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지 못한 말들-글쓰기 그 미친 희망
노트 한 권을 꽉 채워 쓰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지난 일기장이나 수첩을 뒤적거리다 보면 꼭 한 두 장쯤은 빈 페이지로 남아 있다. 새로운 노트에 대한 기대감이 수첩을 마감하지 못하게 하기도 하며, 빽빽하게 써 내려간 미련한 메모들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는 일을 주저하게 만들기도 한다. 아니 어쩌면 빼곡하고 촘촘한 일기들은 세상에 흡수되지 못한 채 빠져나온 허기진 창자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마을에서 아흔여섯 살 할머니를 만난 적이 있다. 먹고살기 위해 바느질을 했다. 바느질 솜씨가 소문나면서 한복 만드는 일을 했다. 남편은 집에서 호미 한 번 든 적이 없었다. 가난한 집에 시집와 17 식구가 복작대며 방 2개짜리 집에 살았다. 자식들 공부를 시키기 위해 서울로 상경했다. 한복집에서 일하며 아이들을 가르치고, 시댁에 돈을 보냈다. 시어머니가 연로해지면서 쉰 살에 시골로 내려왔다. 와서 또 한복 만드는 일을 했다. 하루에 한복 두 벌, 두루마기 세 벌씩 만들었다. 아흔다섯 살까지 수의 만드는 일을 했다. 당신이 입을 수의도 직접 만들었다.
바느질해서 남은 건 굽은 등 밖에 없다고 말하는 할머니의 등은 마치 꼽추처럼 약간 불룩했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눈치채기 어렵다. 그 나이에 안경을 쓰지 않고도 신문을 본다. 경로당에서 혹 고기를 먹게 되는 날이면 소주 반 병은 너끈하게 마실 줄도 안다. 남은 소주병을 들고 다니며 혹 못 마신 사람에게 한 잔 따라주기도 한다. 틈틈이 텃밭 농사도 짓는다. 그 시대에 고생 안 한 사람 없다며 모두 자기 먹고살기 위해 한 것이니 새삼 공치사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불의의 사고로 남편이 죽고 원망을 많이 했다. 평생 화장품 하나, 양말 한 짝 사준 적 없지만 입 다툼 한 번 해보지 않았다. 성장한 4남매의 효도를 지금 당신 혼자 받으니 남편을 원망한다는 것이다. 좀 더 오래 살았으면 자식들 효도받으며 함께 행복하게 살았을 텐데 하는 원망이라고 했다.
할머니는 매일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 노트를 펼치고 일기를 쓴다고 한다. 등잔불도 아니건만 환한 LED 등 밑에 앉아 있는 할머니 머리 뒤에 긴 그림자가 드리워 있을 것만 같다. 뭉툭하고 주름진 손에 연필을 쥐고 천천히 또박또박 써 내려간다. 손에 너무 힘이 들어간 탓에 쥐가 나기도 한다. 공책에 써진 글씨는 심하게 흔들거린다. 간혹 맞춤법도 맞지 않는다. 아무도 보는 사람 없으니 괜찮다. 할머니가 하루도 빠짐없이 고행처럼 기록한 노트에는 어떤 쓰기의 말들이 있었을까 훔쳐보고 싶었다. 그런 할머니는 백 세를 채우지 못하고 영면했다.
그런 날이 있다. 달조차 자신의 그림자를 모르는 어둑한 밤, 미칠 듯이 밀려오는 문장의 파도, 정제되지 않은 사고의 파편, 종이 위에 쓰레기처럼 나열되는 단어들, 지끈거리는 머리를 꾹꾹 누르며 그 조각을 주워 담는 일은 나를 다듬는 과정이었다. 성실하고 부지런한 삶이 아니라 의문과 질문을 던지는 일이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면서 노트에 적힌 글들은 쓰기의 말보다는 반성의 말들이었다.
삼성전기에서 부서장의 성희롱 사실에 대해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해 배상 판결을 받아낸 이은의 변호사는 지승호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기사는 잠깐이에요. 재판도 잠깐이고요. 간극이 있잖아요. 그 간극이 혼자의 삶인 거죠. 글을 씀으로써 상황을 스스로 정리할 수 있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고, 자신을 치유할 수도 있고, 다음 일을 결정하고 선택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저한테 글쓰기는 절대적 무기죠. 육군 보병부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쓰는 행위 그 자체가 무기가 되는 삶. 너무 과도한 의미 부여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그러나 적어도 글을 쓰지 못하는 순간이 불안한 지금의 나보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그 불안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머릿속은 온통 하얗다 못해 창백한 푸르름이 지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