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어린이집 하원 시간에 맞춰 마중을 나갔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우르르 나온다. 막내 외 2명의 아이가 같은 어린이집에 다닌다. 아이를 마중 나온 아이들이 나무 주변을 뱅뱅 돌고, 작은 벤치를 오르락내리락거리며 희희낙락한다. 아이들이 나무 주변에 웅크리고 앉는다. 누군가 ‘네잎클로버다!’를 외친다. 아이들이 어디, 어디? 하며 우르르 몰려든다. 작은 잎 밑에 한 잎이 더 있어 다섯 잎이다. 차마 네 잎이 되지 못한 다섯잎클로버는 그대로 땅바닥에 버려진다. 아이들은 다시 다른 놀이에 집중한다.
나만 바닥에 뭉그러진 다섯잎클로버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네잎클로버가 행운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전설이 있다. 나폴레옹이 네잎클로버를 발견하고 고개를 숙였다가 탄알을 피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실은 네잎클로버는 기형으로 돌연변이기에 네잎클로버를 발견하면 행운이 온다고 믿는 편이 더 신뢰할 만한 이야기처럼 생각된다. 나에게 행운이 온 적이 있었던가. 아니 어쩌면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던가. 아이는 자신에게 온 행운을 운명처럼 믿으며 살아갈까? 행운이 되지 못하고 비애가 되어버린 클로버에서 나를 읽은 것은 나의 지나친 생각인지도 모른다. 그런 잡다한 생각을 하는 사이 어린이집 차가 들어온다.
형과 누나들의 손을 잡고 뒤뚱뒤뚱 걷는 막내의 뒤를 따라간다. 막내는 땅바닥에 개미가 기어가는 모습만 보아도 걸음을 멈추고 어? 한다. 형과 누나는 응, 개미야, 하며 대수롭지 않게 손을 채근한다. 여전히 시선은 개미에게 고정되어 있지만 형과 누나의 손은 놓지 않는다. 이번에는 아스팔트 사이를 비집고 나온 민들레다. 아예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손으로 민들레를 만진다. 조그만 입을 오므려 후우 불어도 본다. 누나가 빨리 가자고 해도 이번에는 옴짝달싹하지 않는다. 뒷짐을 지고 아이를 본다.
아이의 십 년 후 혹은 이십 년 뒤를 상상해 본다. 저 아이는 행복할까? 아이는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게 될까? 아니 어쩌면 행복과 불행은 같은 속도로 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인생의 모든 일이 불확실하기도 하고 기대하지 않았던 일도 생길 것이다. 그 길 위에서 아이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기다리지 않아도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가고 어떤 어른이 되어가는 나를 발견하게 되는 순간이 올 테니까. 나는 아이 옆에 쪼그리고 앉아 아이와 함께 민들레 홀씨를 후우 불었다.
오늘은 막내가 처음 미용을 하는 날이다. 자원봉사 온 미용사 선생님 앞에 남자아이들이 쪼르르 선다. 여자아이들은 미용실에 가기를 원한다. 환한 조명이 있는 타원형 거울 앞에 앉으면 마치 그 순간만큼은 공주가 되는 기분이다. 오로지 나를 위한 시간이다. 머리를 뒤로 넘겨 수건을 받치고 손으로 조물조물 두피를 만져준다. 매일 샤워하고 머리를 감지만 이토록 정성스러운 머리 감기는 처음이다. 그 기분을 잊지 못하는 여자아이들은 용돈을 모아 미용실에 간다.
남자아이 둘이 의자에 차례대로 앉는다. 막내는 아직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배가 고파 칭얼대던 막내에게 밥에 장조림을 넣고 김에 싸서 입에 넣어주었던 터다. 막내의 목에 커트보가 덮이고 미용 선생님이 가위를 들자마자 막내의 울음보가 터진다. 내 허리를 꽉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입에 넣은 밥을 채 삼키지 못한 채 토해버린다. 조금만, 조금만, 막내의 울음에 애가 탄 미용 선생님의 손길이 분주하다. 결국 막내 머리는 비스듬한 사선 앞머리로 고정되었다. 눈썹에, 코에, 입술에 머리카락이 조각조각 붙어 있는 막내를 안고 샤워실로 향한다. 다행히 막내는 울음 끝이 짧다.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줄기에 금세 생글거린다.
하늘이 시설에 온 때가 막내보다 한 살 많은 세 살이었다. 기억도 나지 않는다. 하긴 세 살 적 일은 나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저 어렴풋하고 희미한 형태로 남아 있을 뿐이다. 가령 머리에 상투를 올리고 흰 수염을 길게 기른 증조할아버지 모습이나 외할머니가 사는 한옥집 마당에 있던 우물 같은 것들이다. 헝클어진 기억의 토막을 엮으면 그것을 온전한 기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온전하다고 한들 기억의 그릇이 푸근함과 따스함만을 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기억을 물어보는 일은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했다. 기억의 깊이에 얼마만큼 내가 빠질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감당하지 못할 두려움은 덮어두는 것이 나았다.
그날 저녁 실습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씻지도 않고 부엌 냉장고 앞에 선 채로 소주 한 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아이들 앞에서 나는 아직 자라지 못한 어른인 것 같았다.
선생님이 시내에 나갔다 온 날이었다. 아이들 옷을 구색에 맞춰 사 가지고 왔다. 막내가 입을 봄 점퍼, 말라깽이 B의 몸에 착 붙는 초록색 니트, 귀염둥이 A에게 맞춤인 분홍색 티셔츠, 살이 조금 빠졌다고 좋아하는 D에게는 청바지를 입혔다. 허리가 낙낙한 것을 보며 D는 어느새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다. 청바지가 조금 길어 위생 선생님이 수선하기 위해 가지고 갔다.
매일 보지만 조금씩 크는 아이들이다. 아이들이 새 옷을 입고 팔짝팔짝 뛰는 모습을 보니 진성 생각이 났다. 어릴 적 형들의 옷을 물려 입고, 운동화도 떨어질 때까지 신었다. 철이 바뀔 때마다 옷을 사 입는 일은 꿈도 꾸지 못했다. 시설에 사는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에게 못 사는 애, 불쌍한 애, 놀림거리, 만만한 애로 보인다고도 했다. 못 사는 애는 닳고 닳은 운동화에서 티가 났고, 불쌍한 애는 크리스마스에 선물 하나 못 받아 티가 났으며, 고아원에 산다고 아이들이 놀려 티가 날 수밖에 없었고, 부모 형제도 없는 아이니 그저 만만한 아이였을 터였다.
아동양육시설 대부분이 고아원에서 출발해 지금에 이른다. 한국전쟁을 전후로 갈 곳 없는 아이들이 모인 곳이 고아원이었다. 우리는 아직도 흑백사진 속 고아원 아이들을 기억한다. 콧물을 질질 흘리다 못해 누렇게 말라버린 콧물, 단정하게 빗어 넘긴 지 못한 머리, 소맷부리가 닳아진 허름한 옷을 입은 아이를 떠올리는 것이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그리고, 어른들은 그 장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나는 새 옷을 입고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이리저리 비춰보는 아이들을 보며 나의 편협함과 옹졸함을 스스로 꾸짖었다.
중학생 아이들이 중간고사가 있어 일찍 돌아온 날이었다. 아이 A에게 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주어도 된다는 말을 선생님에게 들은 터였다. A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모습을 본 중학생 아이가 자기 방으로 들어가다가 몸을 반쯤 뒤로 돌려 나를 흘긋 쳐다보며 말한다. 아이스크림 먹는 시간은 6시 40분인데……. 나는 무언가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처럼 우물거렸다. 선생님이 초등 저학년은 된다고 했는데……. 내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중학생 아이의 방문은 이미 쾅 소리를 내며 닫히고 만다.
지수는 시설에서 규칙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시험 기간이 되면 바구니를 마련해 자신의 휴대전화를 바구니에 넣으며 아이들에게 말했다. 언니도 휴대전화 여기에 넣어둘 테니 앞으로 두 시간 동안은 공부만 하는 것으로 하자고. 언니가 하는 말이니 동생들은 토시 하나 달지 않고 휴대전화를 모두 바구니에 넣었다.
반드시 시설이 아니더라도 두 명 이상이 살게 되면 루틴 같은 규칙이 필요하다. 치약을 중간에서 꾹 눌러 짜 쓰던 사람도 밑에서부터 짜서 사용해야 하며, 세탁기에 옷을 넣는 사람이 있으면 꺼내어 너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분리수거를 하면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도 있어야 하는 법이다. 하물며 20명 이상이 거주하는 이곳에서 규칙은 서로의 생활이 유지될 수 있게 하는 하나의 장치 같은 것이다. 눈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의 삶은 정교하고 질서 정연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