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만난 건 아동양육시설에서다. 한 달 동안 그곳에서 사회복지사 실습을 했다. 사무국장은 공간 안내를 한 뒤 여자 아동 방에 실습 업무를 배정했다. 사무실 옆 식당에 들어갔다. 바닥 청소를 하던 그가 나를 보고 인사한다. 씩씩하고 우렁찬 목소리다. 앞치마를 두른 그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한 달 동안 그가 차려준 점심을 먹었다.
조리실은 두 명의 조리사가 근무한다. 아침 근무조는 오전 6시에 출근하고 저녁 근무조는 오전 10시에 출근한다. 아침 식사는 7시에 시작하니 전날 전처리를 해놓고 간다. 식사 후 아이들이 등교하면 설거지와 정리가 남는다. 숨 돌릴 사이도 없이 교사들의 점심을 고민한다. 평일 교사들만 먹는 점심은 그때그때 정한다. 비가 오는 날에는 칼국수나 수제비를 끓이기도 한다. 매번 식사를 마친 후 잘 먹었습니다,라는 말에 유일하게 그가 네,라고 답한다. 그 말이 듣기 좋았다. 어쩌다 그의 말이 들리지 않으면 서운하기까지 했다. 고개를 돌려 눈으로 그를 좇으면 옆 사람과 말하는 중이다. 조용히 식당 문을 열고 나온다.
5시 30분, 저녁 식사 시간이 되면 그가 복도에서 밥 먹어,라고 그야말로 소리를 지른다. 2층 남자 아동들에게 하는 소리다. 그가 시설에 있을 때만 해도 숙소와 식당이 떨어져 있었다. 조리사의 목소리는 커질 수밖에 없다. 밥 먹자는 말만큼 세상 반가운 말이 있을까. 그때의 기억을 다시 돌아온 시설에서 느껴보고 싶은 그의 감성이라고 한다. 아이들 배꼽시계 소리와 계단을 내려오는 발걸음이 만나 경쾌하다. 돌아서면 밥이다. 그가 그 시설에서 퇴소한 자립준비청년이라는 사실은 사회복지실습이 끝난 뒤 알았다. 실습이 끝나고 한 달 뒤 그를 카페에서 만났다.
제가 있었던 원에서 일한 지 일 년 6개월 정도 되었어요. 서울에 있는 호텔 주방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많이 힘들다고 해서. 처음에는 한 달 동안 주방에 사정해 평일에만 호텔에서 일하고 금요일 밤에 내려와 일요일에 올라가고 했죠. 예전에 내가 살았던 공간이고 힘들어하시니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내려왔죠. 호텔 그만둔 건 후회 안 할 수는 없죠. 어쩌겠어요. 후회 많이 안 하는 타입이에요.
그때 나는 일자리를 구하고 있었다. 외환위기로 모두가 실업자가 되어 거리로 내몰리던 당시 누구도 나를 빌려 가는 사람은 없었다. 멸종된 도덕과 아무도 주워가지 않을 이데올로기를 버렸다. 길바닥에 휩쓸려가는 나뭇잎들이 서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나에게 달려왔다. 나의 고지식함, 비겁함과 비열함을 나 스스로 용서하고 싶었다. 어찌하든 빌어먹어야 하는 현실의 나를 지겹도록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후회는 미련을 남기고 걱정은 고민을 만든다. 이미 되돌릴 수 없는 페이지에 다시 후회를 적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미련 맞은 나와 달리 그는 재빠르게 자신의 마음을 다잡고 후회를 접는다. 나는 미치도록 그가 부러웠다.
원래는 제과제빵을 하려고 했어요. 중학교 3학년 때 내가 뭘 해야 할지, 고민했죠. 공부는 제 장점이 아니었어요. 운동이나 손재주가 있었는데 그때만 해도 운동이 살아갈 방법이 없었어요. 그림도 배울 곳이 없었고. 요리는 어떨까 싶어 제빵을 배웠는데 이외로 맞더라고요. 4년제 가고 싶었는데 원에서 선생님이 허락을 안 해줬어요. 이유는 몰라요. 저는 선생님에게 대드는 성격이 아니어서 결국 2년제 호텔조리학과를 갔죠.
한식과 양식을 고등학교 때 배웠고, 대학 생활하면서 중식과 일식을 배우려고 했는데 과제 폭탄에 알바하느라 못했어요. 첫 등록금은 원에서 알아봐 줘서 장학금으로 해결하고, 기숙사비는 원에서 한 번 보조해 주고 나머지는 제가 냈죠. 기숙사비가 일 년에 100만 원으로 비싸지는 않았어요. 그래도 너무 무리했죠. 1학년 여름에는 막노동하고 겨울에는 돈가스집에서 일하고, 2학년 때는 아침에 중식당, 저녁에는 편의점 알바 했는데 잘 수 있는 시간이 30분에서 한 시간밖에 안 됐어요. 눈이 너무 아프고 걸어가면서도 자더라고요. 결국 한 달 하고 저녁 알바만 했죠. 그때부터 병이 생겼어요. 뭐만 하면 자요. 제가 그렇게 잠이 많은 타입이 아닌데 가만있다가도 자요.
알바요? 돈 모아 두면 나중에 사회 나가서 쓸 돈이 필요하니까. 그때는 여행 목적도 있었어요. 아는 동생이랑 여행 약속했거든요. 결국 갔죠. 4박 5일 동안 일본 다녀왔어요. 해외여행이 처음은 아니었어요. 1년에 한 번 도내 각 시설에서 우수 아동을 뽑아 해외에 다녀왔거든요. 중학교 때는 캄보디아, 고등학교 때는 일본. 그때는 가이드가 있고 인솔하는 선생님들이 있었는데 동생과 가니까 더 재미있었죠.
그가 조리실에서 음식을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수저로 연신 간을 본다. 고개를 왼쪽으로 한 번, 다시 수저에 남은 국물을 찔끔 한 입, 이번엔 오른쪽으로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의 표정은 알다가도 모를 듯했다. 두 살부터 어른까지 모두의 간을 맞추는 일은 쉽지 않다. 누군가 말했다. 어머, 음식 솜씨가 좋으시네요, 하다가 그 사람이 급식실이나 음식점에서 일하는 순간 바로 음식이 왜 이래요?라고 돌변하는 것이 사람 입맛이라고 말이다. 두 살 아이가 밥투정을 심하게 하던 어느 날, 양념간장에 밥을 비벼 김을 싸서 준 적이 있다. 간장에 비빈 밥을 살짝 맛을 봤더니 짰다. 나도 모르게 짜! 하고 말했다. 순간 그의 눈이 동그래지면서 짜요? 뭐가? 한다. 아니라고, 그저 간장을 너무 많이 넣어서 그런 것이라고 허둥지둥 밥을 조금 더 넣었다. 그제야 안도하는 그를 보며 생각했다. 세상에 다른 이의 입에 밥을 넣어주는 모든 조리사와 요리사는 위대하다고 말이다. 세상 제일 맛있는 밥은 남이 해주는 밥이니까.
학교 졸업하고 취업해서 바로 서울로 갔죠. 배우려면 서울로 가야 하니까. 호텔이 공고가 잘 안 나오고 경력직만 나오더라고요. 쉴 수는 없고. 레스토랑이라도 알아보고 일을 한 거죠. 호텔은 플랜이 있어요. 그에 비해 레스토랑은 그때그때 달라요. 다양성과 관점은 높아지는데 변동성이 있어 치여 살 수밖에 없어요. 반면 호텔은 그것만 잘 지키면 돼요. 수원에 있는 레스토랑이었는데 저랑 안 맞았어요. 드라마에서나 그런 줄 알았는데 파벌이 나뉘더라고요. 이 사람이 시키는 대로 하면 저 사람에게 혼나고, 막내 입장에서는 일할만한 공간이 아니었어요. 어느 주방이든 그럴 거예요. 계약기간이 있으니까 일 년 정도 있다가 서울로 다시 나왔죠. 이 호텔 저 호텔 알바하다가 그 호텔과 맞아서 일하게 된 거죠.
주방에서 하는 일은 힘들다. 단순하게 힘들다기보다는 근력이 소실되는 일이다. 언뜻 생각하면 많이 움직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부엌은 최적의 동선을 고려해 설계한 공간이다. 조리사는 재료를 손질하기 위해 일정 시간 서서 씻고, 다듬고, 칼질한다. 손목과 허리만 아프고 움직임이 없다. 불 앞에서 조리할 때도 어깨와 팔 힘만 들어간다. 그릇에 담기 위해 몸만 돌린다. 자신의 몸을 지탱해 줄 근육이 없으면 오래 버티기 어렵다. 그를 천천히 바라본다. 짧은 스포츠머리,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 헬스장을 다니며 꾸준하게 운동한다는 그는 스물여덟의 청년이다.
자립하고 식비 지출이 제일 많았어요. 식비는 어차피 먹어야 하잖아요. 덜 먹을 수도 없고. 안 그래도 말랐는데. 서울 갔는데 맛있는 게 너무 많아요. 먹어봐야죠. 더구나 주방에서 일하잖아요. 서울에 있을 때는 교통비가 7~8만 원 정도 들어가고. 월세, 통신비, 공과금 기본적으로 나가는 돈이 많았죠. 제가 일할 때는 주방 첫 월급이 160이었어요. 시급으로 안 따지고. 주는 대로 받아야죠. 레스토랑은 2년이면 주임이고 호텔은 5년은 지나야 정규직이 돼요. 원에서 일하면서는 LH임대주택에 거주하면서 오토바이로 출퇴근하고 밥은 원에서 해결해요. 쉬는 날에는 사 먹어요. 쉬는 날까지 음식을 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서울 가서 반년 정도는 고시원에서 살았어요. 이사할 때 원에서 차로 도와줬어요. 짐이 세 박스였어요. 샘이랑 짐 싣고 고시원에 도착해 내리고 끝. 요즘은 이사 지원 같은 것도 있는 것 같은데 저 때만 해도 없었어요. 아~내가 이런 데서 살아야 하는구나, 뭐 이런 생각? 이제 사회생활 시작이구나, 힘들게 살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오던 때가 선명하게 기억난다고 한다. 공기도 안 좋고, 사람도 많았다. 길을 걷다 보면 사람에 치였다. 비켜주지도 않는다. 인정이 없다고 생각했다. 지하철도 처음 타 봤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지하철은 그야말로 지하 세계였다. 출구도 많고 환승 구간도 찾기 어려웠다. 눈에 보이는 풍경이 지방과 달랐다. 한 달이 지나고 모든 상황이 적응되었다. 생활은 쳇바퀴처럼 돈다. 어디에 살아도 환경에 쉽게 적응한다. 그에 반해 상황은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부지런히 일해 돈은 벌지만 밥도 먹어야 하고 월세, 공과금, 통신비, 관리비 등을 해결하면 쥐꼬리다. 이른바 숨만 쉬어도 나가는 돈이다. 가족 중 한 명이 아프거나 이사 등을 하게 되면 허리띠를 졸라맨다. 벗어날 수 없는 생활의 굴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