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구섬 #바다 #수영 #소풍 #새총 #딱밤치기 #고기잡이
학교가 끝나자마자 책보를 어깨에 동여매고 후다닥 집으로 뛰어간다. 물론 곧바로 집으로 향하지 않는다. 집에 가면 분명 담뱃잎을 목 짓거나 뽕나무 잎을 뜯으러 가라고 할 것이 뻔하다. 오늘은 마을 뒷산으로 새를 잡으러 가기로 했다. 나뭇가지에 작은 돌을 넣고 잘 조준한다. 동묵이는 유난히 새총을 잘 쐈다. 한 번 쏘면 영락없이 새가 떨어졌고 나는 잽싸게 나무에 올라 새 둥지에 있는 알을 바지 주머니에 넣어 내려온다. 논둑에 쪼그리고 앉아 불을 지펴 새알을 쪄 먹는다. 귀한 계란보다 맛은 덜하지만 고소한 맛이 나 그런대로 먹을 만하다. 하긴 배는 늘 고프니 뭔들 맛있지 않겠는가.
여름이 되면 가장 즐거운 시간들이 이어진다. 바다가 들어오면 누구라 할 것 없이 헤엄쳐 풍구섬에 간다. 내기도 한다. 누가 누가 빨리 헤엄쳐 풍구섬에 도착하는지 말이다. 내기가 뭐 별건가. 이마 딱밤치기다. 완식이 손 힘이 어찌나 좋은지 완식이한테는 절대 지지 않으려고 한다. 한 번 맞으면 눈에서 별똥별이 떨어진다. 그래도 맨날 진다. 분하다.
풍구섬에 도착해 옷도 말리지 않고 물고기잡이를 서두른다. 물이 빠지고 들어오는 것이 거의 순식간이기에 물때를 잘 맞춰야 한다. 잘못했다간 오리알처럼 동동 떠내려가는 수도 있다. 그물을 양쪽에서 잡고 기다리면 물고기가 저절로 걸려 들어온다. 물 반, 고기 반이니 물고기 잡기는 식은 죽 먹기다. 몰치새끼(숭어새끼), 새우 등 운이 좋으면 상어도 잡힌다는데 상어는 아직 못 잡아봤다. 내가 좀 더 크면 꼭 잡아 보고 말리라. 주변에서 나뭇가지를 모아 부싯돌로 불을 내서 나뭇가지에 끼운 물고기를 굽는다. 그을음에 입가까지 까매지지만 모름지기 막 잡아 올린 생선을 구워 먹는 맛은 아는 사람만 안다. 궁금하면 잡아 보던가.
바닷물이 빠지기 전 얼른 다시 헤엄쳐 집으로 돌아온다. 실컷 놀았으니 보리밥이라도 얻어먹으려면 부모님 일도 좀 거들어야 한다. 집에 오니 담뱃잎이 산더미다. 하엽, 중엽, 상엽끼리 모아 끄냥이로 잘 묶어 차곡차곡 쌓는다. 몇 년 하다 보니 담뱃잎 도사가 다 됐다. 어느새 사위가 어둑어둑해지자 밥 먹으라는 가장 기분 좋은 소리가 들린다.
오늘도 보리밥에 고추장이지만 이마저도 못 먹는 친구들도 있으니 밥투정 같은 것은 꿈도 꾸지 않는 것이 좋다. 밥 먹고도 담뱃잎 목 짓는 일은 계속된다. 모깃불을 지피고 누나, 형들과 마당에 빙 둘러앉아 일하다 보니 담배가 나인지 내가 담배인지 머리가 빙빙 돈다. 어지러움과 졸음이 몰려드는 그 어디 중간쯤 어머니의 등짝 스매싱이 날아온다. 다시금 정신을 바짝 차리고 담뱃잎에 집중하지만 세상 가장 무거운 눈꺼풀을 내 어찌 감
당하겠는가. 엉금엉금 기어 방으로 들어가는 뒤로 누나와 형의 깔깔대는 소리가 들린다.
#결성장 #놀이 #공기놀이 #레슬링 #메뚜기치기 #논스키 #제기차기
오늘은 결성장이 열리는 날이다. 결성장에는 없는 것 빼고 다 있다. 장날의 가장 하이라이트는 뭐니 뭐니 해도 영화 상영과 각설이 난장이다. 신나는 풍물 소리도 좋지만 집에서는 볼 수 없는 영화 구경에 마음이 설렌다. 다만 영화를 보려면 입장료 10원을 내야 한다. 내가 10원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도 본다는 마음만 있으면 다 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영화를 상영하는 곳은 천막을 쳐 놓고 입구에서 입장권을 사서 들어간다. 완식이가 경비원의 눈을 피해 천막 한 구탱이를 들어 올리면 천막 안으로 머리부터 들이밀고 엉덩이를 높게 들고 잽싸게 들어간다. 가장 마지막으로 완식이가 천막을 뒤집고 엉덩이부터 안으로 들여놓고 후다닥 천막을 덮는다. 경비원의 ‘야~이놈들아’라는 소리가 영화 소리에 묻힌다. 사실 영화 내용은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어른들 틈에 숨죽이고 앉아 눈물 콧
물 짜는 소리를 내거나, 깔깔깔 웃다 보면 어느새 영화는 끝이 나니 말이다.
영화를 보고 나와 친구들과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기로 했다. 볏짚을 동그랗게 말아 새끼로 돌돌 감으면 공이 완성된다. 가끔 마을에서 돼지를 잡는 날에는 어른들 옆에 딱 붙어 앉아 돼지 오줌보 주기를 기다린다. 물론 대부분 어른들은 씩 웃으며 돼지 오줌보를 선선히 내주기도 하지만 짓궂은 어른들은 일부러 돼지 오줌보에 칼질을 해서 터트린다. 정말 얄밉고 심술 맞은 할아버지다. 우리가 놀 수 있는 것이 축구만 있겠는가. 집만
나서면 마을에 있는 모든 것이 다 우리 장난감이요 놀이터다. 가을 벼 타작이 끝나고 볏단에서 나오는 검불을 높이 쌓아 놓으면 그 위에 올라가 레슬링도 한다. 김희춘 아저씨와 이영진 아저씨 집에 흑백텔레비전이 있는데 김 일의 레슬링을 보고 흉내 낸 것이다. 한 놈을 쓰러트리고 누르면 밑에 깔려 있는 녀석이 ‘고상!고상!’ 외치면 풀어준다. 흑백텔레비전을 보기 위해 밤마다 아저씨들 집을 순회하는 일은 사실 좀 눈치 보이는 일이다. 특히 김 일의 레슬링 공연이 있는 날이면 방안에 사람이 꽉 차 머리라도 들이밀어 보거나 창문에 매달려 보기도 했다. 눈치는 보이지만 김 일의 박치기 명장면을 놓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엽전 구멍에 담배 묶을 때 쓰는 끄냥이를 넣거나 짚을 엮어 엽전 구멍을 통과시켜 제기도 만든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내 제기차기 실력도 조금씩 올라갔다. 한 번에 10번도 못 찼던 것이 지금은 한 번에 30번 정도는 너끈하다. 세월이 약이라는 어르신들 말씀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텔레비전을 보고 돌아오는 길, 참외밭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동묵이가 망을 보고 나와 완식이가 납작하게 엎드려 밭으로 들어간다. 잘 익은 놈으로만 골라 바지 주머니에 쑤셔 넣고 다시 기어 나온다. 멀리서 “야, 이놈들아, 넝쿨 밟지 말고 익은 놈으로 따 가~”라는 상진 아저씨 말이 들린다.
길고 긴 겨울방학이 시작되면 누가 뭐라 할 것 없이 논스키를 타러 우르르 논으로 달려간다. 우리 마을 논은 겨울이 되면 참 예쁘고 멋있다. 해창교까지 들어오는 바닷물이 여름이면 파랗게 넘실거리고, 온통 하얀 눈이 소복하게 세상을 뒤덮어 콧물이 질질 흐를 때쯤이면 논물이 꽝꽝 얼고 논스키를 타는 계절이 드디어 돌아오는 것이다. 나무에 철사를 양쪽으로 걸고 못을 박아 스키를 만든다. 물론 철사 구하기가 쉽지 않아 담배농사
를 짓는 집에 몰래 가서 철사줄을 댕강 잘라 온다. 어른들의 등짝 스매싱은 웃으며 받아줘야 그해 겨울을 신나게 놀 수 있다. 봄이 오는 것이 싫을 만큼 하루 종일 논스키를 타다 보면 왜 이렇게 하루 해가 짧은지 모르겠다. 어머니의 ‘밥 먹어’라는 소리도 귀에 들어오지 않으니 말이다.
#나무 #물모개나무 #두감나무 #짚신 #나룻배 #나무지게
매일 아침 학교 가기 전 나무를 해 와야 한다. 어른들은 바닷물이 빠지면 맨발로 갯벌을 건너 보령시 천북으로 나무를 하러 간다. 우리는 이것을 ‘물모개나무’라 부른다. 성호리 나룻개에서 배를 타고 가서 해오는 나무는 ‘두감나무’라 한다. 나는 나룻배를 타고 가는 것이 좋지만 나중에 뱃삯을 줘야 하니 아버지는 물모개나무를 많이 하러 가고는 했다. 물이 차기 전에 얼른 나무를 해서 돌아와야 하기에 우리 같은 애들은 주변 산으로 솔가지나 나무 등걸 등을 모아 온다. 방학에 아버지를 따라 몇 번 가기도 했다. 어깨에는 나무 지게를 지고 바지 주머니에 고구마 2개 넣고 나룻배에 냉큼 올라타면 넘실거리는 파도가 나룻배에 들어오기도 한다. 어릴 적부터 수영을 해 온 터라 이 정도는 무섭지도 않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이마를 간지럽히고 소금 짠내가 코를 찌른다. 잠시의 낭만은 뒤로 하고 배에 내리는 순간부터 고생이다. 딴섬이나 독사골, 사쟁이 등을 다니며 산 임자의 눈을 피해 나무를 해야 한다. 걸렸다가는 가끔 갈퀴를 뺏기는 경우도 있다. 아버지는 큰 나무 위주로, 나는 작은 가지들과 덤불들을 쓸어 모아 지게에 차곡차곡 얹는다. 내 머리보다 높은 크기로 나무를 올리고 어깨에 매면 어깨가 꽤 아프다. 처음 지게를 맬 때는 너무 아파 팔도 못 들었는데 이제 좀 익숙해졌다. 배를 기다리며 먹는 달콤한 고구마는 왜 이렇게 쉽게 배가 꺼지는지 야속하기만 하다. 그래도 이마저도 싸 오지 못해 하루 종일 물로 배를 채우는 사람도 있으니 굶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알아야 한다.
아버지는 지게에 여벌의 짚신을 가지고 갔다. 워낙 험한 산이다 보니 신고 갔던 짚신이 금세 해지기 때문이다. 고무신도 귀한 신발이었기에 일할 때는 늘 짚신을 신고 학교 갈 때만 고무신을 신었다. 가끔 마을에 잔치가 있는 날이면 신발 때문에 웃지 못할 일도 생겼다. 잔칫집에 오니 손님들은 옷도 잘 차려입고 때깔 고운 흰 고무신을 신고 오기 마련이다. 헌 고무신을 신고 잔칫집에 가서 남이 벗어놓은 흰 고무신을 바꿔 신고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런 일을 몇 번 당한 사람은 고무신을 벗어 방으로 가져가 옆에 놓고 국수를 먹거나 마루 밑에 숨겨 두기도 했다. 나도 때깔 좋은 흰 고무신을 보고 아버지 생각이 잠깐 났지만 내가 누구던가. 뼈대 있는 가문의 자손 아니던가. 유혹을 물리치고 잔칫집 떡 한쪽 얻어먹은 것으로 만족한다.
#떡 #보리밥 #무수감자 #메떡 #보리개떡 #서낭댕이 #시루떡
오늘은 음력 정월, 서낭제를 지내는 날이다. 일 년에 한 번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떡을 먹는 날이다. 쌀밥 먹기도 힘든데 떡을 언제 먹겠는가. 쑥설기는 수수에 쑥을 섞어서 만든 떡이고, 그냥 개떡이 있는데 채반에 호박잎을 깔고 강낭콩이나 밤콩을 넣고 밀가루로 만든 떡이다. 제일 맛없는 떡은 보리개떡인데 겉보리를 방앗간에서 찌고 남은 보리겨 고운 것을 가져다 찌는데 미끌거리고 맛이 없다. 솥 밑에 무를 넣고 하는 메떡은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그중 뭐니 뭐니 해도 최고의 떡은 서낭제 떡이다. 개인과 마을의 안녕을 빈다고 해서 하는 떡이니 대충 아무거나 넣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서낭제 떡을 얻어먹기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서낭제가 시작되면 동네 아주머니들이 시루떡 단지를 들고 서낭댕이를 넘어 서낭나무 앞에 장사진을 이룬다. 중리마을에 사는 무속인이 서낭제를 시작하면 본인 차례가 올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린다. 드디어 차례가 오면 가지고 간 시루떡을 올리고 무속인이 소지를 읽고 태워준다. 우리들은 서낭제를 지내기 전 서낭나무 안 큰 굴 안에 몰래 들어간다. 너무 오래된 나무라 나무 안에 어린아이 너 댓은 들어갈 수 있다. 무속인에게 들키면 당연히 혼나기 때문에 숨소리도 내지 않고 있는다. 드디어 제사가 시작되고 무속인이 시루떡을 던지기만을 기다린다. 마치 아기새처럼 입을 벌리고 던져진 시루떡을 잡기 위해 그 좁은 굴 안은 아수라장이 된다. 좁다, 옆으로 좀 더 가라, 하며 옥신각신 하지만 밖에서 추위에 달달 떠는 것보다는 백 배 천 배 나으니 잔말 없이 몸을 잔뜩 웅크리고 앉아 기다린다. 물론 무속인에게 걸리면 걸진 욕은 덤이다. 시루떡 한쪽을 잡아 쥔 놈은 후다닥 나무에서 내려와 혹여 떡을 뺏길세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뛴다. 무속인에게 잡히면 끝장이다. 떡 한쪽 얻어먹기 위해 이토록 피눈물 나는 노력을 했다는 것을 알런가 모르겄다.
겨울이 되면 주요 식량은 고구마다. 우리는 무수감자라 부른다. 아버지 말이 옛날에는 무수감자도 귀해서 못 먹었다며 아껴 먹으라고 한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아껴 먹으라는 것인지를 모르겠다. 배가 고파도 먹지 말고 가만두고 눈으로 보라는 것인지, 한 입 먹고 잘 뒀다가 두 입 먹으라는 것인지 말이다. 그래 봤자 썩기밖에 더 하겠는가. 차라리 한입에 먹는 편을 택하는 것이 낫다. 어머니는 쌀이나 보리를 조금 넣고 무수감자는 많이 넣어 밥을 해준다. 간장에 쓱쓱 비벼 가끔은 별미로 먹기도 한다. 기나긴 겨울밤, 화롯불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고구마를 구워 먹는다. 전깃불도 없는 동네에 시나브로 밤이 깊어간다.
그때는 참 좋았습니다. 가난했지만 인정이 넘쳤고, 초등학교 운동회에 사람이 너무 많아 내 부모 찾기도 어려울 만큼 복잡했지만 그래서 더 재미있었습니다. 이제 모두 더나고 남은 사람들만이 마을을 지키고 가꾸며 살아갑니다. 마을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마을의 기억을 안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먹고, 놀고, 일하며, 기뻐하고 슬픔도 함께 나누며 사는 일, 이제는 늙어갈 날만 남았습니다. 그래도 마을에서 더불어 함께 살며 마을의 기억을 공유하기에 늙어가는 일이 그렇게 서럽거나 억울하지는 않습니다. 이 이야기는 그때가 좋았지,라고 말하는 주민들과의 대화에서 나온 단어들을 해시태그로 묶어 재구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