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인간이 태어난 이래 늘 곡선이었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넘어 이웃 마을로 가고, 굽이진 고개를 지나 장을 보러 다녔다. 굽이진 길을 걷는 동안 가족의 안녕을 비는 서낭당이 있었다. 길가 어딘가에 힘없이 굴러다니는 돌 하나를 조심스럽게 올려놓고 손바닥을 비벼가며 정성을 다해 산신에게 빌었다. 이 길을 가는 동안 자연의 해로부터 무사하고 우리 가족의 무사안녕을 비는 일이다. 이는 민속신앙을 뛰어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굽이굽이 가는 길에 어떤 위험이 닥칠지 모르니 말이다. 현대사회로 들어오면서 인간은 곡선의 길이 아니라 직선의 길을 개척했다. 일직선의 길은 인간에게 편리함, 속도감, 시간의 단축을 부여했지만 곡선의 길이 선사하는 설레임, 두려움, 희망은 잃어버리게 됐다.
홍성군 광천읍 광천리 삼봉마을 서북쪽으로는 장항선 철길이 지나간다. 장항선은 1920년 조선경남철도주식회사에 의해 건설된 천안-장항 간 광궤철도로 '충남선'이라 불렀다. 장항선은 곡량을 수출하고 석탄과 금을 실어나르는 역할을 해왔다. 장항선 개통과 함께 1923년 12월 1일 (주)경남철도의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한 광천역에는 장사꾼들과 각종 해물 및 해산물이 총집합하는 역할을 해왔다. 통근시간이면 발 디딜 틈도 없이 생선장사와 다라이장사들이 북새통을 이뤘고 각 역마다 사람들이 줄을 지어 내리고 탔다. 자리가 없으면 지붕에 올라타기도 했다. 완행열차였기 대문에 떨어질 염려도 없었다.
철로가 생기면서 인간에게 필요한 물품들이 철로를 따라 공급됐고 당연히 좀 더 빨리 움직이기 위해 곡선은 허용되지 않았다. 철길은 일제강점기의 유산이기도 하지만 시간이 중첩되어 만들어진 풍경이기도 하다.
인간은 바다를 건너기 위해 배를 만들었고, 강을 건너기 위해 징검다리나 외나무다리를 만들었다. 모든 길은 인간의 개척사이기도 하다. 그런 반면 골목길은 집과 집이 만나 형성된 길이다. 좁다란 골목길을 따라 친구들과 숨바꼭질을 하고, 겨울이 되어 집이 얼면 연탄재를 부셔 놓기도 한다. 나와 이웃이 모두 다니는 공유의 길이기 때문이다.
골목길을 만나는 순간 길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혼란스러움과 두려움은 잠시 내려놓고 누군가 만나기를 기다려볼 일이다. 어는 순간 어는 고샅에서 무언가 쓰윽 고개를 내밀지도 모른다. 그럴 때는 놀라지 말고 다정하게 품어줄 일이다.
삼봉마을은 어느 농촌마을과는 조금 다르다. 삼봉산 아래 집들이 옹기종기 모이면서 자연스럽게 골목길을 만들었다. 산자락을 타고 좁은 골목길을 따라 앞집, 옆집, 뒷집과 만난다. 방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대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냄비에 미역국을 끓여서 가져온 아랫집 할머니, 1평 남짓한 마당에 배추를 늘어놓고 김장을 할라치면 어디선가 나타나는 뒷집 아주머니가 있다. 삼봉마을로 이사 온 사람들 대부분이 처음에는 셋방살이로 시작했다. 셋방살이라 해서 마냥 서럽거나 눈치 보이는 일은 아니었다. 골목길을 마주 보고 이웃하는 집들이 있어 서로가 서로를 보듬어주는 셋방살이였다.
한 사람이 바듯하게 지나갈 수 있는 골목길은 황톳길이었다. 1970년대 이후 시멘트로 포장되었지만 마을이 형성된 이후 골목길의 모습은 예전 모습 그대로다. 흙으로 다져진 황톳길은 길을 나서는 순간 발에 느껴지는 촉촉함과 따뜻함을 제공하지만 불편함도 초래했다. 비가 오면 황토가 쓸려가고 장화를 신지 않으면 오가기도 힘들었다. 장화 구하기도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시멘트로 포장된 길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오르막 골목길과 계단을 올라야 하고, 해가 들지 않는 좁은 골목길은 걸핏하면 이끼가 끼어 조심조심 내려가지 않으면 미끄러지기 십상이다.
직선의 길이 인간의 욕망이 표출된 길이라면 곡선의 길은 자연이 허락한 길이다. 길은 대문을 나서야만 만날 수 있다. 길을 나서는 순간 나를 만나고 당신을 만난다. 우리는 모두 길 위의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