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 외부에는 작은 도서관이 있다. 기업 후원으로 설립된 도서관은 하얀색 외관에 삼면이 통창으로 되어 있어 사계절 모습을 그대로 담을 수 있는 곳이다. 책장에는 아이들이 볼 그림책부터 고학년이 읽을 인문서가 골고루 배치되어 있다. 서가 앞에는 낮은 테이블이 있어 체험프로그램이 진행되거나 주말 아이들 공부방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그날은 미취학 아동을 제외하고 모두 놀이공원에 간 날이었다. 아이들이 없는 공간은 적막하다 못해 쓸쓸했다. 나는 도서관에서 적당한 책을 골라 펼쳤다.
문자 중독에 가까운 나는 멍한 상태로 가만히 있는 것이 어렵게만 느껴진다. 잠시라도 비는 시간이 있으면 책을 읽거나 뉴스를 본다. 그러던 요즘, 창밖을 멍하게 바라보는 일이 잦아졌다. 하얀 뭉게구름이 느린 속도로 회색 구름과 자리를 바꾸는 모습, 새들이 자기 갈 길을 찾아 빛의 속도로 날아가는 풍경, 지붕 위를 건너 다니며 주변 탐색전을 벌이는 고양이들. 숨이 막힐 것 같은 하루하루의 삶에서 익숙하고도 평범한 풍경에 마음의 나사가 헐거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일 년의 시간을 무사히 건너왔다는 안도감, 또 다른 벚꽃 같은 세월의 터널을 지날 것 같은 설렘으로 봄을 기다리는 것처럼 말이다. 매번 같은 봄이지만 똑같은 봄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어느새 막내가 돌아올 시간이다. 방에서 막내와 놀아준 지 삼십 분 정도 지났을까. 밖이 시끌벅적하다. 놀이공원에 다녀온 아이들의 얼굴에 피곤이 내려앉아 있다. 노는 일이 아직 피곤할 나이는 아니겠지만 전날부터 흥에 겨웠던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노곤한 잠에서 아직 깨어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날 저녁은 자장면이다. 중국집에서 후원한 자장면과 탕수육이 테이블마다 가득하다. 이런 날은 진성도 쉬는 날이다. 주변을 살피니 이미 퇴근을 한 모양이다. 아이 B는 자장면을 먹지 않고 탕수육만 먹는다. 면 종류를 잘 먹지 않고, 고기와 채소 위주의 음식을 즐긴다. 나와 식성이 비슷하다. 나중에 배고플 텐데 몇 젓가락이라도 먹으라고 하니 별로 먹고 싶지 않다고 한다. 아이 A는 오른손으로 자장면을 먹으면서 왼손은 이미 탕수육으로 향한다. 앞접시에 아이가 먹을 탕수육과 소스를 덜어 준다. 막내는 포크를 줬더니 자장면을 입으로 먹는지 얼굴로 먹는지 모르겠다. 자장 범벅이 된 막내를 번쩍 들어 샤워실로 간다. 아이 D도 자장면 한 그릇을 다 먹고 탕수육까지 야무지게 먹는다. 밥을 다 먹은 아이들이 순서에 맞춰 샤워실로 들어간다.
창밖으로는 만개를 기다리는 목련이 파란 하늘 아래 목숨 같은 자신의 하얀 생명을 피우고 있었고, 담장을 따라 모여 있는 개나리 덤불이 나도 여기 있소, 라며 노오란 잎사귀를 들이밀고 있다. 저마다의 봄을 전하기 위해 애쓰는 여린 것들을 보며 가슴 한편이 까끌거린다. 부지런히 봄 마중을 나온 그것들과 달리 나의 꿈은 게을렀다.
무언가 하고 싶은 일도 없었고, 눈앞에 닥친 일을 처리하며 전전긍긍하기도 했으며, 무엇을 먹고 싶다기보다는 단순한 허기짐에 허겁지겁 먹어 치우는 일이 더 많았다. 나의 도돌이표 같은 제자리걸음을 누군가한테 들키고 싶지 않았다. 줄곧 한 방향으로 흘러가던 삶이 아이들을 보면서 궤도를 이탈했다. 그건 마치 막막한 안갯속을 걸어 나와 쏟아지는 햇빛을 손가리개로 막아낼 때의 아득함과도 같았다.
비린내 나는 날것에는 삶의 생생함이 있었다. 아이들의 충실한 욕망, 소박하고 평범한 기대, 아이가 어른이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 알 수 없지만 아이의 그 날것의 생생함이 이토록 짜릿하고 절절했다.
여자 아동 방에는 중학생 이상 고학년이 5명 있다. 하지만 그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는 좀처럼 없었다. 기회가 없다기보다는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 아이들이 사용하는 단어는 내가 모르는 말이 더 많았고, 학교 과목도 처음 들어보는 과목도 있었다. 태어나면서부터 디지털을 자유자재로 다룬다는 알파세대다. 다이얼 전화, 공중전화, 삐삐에서 휴대전화로 이어진 내가 그들과의 접점을 찾는 일은 무너진 산자락을 일으켜 세우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막내를 유난히 예뻐하는 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체육 2등급을 받아 시무룩한 표정의 아이는 실업계 고등학교를 진학했지만 아직 진로를 찾지 못해 고민 중이었다. 취업과 관련해 자격증도 준비해야 하는데 공부에 영 취미가 없다. 때가 되니 시험을 보고 시험 때가 되니 교과서를 들썩거려 보는 중이다. 실업계에서도 대학 진학을 하는 경우도 많지만 적어도 반에서 4등 안에는 들어야 내신에 맞춰 대학을 진학할 수 있다. 일찌감치 대학 진학은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
진로를 정하는 일은 쉽지 않다. 어릴 적부터 운동을 잘하거나 그림을 잘 그린다면 그게 내가 가야 할 길이라고 믿고 밀어붙이는 삶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다. 뭐 하나 특출난 재능도 없고, 혹 있다 하더라도 알고 보면 고만고만한 재능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밥 벌어먹고살기는 애초부터 글러 먹은 것이다.
중학교 때 자신의 적성에 맞는 진로를 결정했다는 진성이 순간 대단하게 느껴졌다. 열여덟에 아무것도 정하지 못해 아무것도 되지 못한 나는 아직 제대로 자라지 못한 어른처럼 느껴졌다. 아이에게 진로를 정하는 일은 천천히 생각해도 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이에게는 시간이 없다. 열여덟 아이에게는 퇴소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하늘이가 떠올랐다. 딱히 하고 싶은 일이 없었다. 사회복지학과를 선택하려 했지만 선생님의 만류로 컴퓨터공학과로 진학했다. 마지막 학기는 시설에서 다니면서 일주일에 한 번만 학교에 다녔다. 그 외 나머지 시간은 방에서 빈둥거렸다. 빈둥거리는 만큼 재미있는 일이 있을까. 공상의 세계에서 흔감하며, 낮잠을 느긋하게 즐기기도 하고, 내 마음 가는 대로 의식의 흐름에 따라 시간을 죽이는 놀이다. 퇴소하고 나서는 달라졌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밥을 먹고, 청소를 한다. 자격증 취득을 위해 학원도 다니고, 아르바이트도 한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가 폴더에 쌓여간다.
부지런히 이력서를 제출하는 취업준비생의 하루는 조마조마한 마음의 연속이다. 이력서를 내고 서류 심사에서라도 통과하면 좋겠지만 1차에서 떨어지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합격 여부를 요즘은 대부분 문자로 통보한다.
‘바쁘신 와중에도 불구하고 지원해 주셔서 감사드리며 안타깝게도 불합격되셨음을 알려드립니다.’
조사나 부사가 조금씩 다를 뿐이다. 면접조차도 허용되지 않은 문자를 오랫동안 들여다본다. 바쁜 와중에 지원한 건 맞다. 취업까지 놀 수 없으니 아르바이트를 한다. 주말에는 식당에서, 평일에는 편의점에서 일한다. 지원해 줘서 감사하면 면접의 기회라도 주어져야 하는 거 아닌가? 왜 나는 안 되나? 왜 나만 이러는 건가? 어쩔 수 없는 모멸감이 밀려온다. 모멸의 빛깔이 있다면 그건 무슨 색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도리질해 가며 머릿속에서 문자를 지워보아도 모멸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때 들었던 노래가 루시드 폴의 ‘들풀을 보라’였다.
‘난 대단한 게 별로 없어, 봄을 따라왔을 뿐, 헌데 올해도 사람들, 무정한 사람들, 날 짓밟으려 해, 참 어렵지 사는 것, 내 뜻대로 원하며 사는 건, 참 두렵지, 잠시 여기 있을 동안 아무도 돌보지 않아, 누가 나를 꺾는가, 누구의 힘으로 내 목을 꺾는가, 누구의 권리로 내 몸을 꺾는가.’
노래를 무한반복해 들으며 다시 이력서를 쓴다. 쓰는 순간에는 혼자라는 고립감이 몰려온다. 지금의 이 짧으면서도 긴 시간을 견디고 버티는 일은 그저 살아내야 하는 자의 몫일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고립감에서 구원시켜 줄 사람은 없겠지만 ‘너는 혼자가 아니야’라는 말을 하늘에게 건네고 싶었다. 언제든, 누구든, 너의 옆에는 혼자가 아닌, 어른이 있다고.
아이들 삶의 처음과 현재를 순서 있고 단정하게 매만지고 더듬어 가는 일은 애초에 불가능해 보였다. 실습 기간은 고작 한 달이었고, 진성, 지수, 하늘, 다연을 만난 건 겨우 두어 번이다. 아마도 내가 아이들에게 인사하는 순간이 마지막이 될 터였다. 그렇다고 맥없이 넋 놓고 앉아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최선을 다해 듣고, 보고, 쓴다. 하지만 최선을 다했다는 말만큼 허망한 일이 있을까. 삶의 좌표를 찾아 부유하는 것이 인생 아니던가. 좌표를 어딘가에 찍어야만 하는 건 아니다. 제대로 찍었다고 해서 그것이 정답일 리도 없다. 매번 최선을 다하고 부지런히 살아내도 인생의 숙련도는 도저히 가늠되지 않는다. 다만 아이들이 살면서 아니, 살아내면서 자신만의 삶의 구멍 하나쯤은 가지고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세상이 만져지지도 않고, 견디어지지도 않을 때 슬그머니 남몰래 꺼내어 숨어 들어갈 수 있는 구멍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