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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리 Nov 09. 2023

희망에 대한 허기짐

프롤로그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글은 글쓰기 작법서가 아니다. 작법서를 쓸 만큼 글을 잘 쓰지도 못한다. 당연하게도 글쓰기 비법은 단 한 줄도 없다. 그러니 글쓰기 방법에 대한 글을 찾는다면 다른 책을 찾아보기를 권유한다. 


그럼에도 글쓰기가 서두에 나선 이유는 나의 글쓰기 여정을 찾기 위함이다. 우연한 계기로 시작된 글쓰기가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어떤 글쓰기를 하고자 하는지를 스스로에게 묻고 싶었다. 더불어 나는 왜 쓰는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함이다. 


영국의 작가 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에서 순전한 이기심, 미학적 열정, 역사적 충동, 정치적 목적을 이야기한다. 그는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일을 가장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덧붙여 자신이 어떤 종류의 책을 쓰고 싶어 하는지 꽤 분명히 알고 있다고 설명한다. 세대를 넘어 위대한 작가이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것들이다. 


그렇다면 평범하기 짝이 없는 나는 ‘왜 쓰고 싶은 것인가’, 혹은 ‘왜 쓰려고 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저 단순한 호기심인지,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는지, 그도 아니면 조지 오웰이 말한 순전한 이기심인지 말이다.


말하자면 그런 날이었다. 눈이 시리도록 부서지는 햇빛을 받으며 낯선 골목을 서성거릴 때 느끼게 되는 소외된 감각과 낯설게 다가오는 감정들. 그 감정을 어쩌지 못해 몇 달을 애꿎은 소주잔만 탓하기도 했다. 빈 소주잔이 쌓여갈 즈음 알았다. 내가 왜 글을 쓰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이 정처 없는 감정들의 속사정이라는 것을 말이다. 어쩌면 다른 이들의 글쓰기에 대한 그 미친 희망 혹은 욕망과 닮아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마저 품게 되었다. 


욕망은 부족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하는 마음이다. 희망은 어떤 일을 하기를 바라거나 앞으로 잘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한다. 나는 내 부족한 인간성을 타인에게 찾기 위한 욕망을 가지는 것일까, 아니면 뛰어난 작가가 되기 위한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한 욕망일까. 아니 어쩌면 희망에 대한 허기짐을 챙기려는 순진한 욕망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인터뷰 없이는 글을 쓰지 못한다. 애초부터 상상력에 기초한 작가가 되기는 글러먹은 존재인 것이다. 그렇다고 인터뷰는 쉬웠을까. 거절을 밥 먹듯이 했다. 어떤 이가 내게 말했다. 인터뷰어는 거절을 먹고사는 직업이라고.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그 말을 들은 직후 가게 주인의 등에 떠밀려 말도 꺼내보지 못한 채 나왔기 때문이다. 간혹 인터뷰를 수락했어도 어린아이처럼 묻는 말에 답만 하는 경우도 많았다. 가끔은 이어지지 않는 대화에 민망하기도 했다. 그런 인터뷰가 끝난 이후에 글 쓰는 일은 정말 고역이었다. 한마디로 꾸역꾸역 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썼을까. 


이 글은 그야말로 나의 고군분투 글쓰기 과정이다. 때로는 미흡했고, 가끔은 부족했으며, 종종 열등감에 시달렸다. 그래서 어쩌면 이 글은 타인이 읽어주었으면 혹은 공감해주었으면 하는 글이 아니라 나 스스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글이 될 것이 뻔하다. 부끄럽게도 그런 이유로 이 글을 시작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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