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씨가 냉이 손질에 여념 없다. 냉이는 데치는 것이 아니라 삶아야 맛이 좋다. 잘 모르는 이들은 시금치처럼 데치는데 그러면 질겨서 먹기가 어렵다. 잘 삶은 냉이를 된장 양념에 조물조물 무치면 부드럽게 목을 타고 넘어간다. 요즘 사람들은 모든 나물을 깨끗하게 손질해서 팔아야만 사 간다. 달래도 흙만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달래 머리에 묻은 이물질을 꼼꼼하게 정리해야만 상품 가치가 높아진다. 게을러서인지, 아니면 귀찮아서인지 알 수 없지만 장에서 한 가지라도 더 팔려면 한 번 손질할 거 두 번 손질해야만 한다. 이렇게 해서 파는 걸 손님들은 알란가 모르겄다.
어젯밤 캐온 냉이가 양동이 한가득이다. 마루에 텔레비전을 켜놓고 시간아 나 몰라라, 하며 손질하다 보면 깨끗한 냉이가 눈앞에 쌓이게 마련이다. 저녁밥을 먹도록 끝나지 않은 냉이 손질이 어느새 새벽 3시를 넘어버렸다. 걸레로 거실을 훔쳐내고, 냉이를 비닐봉지에 담아 현관 앞에 놓는다. 장에 갈 준비가 비로소 마무리된다. 몇 시간이라도 눈을 붙여야 장에 간다. 잠깐 몸을 뉘었는데 눈을 뜨니 아침 7시 30분이다. 후다닥 고양이 세수를 하고 약을 먹기 위해 물에 밥을 말아 훌훌 넘긴다. 오늘은 큰딸이 차로 장에 데려다 주기로 했다. 얼마 전 집으로 돌아와 딸기농장을 하는 큰딸은 여름 몇 달을 제외하고는 늘 바쁘다. 그래도 어미 혼자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안쓰러운지 데려다준다고 한다. 평상시에는 둘째 집 사촌 동서(고창희)가 전동 오토바이로 가면 큰집 사촌 동서(한치우)와 택시를 불러 간다. 세 동서가 함께 장에 다니니 더 재미있고 심심하지도 않다.
장에 도착하니 장사치들이 하나 둘 자리를 잡고 물건들을 펼치고 있다. 자리를 잡고 물건을 눈에 띄게 진열한다. 새벽까지 손질한 냉이, 5월 새순이 나올 때 따서 말려놓은 아주까리, 무말랭이, 집 뒤 산에서 뜯은 쑥, 도라지, 고춧가루, 대파 등등이다. 특히 지난해 장마로 인해 올해 대파 가격이 크게 올랐다. 대파 상태도 그리 좋지 않다. 찾는 이는 많지만 어느 노점상이나 상태는 비슷하다.
막내아들이 마련해 준 양철통에 초를 켜서 놓는다. 장에서 물건을 팔 때 가장 어려울 때가 비 오는 날과 추위다. 가림막이 없어 비가 오면 물건 상태가 훼손될뿐더러 장을 찾는 손님도 없다. 매서운 추위는 손발을 꽁꽁 얼게 만들어 옴짝달싹 못하게 한다. 아주 추울 때는 연탄난로를 피우지만 지금처럼 간절기에는 양철통에 넣은 초만 있어도 엉덩이가 따뜻해진다.
홍성장에 다니기 시작한 지는 10년 정도 되었다. 물론 젊어서도 가끔 다니기는 했지만 농사도 바쁘고, 자식들 키우느라 5일에 한 번씩 매번 나가는 일은 어려웠다. 나이 들어 농사일에 손을 놓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내 용돈 벌이는 자식들 도움받지 않고 살아야 늙어 추레해지지 않는다. 자식들은 다니지 말라고 하지만 우두커니 앉아 있으면 머릿속도 복잡해지고 몸도 더 아픈 것 같다. 평생 농사일로 인이 박힌 몸이 먼저 아는 것이다. 장에 나와 오가는 사람 구경도 하고, 옆 사람과 이야기도 나누며, 2000원짜리 뜨끈한 국수 한 그릇에 막 버무린 배추 겉절이 한 점을 올려 먹는 맛에 다닌다.
맞은편에 둘째 집 사촌 동서(고창희)가 앉는다. 오전 8시에 나와 양철통에 초 켜고 앉아 있지만 점심시간이 다 되어가도록 개시도 못했다. 뭐 아쉬울 것은 없다. 30년 넘은 이력이 몸에 배이면서 인생의 깊은 맛도 함께 깨닫는 중이다. 못 팔았다고 안달하지 말고, 단골손님에게 인심 잃지 말아야 사람 관계도, 내 심간도 편해진다는 것을 말이다. 자식들은 가지 말라고 안달이지만 여기라도 나오지 않으면 너무 심심하다. 농사처도 큰아들이 일하면서 틈틈이 짓고, 그저 조금 있는 밭뙈기에 요것조것 심어 가꾸는 일이 생활이자 취미다. 시집오니 시어머니도 장날이면 한 소쿠리 가득 머리에 이고 서낭당고개를 넘어 다녔다. 시어머니가 다닐 때는 막상 다니지 않았는데 이제 시어머니의 뒤를 이어 본인이 시장 터줏대감이 되었다. 어쩌다 몸이 어려워 나가지 못하면 왜 안 오냐고 성화다. 아들이 새벽녘 지펴준 아랫목보다 시장의 훈훈한 인심이 아직은 더 좋기만 하다.
고구마, 생강, 달래, 냉이, 서리태, 마늘 등을 보기 좋게 펼쳐놓고 앉아 있자니 손님이 없어 심심하다. 앞자리 동서 옆에 가서 앉아 본다. 손님들이 이것저것 물어도 보고 간다. 제일 보기 싫은 손님 중 하나가 물건만 떠들어 보고 비싸네, 안 좋네, 하며 구시렁거리다가 가는 사람이다. 그럴 때는 그냥 시원한 물 한 잔으로 목을 축이며 속에 쌓인 것을 내려보내는 것이 최고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에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오히려 독
이 되는 법이다. 그나저나 오늘 점심은 뭐 먹을까?
오이 모종이 심어진 비닐하우스를 2~30분 간격으로 드나들며 온도 체크를 한다. 사위가 심어준 오이가 행여나 제때 크지 못할까 노심초사다. 한치우 씨가 비닐을 걷어내고 비닐하우스 주변을 왔다 갔다 한다. 때마침 냉이 캐러 가자는 막내 집 사촌 동서(박성진) 말에 냉큼 비닐봉지와 호미를 들고 갈림길에서 기다린다. 지난해 뿌려놓은 냉이는 이제 얼추 다 캐어 내다 팔 것이 없었는데 개미재(상팔마을에서 진두고개를 가기 전 고개를
말함)에 냉이가 지천이라는 말에 나서는 길이다.
홍성장에 다니기 시작한 것은 서른 살 무렵부터니 얼추 53년 정도 되었다. 작고한 마을 내 어른들을 제외하면 아마 마을에서 홍성장에 다닌 지 가장 오래되었을 것이다. 그때만 해도 머리에 똬리를 얹고 보따리를 이고 서낭당고개를 넘어 다녔다. 서낭당고개를 넘을라치면 장사꾼들이 미리 중간에 진을 치고 앉아 웃돈을 얹어주면서 물건을 미리 사 가는 경우도 많았다. 웃돈을 얹어준다 해도 절대 장사꾼들에게 물건을 넘기지 않았다. 공들여 키우고, 수확해 손질한 채소와 곡식을 내 손으로 직접 손님에게 넘겨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장에 도착하면 줄 서서 사람들에 떠밀려 다닐 정도로 북적댔다. 채소든 곡식이든 뭐든 가지고 가면 다 팔고 호랑(호주머니의 방언) 두둑하게 현금을 채워 가지고 왔다. 아이들 생일이면 어여쁜 옷도 한 벌 사줄 수 있고, 남편 생일이면 소고기 반 근 정도는 사 올 수 있었다. 이제 그 시절이 지나고 장에 오는 사람도, 장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도 한적하기만 하다.
방뫼(마을 서북쪽 산 끝자락에 위치한 곳을 말함)에 사는 김정문과 나란히 앉으니 심심하지 않아서 더 좋다. 도라지를 풀어 사이좋게 한 바구니 소복하게 담아 놓는다. 달래와 냉이도 비닐봉지에서 꺼내 담는다. 한 바구니에 3000원, 5000원이지만 시장 좋은 것이 뭔가. 인심 아니던가. 비싸다고 돌아서는 손님을 붙잡고 한 움큼 더 얹어준다. 사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기분이 좋아진다.
김정문 씨가 가새씀바귀를 캐기 위해 비료 포대와 호미를 챙겨 전동 오토바이에 오른다. 가새씀바귀는 제초를 하지 않는 논둑이나 밭둑에서 올라오기에 오리농법을 하는 홍동면 금평리까지 간다. 점심 먹고 가서 반나절 캐어 저녁 늦게까지 손질한다.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제법 시간이 걸린다. 가새씀바귀는 쌉쌀한 맛이 좋아 입맛 없는 봄에 먹기 좋은 나물 중 하나다. 시래기나 냉이 등은 흔하니 봄을 맞아 색다른 나물을 선보이고 싶은 마음이다.
홍성장을 다닌 지 이제 50년이 되어간다. 청양에서 스물두 살에 시집와 평생 농사만 지었다. 모갯돈(큰돈의 방언) 모으기 어려운 시골에서 담배농사가 그나마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모갯돈은 자식들 학비나 혼례 등에 지출하고 나면 생활비로 사용할 돈이 부족하다. 그 틈을 메꾸어 줄 수 있는 것이 장에 나가 물건을 파는 일이다. 담배농사 10년을 짓고 나니 남는 건 굽은 허리밖에 없다. 담배를 심고, 널어 말리고, 엮어 출하하는 일까지 가장 뜨거운 6~7월에 하는 담배농사는 힘든 농사 중 하나다. 지금이야 비닐하우스가 있어 편하지만 그때만 해도 처마나 외양간 밑에 매달아 놓고 행여 비라도 오면 젖어 썩을까 조바심 내며 농사를 지었다. 이제 그 기억도 모두 옛날 일이 되어버렸다.
밭에서 캐온 도라지를 까서 한 바구니 담고, 가새씀바귀도 담아 놓는다. 자리 뒤에 있는 포장마차 어묵과 호떡 냄새가 진동하며 시장기가 느껴진다.
단골손님 많은 권영진 씨가 부지런히 손을 놀린다. 시금치, 달래, 하루나, 쪽파, 무말랭이 등을 가지런하게 놓는다. 지난 정월대보름에는 시래기, 아주까리, 고구마 줄기 등을 가져갔다. 말이 정월대보름이지 예전에 비하면 명절도 아니다. 정월이면 마을마다 큰 잔치가 벌어졌다. 오곡밥에 각종 나물과 부럼을 깨며 한 해의 풍년을 빌었다. 마을에 풍장이 울리고 막걸리 한 잔 씩 나눠 마시며 그날의 기운을 받아 일 년 농사를 짓게 된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시장을 찾는 손님도 더 줄어들었다. 우리들이 저 세상 가게 되면 명절의 풍습도 변하거나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
홍성장에 다닌 지 32년 차에 접어들면서 권영진 씨 노하우는 단 하나다. 단골손님에게 인심 잃지 말고 잘하는 것이다. 당연히 좋은 물건을 내주고 덤으로 인심도 내어준다. 예전에는 남편이 경운기로 데려다줬는데 지금은 트럭으로 데려다준다. 특별히 새로울 것 없는 물건들이지만 사시사철 직접 기른 채소와 곡식으로 노점을 채우는 것도 비결이다. 봄이 되어 아지랑이가 내려앉은 길목에 나이가 먼저 봄을 맞는지 찌뿌둥하다. 고춧가루와 청양고추를 듬뿍 넣은 뜨끈한 칼국수로 밀려오는 춘곤증을 밀어내 볼까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