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지인이 빵을 사가지고 왔다. 그 빵을 보는 순간 기분이 좋아졌다. 빵이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 빵가게가 나의 추억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도시에는 아주 오래되고 유명한 코롬방 제과점이 있다. 1949년부터 영업했으니 2025년 올해로 76년이 되었다. 어릴 적 살던 집과 가까운 곳에 있었지만 초등학교 때까지는 그곳에 들어간 기억이 없다. 군것질하라고 엄마가 주는 용돈으로는 그 빵집의 빵을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빵집 앞을 지나갈 때면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다양한 빵들이 나의 시선을 고정시키고 미각을 자극했지만 현실은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그림 속의 빵과 같았다. 그렇다고 그곳의 빵을 먹어보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교회 주일학교에서 큰 행사가 있을 때나 성탄절에 그곳의 빵을 줬다. 단팥빵, 소보루빵, 딸기잼빵, 크림빵이 있었지만 나는 빵속에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아 제일 맛없을 것 같은 소보루빵을 제일 좋아했다. 빵 위에 누룽지처럼 붙어있는 달달하고 딱딱한 알갱이가 맛있었다. 지금은 단팥빵이 내 입맛에 맞지만 아직도 빵을 사러 가거나 빵집 앞을 지나갈 때 나의 시선은 제일 먼저 소보루 빵에 머무르는 건 어릴 적 미각이 머릿속에 추억으로 남아있어서 그런 것 같다.
예나 지금이나 소보루빵은 어느 빵집에서나 있고 빵집마다 맛도 비슷하다. 그래서 소보루 빵이 먹고 싶다고 굳이 코롬방제과점까지 가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곳에서만 팔고 맛도 다른 빵이 있었다. A4용지 크기 정도의 하늘색 박스에 담겨있는 카스텔라빵이다. 카스텔라빵은 특별한 레시피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만드는 게 어려운 것도 아니어서 맛이 거기서 거기일 것 같은데 그곳의 카스텔라가 먹고 싶은 건 이 또한 어릴 적 추억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아버지는 아주 가끔 결혼식장에 가셨다. 지금은 결혼식장에 가면 대부분 뷔페식사를 하고 오는데 내가 어릴 적에는 일부 결혼식장에서 코롬방제과점의 카스텔라 빵을 답례품으로 줬다. 아버지가 결혼식장에 간다고 하면 카스텔라를 먹을 생각에 기분이 좋았고 아버지가 빨리 오기만을 기다렸다. 하늘색 박스를 열었을 때 갈색 빵표면이 번지르르하게 제 모습을 드러내고 상자 안에 들어있는 흰색 플라스틱 빵칼로 속을 자르면 노르스름하면서 폭신폭신하게 만들어진 속살이 보인다. 식구 수대로 잘라 한입씩 먹을 때 입에서 살살 녹는 그 부드러움은 군것질거리가 많이 없던 어린 시절의 나의 입맛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박스가 커서 양이 많았음에도 빵은 금방 사라졌다. 카스텔라 바닥 종이에 붙어있는 빵까지 긁어먹었다. 그런 우리 형제들의 모습을 보며 아버지는 흐뭇해하셨다.
결혼식장에서 빵을 답례품으로 가져올 때 아버지는 어떤 마음일지 생각해 봤다. 아들들이 좋아할 모습에 결혼식에 참석해 축하해 주는 것보다는 빵에 관심이 더 있었을 것 같다. 결혼식장에 갔다가 빨리 오기만을 기다리는 자녀들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결혼식이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딸에게 줄 맛있는 게 있으면 빨리 집에 가서 딸이 먹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내가 그런 것처럼.
2년 전 들린 그 빵집에서 한동안 없었던 어릴 적에 결혼식 답례품으로 먹어 본 카스텔라를 팔고 있었다. 한 상자에 20,000원으로 빵값으로는 부담스러운 금액이었지만 추억에 젖어 망설임 없이 빵을 샀다. 당연히 어릴 적 그 맛과 느낌을 소환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버지와의 추억이 곁들어서인지 빵을 먹는 내내 입안도 즐겁고 마음도 행복했다.
어린 시절 기억나는 많은 빵집이 다 없어졌어도 유일하게 오랜 기간 동안 같은 장소에서 맛있는 빵과 추억을 파는 그 빵집이 많이 고맙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