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머셋 몸, 면도날

by BBH

Art is triumphant when it can use convention as an instrument of its own purpose. - 서머셋 몸, 면도날

서머셋 몸의 '면도날'에서 래리라는 인물은 기존의 궤도를 벗어나는 선택을 반복한다. 그는 전쟁 중 동료의 죽음을 겪고 깊은 트라우마를 안은 채 살아간다. 전쟁 이후 그가 선택한 길은 명확하다. 자본주의 사회에 자연스럽게 편입되는 대신, 자신의 내면을 향해 시선을 돌린다. 약혼자가 있었지만 결혼을 미루고, 안정적인 직업을 거부하고, 결국 프랑스, 독일, 인도로 떠난다. 그의 선택은 주변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지만, 그 자신에게는 필연적인 탐구의 과정이다.


'면도날'의 인물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관습을 대한다. 어떤 인물들은 사회가 제공하는 성공의 공식과 교양의 규칙을 삶의 목적처럼 받아들인다. 그들의 삶은 안정적이고 세련되지만, 때로는 공허해 보인다. 반면 래리는 직업, 돈, 결혼 같은 사회적 형식을 필요할 때만 받아들이고, 그것이 자신의 탐구를 방해한다고 느끼는 순간 미련 없이 내려놓는다. 그는 관습을 파괴하지도, 숭배하지도 않는다. 단지 자신의 목적에 맞지 않으면 사용하지 않을 뿐이다.


흥미로운 점은 작가 자신이 소설 속 인물로 등장해 서사를 이끄는 구조다. 도입부에서는 이 형태가 다소 낯설게 느껴졌다. 소설 속 '나'는 관찰자이자 참여자로서 인물들의 삶에 관여하고, 동시에 한 발 물러나 그것을 기록한다. 이 방식 덕분에 소설은 누가 옳고 누가 틀렸는지를 쉽게 말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를 최대한 활용하며 살아가는 인물들 역시 비판이나 미화 없이 담담히 그려진다. 판단은 끝까지 독자의 몫으로 남는다.


결국 이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싸우며 살아간다. 그 모습은 최근 넷플릭스에서 본 '김부장'에서도, 재작년 세종문화회관에서 본 '세일즈맨의 죽음'에서도 반복해서 마주한 장면들과 겹쳐진다. 시대와 배경은 달라도, 사회라는 구조 안에서 인간이 자신의 삶을 정당화하고 버텨내는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래리처럼 사회 구조에 무조건 편승하지 않으려는 면이 있다. 나만의 기준과 가치로 세상을 바라보려 하고, 그 선택은 종종 고독을 동반한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도 느낀다. 래리는 고독 속에서도 탐험을 멈추지 않는다. 그는 낯선 세계로 나아가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반면 나는 생각은 많지만, 실제로 몸을 움직이는 탐험은 부족한 편이다.


그래서 2026년 새해에 작은 다짐을 해본다. 꼭 멀리 떠나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익숙한 자리에서만 머무르지는 말자. 필요할 때는 받아들이고, 방해가 될 때는 내려놓으며, 그 모든 선택이 내 목적을 향해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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