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청년
어떤 청년이 있다.
사회에서는 그들을 ‘자립준비청년’이라 부른다.
자립준비청년은 아동 학대, 빈곤가정, 결손가정 등 보호자의 양육이 불가능한 경우 아동양육시설, 그룹홈(공동생활가정), 위탁가정 등에서 만 18세까지 생활하는 이동을 말한다. 본인이 원하는 경우 만 24세까지 퇴소를 연장할 수 있다. 2020년 10월부터 시군구청에 아동보호팀을 설치, 아동보호전담요원을 배치해 운영하고 있다. 2023년 보건복지부 자립준비청년 통계에 따르면 2019년 2587명, 2020년 2368명, 2021년 2102명, 2022년 1740명, 2023년 1173명이 퇴소했다. 자립의 주체를 강조하고 청년 연령대를 고려해 2021년부터 ‘보호종료아동’에서 ‘자립준비청년’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자립준비청년에게는 보호 종료일 기준 5년간 월 50만 원의 자립수당이 지급되며, 자립정착금 1000만 원을 지원한다. 2024년 기준 서울시는 2000만 원, 대전·경기·제주는 1500만 원, 경남 1200만 원, 그 외 지역은 1000만 원이다. 0~17세까지 일정 금액을 저축하면 1:2 비율로 정부지원금을 매칭해 18세 이후 지급하는 디딤씨앗통장이 있다. 이상이 국가에서 정한 자립준비청년에 대한 정의와 지원이다.
정부가 말하는 자립준비청년은 도와주고 보살펴주어야 하는 아이였다. 정말 그럴까? 정부가 말하는 청년이 아닌 다른 청년의 진짜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그저 듣고 싶다는 단 하나의 욕망이 나를 그들 앞에 서게 했다.
아이가 태어난다. 가족에게 단 하나의 특별함이었다. 어느 겨울 모진 찬바람이 겹겹이 입은 옷을 뚫고 들어오는 날, 낯선 공간에 들어온 아이는 어른이 속하지 않은 세상에서 다정함과 지지를 갈구한다. 아이는 어른이 되었다. 스스로 밥을 해 먹어야 한다. 먹기 위해 시장에서 노동력을 교환해야 한다. 집도 구해야 한다.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해야 한다. 내 몸이 먹고, 입어야 할 것을 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어른은 책임질 일이 많아지며 무엇하나 내 뜻대로 되는 일이 없다며 자신을 타박한다. 그래서 어떤 청년들의 웅크린 목소리를 듣는 여정은 나에게 아이에서 어른으로 가는 어디 같기도 했다. 청년들은 아이와 어른 사이, 그 어디쯤에 있는 것일까.
그들 모두가 저마다의 사연으로 조금은 짧기도 하고 조금은 긴 시간을 견디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내가 만난 청년들은 평범하게 살기를 원했다. 경제력을 유지해 주는 안정적인 직장, 구체적이고 선명한 생활을 회복시켜 줄 안온한 집, 알콩달콩 미래를 같이 꾸려 갈 짝꿍과 가족 같은 것들이다.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두려움과 불안도 있다. 평범하고 싶다는 말은 무엇보다 삶에 대한 거짓 없는 욕구 혹은 열망이 아닐까.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진짜 어른이 무엇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우리는 반드시 진짜 어른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무엇보다 자립준비청년을 만나면서 지금의 나는 어른이지만 어른인 줄 모르고 살아왔다는 점이다. 그들 앞에서 나는 부끄러운 어른이었다. 진성의 평범한 어른, 지수의 기댈 수 있는 어른, 하늘의 여유 있는 어른, 다연의 길을 다져주는 어른은 이미 그들에게 있는 어떤 어른이었다.
내가 만난 청년들에게는 반듯함과 정직함, 당연한 것에 대한 불온함, 다정한 완벽함 같은 것들이 있었다. 내가 미처 만나지 못한 청년들에게는 또 다른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을지 나는 아직 모른다. 다만 아무 말하지 않아도 응, 그래,라고 말해줄 수 있는 어른, 평범함의 잣대를 들이밀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어른, 딱 그만큼의 어른이 되어보자 다짐했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당연하지 않은 것이 익숙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회에서 나는 그 어떤 청년도 위로해 줄 수 없었다. 그저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쓸 뿐이었다. 어떤 청년의 이야기를 담아내기에 나의 언어는 가난했다. 그럼에도 가난한 나에게 자신의 온전한 목소리를 들려준 네 명의 청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