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에서 일하면서 아이들에게 좋은 거 해 먹이고 싶죠. 근데 안 먹어요. 채소는 무조건 싫고, 안 먹어본 것은 더 안 먹고. 저도 어릴 때 채소를 안 먹긴 했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어요. 저 때 하고는 다르니까. 제가 어릴 때 조리사 선생님을 ‘작은 엄마’라고 불렀어요. 작은 엄마 혼자 일했고 한 달에 두 번만 쉬었어요. 냉동식품도 전혀 사용하지 않았어요. 작은 엄마 쉬는 날은 미리 조리한 음식을 데워 먹거나 라면 먹는 날이었죠. 지금처럼 후원이 많지 않아 오히려 라면 먹는 날엔 행복했어요. 제가 고등학생 때 작은 엄마가 퇴직했고 다른 조리사 선생님이 오셨는데 맛이 없어서 잘 안 먹었죠.
사회생활하고 다시 돌아와 보니 많이 변해있더라고요. 가장 많이 달라진 건 강압적이지 않은 체재죠. 저 때만 해도 학년별로 청소 담당이 있었어요. 형들은 소각장 청소하고, 2학년만 되어도 세탁기 돌리는데 지금은 6학년도 세탁기를 못 돌려요. 나중에 사회에 어떻게 적응하겠어요? 정리 개념도 없어요. 책이나 물건을 한쪽에 놓으면 그게 정리인 거예요. 어릴 때부터 청소의 기본을 알아두면 나중에 도움이 되는데 사실 좀 걱정이 돼요. 청소할 줄 모르니까. 틈나는 대로 알려주거든요. 나도 잔소리 들으면 싫은데 총대를 멘 역할도 있어야 할 거 같아서. 우리하고 기준이 너무 달라요. 저희만 해도 후원도 별로 없었고, 옷도 형들 거 물려 입고 그랬어요. 제 관점에서 보면 기본이 안 된 거 같아요. 그래서 잔소리를 할 수밖에 없어요. 2000년대생 이후부터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저희 위 세대는 우리보다 더 힘들게 살았잖아요. 저는 위 세대와 코드가 좀 맞는 거 같아요. 너무 급하게 변하는 것 같아요. 진짜 말이 안 통하고 뭔 말인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지금 아이들은 받는 것에 익숙해 있어요. 그게 당연한 게 아닌데. 물론 감사함을 아는 애들도 있어요. 저 때만 해도 철없는 애들이 많아서 대드는 아이들이 많았어요. 특히 여자애들. 청소를 왜 해야 하냐며 남자애들과 많이 싸웠어요. 함께 공간을 이용하는 건데 당연한 거 아니냐 했죠. 그래서 그때 ‘여자와 남자는 다른 생물이다’라고 생각했죠. 중학교 때는 여성 공포증이었다가, 고등학교 때는 여성 혐오증이었어요. 사회생활 하다 보니 그냥 걔가 이상한 아이였던 거죠. 좋은 여자도 있구나, 지금은 그렇게 생각해요.
요즘은 원에서도 곱게 키우다 보니 아무것도 모르고, 일반 가정과 비슷한 거 같아요. 지금 애들에게 뭐 시키면 대충 해요. 자기가 하는 건 귀찮고, 자기가 하는 일은 다 맞고. 어릴 때부터 간단한 알바 정도는 해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사회에 나갔을 때 덜 힘들어요. 알바도 안 해보면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어요.
사회복지 실습을 했던 시설 내 식당 한편에는 후원으로 들어온 라면들이 쌓아져 있다. 아이들은 간식이나 야식으로 먹기도 하고 특히 공휴일에는 라면을 많이 먹는다. 먹을 것이 없어서 먹는 것이 아니다. 매일 먹는 밥 사이, 감칠맛이 폭발하는 라면의 후루룩 넘어가는 소리의 특별함을 먹는다. 전쟁과 보리고개를 겪은 세대가 먹을 것이 없어 배가 고팠다고 말하면 요즘 세대가 이렇게 묻는다. 라면이라도 먹지 그랬어요? 나조차도 할 말이 없어 고개를 숙인다. 아마 그의 마음이 그렇지 않았을까. 그때와 지금이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최선을 다해 견디고 방황하고 버티는 것은 비슷하지 않을까.
컵라면 종이 뚜껑을 반만 연다. 수프 봉지를 탈탈 털어 넣는다. 뜨거운 물을 표시선만큼 붓고 4분을 기다린다. 나무젓가락을 두 개로 짝 가르는 순간이 먹어야 한다는 신호다. 적당한 농도의 수프를 면과 함께 섞으니 쫄깃한 면발과 얼큰한 국물 빛깔이 나온다. 끊기지 않게 면발을 후루룩 후루룩 넘기며 지금이 아닌 그때의 그를 생각한다.
가정형편이 안 좋아서 시설에 간 건데 퇴소해도 집에는 안 갔어요. 간섭이 심해요. 대학교 때 집에 간 적이 있어요. 저녁에 피시방에 갔는데 게임을 왜 하냐, 10시가 넘었는데 왜 안 들어오냐 등등 집에서는 살 수 없겠다 싶었죠. 두 분 사이가 별로 안 좋기도 하고 집이 좁아요. 어릴 때는 방학 때마다 집에 갔어요. 그때는 원에서 맨날 형들에게 맞는 것보다 집에 가는 게 행복했죠. 나도 크다 보니 나한테 뭐라 하는 사람도 없고. 제가 고등학교 3학년까지 반장이었고. 원에서는 회장이었어요. 그러다 대학 오니까 너무 가벼운 마음이 들었어요. 대학에서는 제재하는 사람도 없고, 정리하는 공간도 기숙사로 한정되어 있잖아요. 저는 자유를 만끽했어요. 이게 진정한 자유구나. 여기서 더 자유가 있으리라 생각해요. 돈만 있으면 여가를 더 즐길 수 있고, 아직 내 자유는 더 남았어요.
그가 말한 자유가 가족 관계로부터의 홀가분함을 말하는 것인지, 15년 집단생활의 독립에서 느끼는 편안함인지 더 물어볼 수 없었다. 다만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청춘’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부재한 희망 속에서 훅 들어오는 라일락 냄새에 어쩔 줄 모르는 마음, 번민과 좌절을 돌아볼 여력도 없는데 어김없이 쏟아지는 햇볕을 마주하는 기분. 나에게 청춘은 바락바락 접고 싶은 시간이었다. 단어와 문장 사이 책갈피처럼 꽂혀있는 청춘에 분명 그가 말한 자유가 있으리라 믿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