 것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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