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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소망 Aug 01. 2024

고물 자전거

고물 자전거 때문에  더 많이 받은 아버지 사랑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나를 비롯한 모든 6학년 아이들의 관심사는 중학교 배정이었다. 아이들 마다 선호하는 중학교가 있었지만 나의 희망 순위는 첫 번째가 집과 가까운 학교였고 두 번째는 형들이 다녔던 중학교에 배정을 받는 것이었다.

 내가 사는 곳 주위에는 걸어서 30~40분 이내에 갈 수 있는 중학교가 여러 곳이 있었고 두 명의 형들도 집과 가까운 같은 중학교에 다녔다. 형들이 다닌 학교 외에도 걸어서 학교를 다닐 수 있는 학교가 3곳이 있었기에 그곳 중 한 곳에 배정받기를 내심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배정발표가 되는 날 무언가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걸어가면 1시간 이상 걸리는 중학교에 배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중학교에 가면 영어도 배울 수 있고, 교과목마다 다른 선생님에게 공부한다는 흥분과 기대감들은 어디론가 다 사라져 버리고 어떻게 통학을 할까 하는 고민이 머릿속에 채워졌다.     


중학교 등교를 위해 처음으로 버스승차권이라는 걸 10장 샀다. 현금으로 버스요금을 낼 수 있었지만 버스승차권을 이용하면 잔돈을 준비하지 않아도 되니 더 편리했다. 그런데 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내가 중학교를 다니던 198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등교시간에 시내버스는 항상 콩나물시루처럼 학생들로 꽉 차있었다. 어쩔 때는 학생들이 너무 많아 버스문을 닫을 수 없어 버스 안내양이 아이들을 억지로 밀어 넣은 다음 차문에 매달려 가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라도 타면 다행이지만 어쩔 때는 버스가 승강장에  멈추지도 않고 가는 경우도 많아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 버스를 타고 가는 시간보다 더 길었던 경우도 많았다.     

매일매일의 등굣길이 힘들었고 지각의 위험이 상존해 있었다. 길에서 낭비하는 시간도 아까웠다. 그런데 먼 곳에서 통학을 하면서도 이런 고충에서 자유로운 아이들이 있었다. 바로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아이들이었다. 그 애들이 너무 부러웠다. 나도 자전거로 통학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아버지께 자전거를 사달라고 했다. 아버지는 내가 아직 어리고 등굣길이 너무 멀고 차들이 많아 위험하다고 다음에 좀 더 크면 사준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계속 자전거를 사달라고 졸랐다. 나의 성화에 못 이겨 아버지는 새 자전거를 사면 도난의 위험이 있으니 중고 자전거를 사주겠다고 했다. 중고든 새 자전거든 나는 개의치 않고 자전거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사 온 자전거는 너무 낡은 자전거였다. 내 자전거가 생겼어도 그리 기분은 좋지 않았다. 중고로 산 자전거는 외형이 낡았을 뿐 아니라 기능도 좋지 않았다. 자전거를 타고 빨리 달리려고 하면 체인이 벗겨졌고, 페달을 굴려도 헛바퀴 도는 경우도 있었으며, 바퀴의 공기도 조금씩 빠졌기 때문에 매일 자전거펌프로 공기를 넣어야 했다.     


하교를 하면 나에겐 새로운 과제가 생겼다. 자전거를 점검하는 일이었다. 여기저기 닦고 기름칠하고 체인도 조이고 바퀴에 공기도 넣었다. 매일매일 자전거를 관리하는 것이 좀 번거로웠지만 그래도 버스를 타고 다니는 것보다는 더 좋았다. 가끔 아버지도 나와 함께 자전거를 정비했다. 혹시나 고장 날지 모르는 자전거 때문에 매일매일 점검을 하는 나에게 아버지는 좋은 자전거를 사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고 찻길로 다니기 때문에 사고위험이 있어 항상 불안하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아버지는 등교할 때마다 조심히 천천히 타라고 신신당부를 하며 기도를 해주셨다. 그런 아버지의 염려와 기도 덕분에 고물 자전거로 무사히 중학교 3년 동안 통학을 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는 집 가까운 곳으로 갔기 때문에 더 이상 자전거를 탈 필요가 없었고 너무 낡아 탈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 자전거는 애물단지처럼 집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다가 결국은 폐기해 버렸다.      


고물 자전거를 타고 다녀서 신나는 통학길이 아니고 불안한 통학길이었지만,  고물 자전거 덕분에 조심성을 갖게 되었고 아버지의 관심과 기도를 더 많이 받게 되었다.      

다시 중학교시절로 돌아가 자전거를 사야 한다면  새 자전거를 살 수 있는 돈이 있다고 해도 나는 고물 중고자전거를 살 것이다. 그래서 새 자전거를 타고 다녔으면 받을 수 없었을 아버지의 관심과 기도를  많이 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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