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1997년생인데 저 때는 퇴소하면서 지원금 500만 원이 전부였어요. 98년생부터 지원금이 인상되었어요. 조금 늦게 태어났거나 퇴소했으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도 했죠. 저보다 먼저 나간 형들은 아무 지원 없이 살았으니까 더 힘들었죠. 시대도 운이라고 생각해요. 엄청 어려웠죠. 그때 고시원 보증금이 400만 원 가까이 됐어요. 수원에서도 보증금 500만 원 내에서 집을 알아봤는데 서울에 임대아파트가 있다는 정보를 알아서 가계약을 했어요. 못 돌려준다고 해서 돈을 떼인 적이 한 번 있었어요. 혼자 살아가는 게 어려워요. 쉽지만은 않아요. 서류 심사받고 신청하는 과정은 그다지 힘들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다만 LH임대주택을 처음 신청할 때 어떻게 하는지도 몰랐고 무지한 상태에서 가볍게 생각했죠. 선생님이 신청해 보라고 해서 그때야 하게 되었는데 일찍 했다면 주거생활을 좀 편하게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퇴소 전에 어느 지역에서 어떻게 살 것인지를 준비했으면 좋았을 텐데 퇴소가 다가오니까 나가게 된 거죠. 마음가짐을 일찍 하고 스스로 할 줄 알았어야 했는데.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그때는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이후에 더 힘든 시기가 오니까 그게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묻혀서 지내는 거죠. 시간이 약이라고 하니까.
불행한 시대에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청년이 있다. 청년이 거리를 떠돌며 비를 맞는다. 가랑비에 자기 몸이 젖는 것도 모른 채 하염없이 걷는다. 시대도 운이라고 생각했다. 좋은 시대를 지나오지 못한 청년은 출구 없는 인생을 그저 아득한 표정으로 지켜볼 뿐이다. 청년이 손을 내밀어 비를 적신다. 힘없이 젖어드는 비가 청년의 하얀 손가락을 따라가며 슬픈 저수지가 생긴다. 저수지에서 허우적대는 청년을 구할 방법이 내게는 없다. 그가 나에게 고백한다. 고백이라기보다 희미한 웅얼거림 같기도 하다. 청년의 고백은 상처 입은 봄 이파리 같았고, 부서진 말의 조각을 모으는 것 같기도 했다. 축축하게 젖은 청년의 검은 점퍼가 무거워 보인다. 나는 말이 없다. 그저 청년의 말에 침묵할 뿐이다. 청년이 점퍼에 달린 모자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빗속을 비적비적 걸어간다. 그가 떠난 버스정류장에서 나는 가늘고 긴 가랑비에 속절없는 마음이다. 떠나지도 못하는 내 희망이 이토록 야속하다. 나는 청년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그때 아버지가 직장암 3기였어요. 간병도 해야 하고, 가지고 있던 돈도 치료비에 많이 쓰고. 스물네 살이었는데 인생 최대의 위기였죠. 일하면서 간병하니까 힘들더라고요. 못 견뎠어요. 그냥 버틴 거죠. 아버지가 천안에 있는 병원에 있었는데 일주일에 한두 번은 누나가 봐주고 제가 다 했거든요. 일도 하고 간병도 하니 너무 힘들었어요. 아버지가 다혈질이에요. 집에 가고 싶다, 사람들에게 시비 걸고, 다른 사람이 코 골면 욕하고. 결국 6인실에 있다가 4인실로 옮기고 그러면 병실 비용이 올라가고. 엄마는 배움도 적고 한국말도 잘 모르세요. 병원에서 동의서나 서류 등을 보여주면 잘 몰라요. 누나도 장애가 있어요. 위로 형과 누나가 있는데 형이 맨날 돈 달라는 말밖에 안 해서 지금은 아예 연락 안 해요. 내 삶에 여유는 없어요. 아직 빚이 많아요. 돈 모으면 집으로 빠져나가는 상황이에요. 스물두 살 2월에 퇴소했는데 보육원 밖이 어떤지 자세히 알지 못했고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산 거예요. 만약 과거로 돌아간다면 절대 그렇게 안 살죠. 내가 왜 몰랐을까 후회하는 것도 많아요. 그때 알았더라면 충분히 잘 살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가 버티는 삶을 말한다. 그는 일반 가정에서 성장한 청년보다 자신이 사회생활을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힘들게 살아왔기에 버틸 마음가짐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버틴다’는 말이 좋다. 과도한 부와 명예에 휘둘리지 않으며, 지나친 허세나 과시로 자만하지 않는 그저 보통의 존재로 버티는 삶도 나쁘지 않다. 누구에게나 어렵고 힘든 시간이 있다. 다만 내밀한 농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인생이라는 종이를 꾸깃꾸깃 접어도 반듯하게 펴질 날이 오는 때가 있는 것도 아니다. 세상은 견디고 버틴다고 바뀌지 않는다. 다만 나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갈 뿐이다. 그래서 버틴다는 것은 세월의 녹진함을 견디어 내는 그 이상의 어떤 힘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 버티었고, 현재도 버티고, 앞으로도 버티어 낼 것이다. 삶은 지금 이 순간을 견디고 버티어 낸다는 것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니까.
제가 원에 들어간 게 일곱 살 겨울이었어요. 처음에는 형과 누나도 같이 갔어요. 한 달 정도 지내다가 어느 날 형과 누나가 없어졌어요. 나만 남았어요. 갑자기 어디를 간다고 하네? 학교 갔다 오니까 없어요. 샘들은 거짓말하죠. 좀 있다 온다고. 알고 보니 형과 누나는 그제야 장애 판정을 받고 장애인 시설로 간 거죠. 형과 누나랑 떨어져 살아서 남매간 정은 없어요. 저는 원에 있는 게 싫었어요. 다 때려치우고 싶기도 했죠. 그래도 죽는 건 전혀 생각 안 했어요. 내 인생이 아깝잖아. 중학교 때 담임 선생님이 한 말 때문이었어요. 그때 학교폭력이 많았는데 샘이 죽을 용기가 있으면 걔를 죽이고 살아라, 억울하게 왜 자기가 죽냐, 뭐라도 하라고 그랬어요. 저는 그때만 해도 키도 작고 놀림도 많이 받았는데 그 말에 감동했어요. 그래서 절대 죽는다는 건 생각 안 해요.
그해 겨울은 잔인했다. 빨개진 두 귀를 손으로 눌러보지만 온기 없는 두 손마저 이내 얼어버리는 날이었다. 엄마 아빠가 있는 집에서 나와 모르는 사람들 속에 홀로 있었을 소년의 마음은 어땠을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득해지는 아무도 모르는 마음이었다. 괜찮다고 등을 토닥이는 선생님의 두툼한 손바닥 온기가 느껴진다. 소년의 퀭한 눈이 손을 더듬는다. 그것은 염려인가, 위안인가, 원망인가, 미심쩍음인가. 일곱 살 소년의 눈에 이슬이 고이며 무지근한 가난의 공기가 발목을 끈질기게 잡는다. 잠시도 머무르기 싫었던 원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있다는 희망 따위는 없었다. 일상의 묵묵함이 주는 나른하고 달큼함 같은 것도 없었다. 그저 하루를 살았고, 살아냈다. 그것만이 소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지 않았을까. 대책도 없이 나는 일곱 살 소년의 마음이 되어가고 있었다.
원에 있는 형한테 찍혀서 그 형이 퇴소할 때까지 힘들었어요. 제가 일곱 살 때였는데 그 형은 저보다 늦게 들어왔어요. 형은 개성도 강하고 공부도 잘하고 두루두루 잘했어요. 형이 내 머리를 살짝 쳤는데 그 장면을 부원장님이 보고 형을 엄청 혼낸 거죠. 그게 형한테 찍힌 원인이죠. 난 기억도 안 나요. 원에서 안 맞는 날이 없었죠. 그냥 방으로 끌고 가서 때려요. 자기 마음에 안 들면 때리는 거죠. 형들이 축구하자고 하는데 하기 싫다고 하면 맞아요. 텔레비전 보다가 장난으로 옆구리 툭 쳤는데 욱하면 맘에 안 든다고 때려요. 형들 기분 내키는 대로 싸대기도 맞고, 옆에 그릇 있으면 그릇으로도 맞아요. 인원수가 줄어들면서 폭력도 줄어들게 돼요. 원이라는 곳이 좁은 공간이다 보니 애들은 윗사람을 보고 배울 수밖에 없어요. 동생들은 언니나 형들 보며 배우는데 좋은 모습만 보고 바뀌지 않아요. 그런 사람은 소수에 속해요. 나쁜 모습을 보고 배우는 것이 더 빨라요.
마트에서 일면부지 사람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살인을 저지르고, 가게 주인은 본사 임원에게 칼을 휘두르고,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다 헤어진 여자를 살해하는 뉴스가 오르내리는 세상이다. 나는 한 번도 누군가에게 뺨을 맞아본 적도, 벌을 받아본 적도 없다. 그래서인가, 폭력적인 상황이나 소식을 접하면 온몸이 움츠러들며 웬만하면 피하고 싶다. 축축한 이불속으로 파고들며 생각한다. 슬프다. 슬픔은 어떤 모양일까. 잘려나가지 못한 나뭇가지에 아슬아슬하게 앉아 있는 새, 원망과 체념의 덩어리를 품고 시간의 누더기를 뒤집어쓴 느릅나무껍질 같기도 하다. 되는대로 맞았다던 소년의 슬픈 유년이 봄도 여름도 아닌 애매한 4월처럼 느껴졌다.
원에서 살면 애들한테는 놀림감이에요. 초등학교 때 장애가 있는 친구가 있었는데 선생님이 잘 챙겨주라 해서 잘해줬어요. 근데 친구들이 둘이 사귀냐고 놀리고, 이 정도는 그런가 보다 했어요. 중학교 가서는 더 심하죠. 지나가면 시비 걸고 싸우고. 소위 일진이나 양아치들이 더 많았어요. 그냥 어디든 도망치고 싶었어요. 집에서 살고 싶다고, 언제 데리러 오냐고 어리광도 부렸죠. 그런데 부모 입장도 이해되니까. 고등학교 가서는 놀리는 애들은 없었지만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대학교 가서는 많이 신났죠. 여행이 컸어요. 나는 좀 더 나은 삶을 살고 있구나, 여기는 이렇구나, 저기는 이렇구나, 이런 생각이 드니까. 새로운 관점이었어요. 여행이나 독서, 스포츠 등 여러 경험을 해봐야 하는 것 같아요. 저는 사람들과 만나 새로운 것을 느끼는 걸 좋아해요. 원에 있으면 양식은 접할 기회가 별로 없는데 새로운 거나 맛있는 거 먹을 때가 제일 좋아요. 대학교 가서 볼링을 처음 해 봤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새로운 사람 만나 취미 활동을 함께 하게 되고, 그 사람이 좋아하는 노래나 스포츠가 있으면 같이 좋아하게 되고. 모르던 노래인데 어, 너무 좋다 이러면서 빠지게 되고.
부산스러운 봄이었다. 내내 웅크리고 있던 겨울이 산수유를 따라 휘적휘적 봄 마중을 나간다. 오늘도 어제도 어머니는 종일 식당에서 일하다 밤늦게 집에 들어온다. 퉁퉁 부은 다리로 싱크대 앞에서 미역국을 오래오래 끓인다. 건조대에 널려 있는 빨래를 걷는다. 콩나물시루에 쪼르르 물을 붓는다. 아버지는 누런 러닝셔츠를 입은 채 모로 누워 꼼짝하지 않는다. 늦은 밤, 고기가 없는 멀건 미역국에 밥을 말아먹는다. 어머니는 밥과 깍두기, 김을 번갈아 가며 먹는다. 국 드세요. 소년이 말한다. 어머니는 왼손으로 국그릇을 밀어 소년 앞에 놓는다. 언제 데리러 오냐고 소년은 더 이상 묻지 않는다. 아침이 오니 가야 하는 것을 알 뿐이다. 소년은 뒤척거리는 잠을 뒤로하고 동트는 새벽을 걸어간다. 소년의 뒤로 하얀 목련이 처연하게 떨어지며 누렇게 짓이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