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니 오전 10시다. 어젯밤 잠이 오지 않아 여러 번 뒤척였다. 김씨가 힘겹게 몸을 일으켜 화장실에서 길게 오줌을 눈다. 나이가 드니 오줌발도 시원찮고, 오줌은 왜 또 그리 자주 마려운지 하루에 스무 번도 더 가는 것 같다. 찬물에 비누칠을 해서 세수를 하고 헝클어진 머리에 물을 묻혀 쓱쓱 넘긴다. 방으로 와 손에 로션을 듬뿍 묻혀 손바닥에 문질러 얼굴에 바른다. 손으로 얼굴을 문지르니 주름살을 따라 얼굴이 위아래로 움직인다. 로션을 아무리 발라도 얼굴에서 버석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만 같다. 뽀글거리는 파마머리도 빗으로 빗어 머릿속이 훤히 보이지 않게 갈무리한다. 파마는 지난달에 했으니 두 달은 버틸 것이다.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검지 손가락에 침을 묻혀 들어 올려 휴지통에 버린다. 걸레를 집어 구부리기 어려운 무릎을 대신해 엉덩이를 밀면서 걸레질을 한다. 화장실 작은 의자에 앉아 걸레를 빨아 널어놓는다. 어제 먹다 남은 밥을 냄비에 넣고 가스레인지에 올려 누룽지를 만든다. 밥물이 끓는 동안 텔레비전을 켠다. 접이식 밥상을 펴서 냉장고에서 무 짠지와 김치를 꺼내 올리고, 누룽지 냄비를 상에 올려 늦은 아침 식사를 대신한다. 나이가 드니 먹고 싶은 것도 없다. 약을 먹어야 하니 밥을 먹고, 때가 되니 죽지 않기 위해 밥을 넘기는 요즘이다.
대문을 열고 나가니 입구에 복숭아꽃이 활짝 피었다. 한 해 한 해 몸이 달라지는 것을 느끼지만 나무나 꽃은 여러 해를 살아 우리들 눈과 마음을 기쁘게 해주니 그야말로 감사할 노릇이다. 마당에 앉아 넋을 놓고 복숭아꽃을 보고 있으니 윗집에 사는 박씨가 밀차를 밀고 들어온다.
“밥은 먹었슈?”
“좀 전에.”
“어디 가?”
“가긴 어딜 가? 여그저그 돌아다니는 거지.”
“요즘 장사 오나?”
“전화하면 올 테지. 왜 뭐 팔 거 있간?”
“아니, 나물이나 좀 뜯어볼까 해서. 심심하잖어.”
쑥이 마당에 수북하게 올라와 있다. 예전 같으면 쑥이 올라오기 무섭게 뜯어 개떡을 만들었을 텐데 내 몸이 편찮으니 귀찮기만 하다. 농사처도 남들 다 주고 집 옆에 있는 쬐끄만 밭뙈기에 상추 심고, 고추 조금 심는 것만으로도 때로는 벅차다.
1958년 시집 오던 해, 그해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다. 버선을 겹겹이 신어도 고무신 사이로 칼바람이 들어와 발이 꽁꽁 얼고, 한복 소매에 손을 집어 넣어도 손가락 마디가 얼어붙었다. 대밭들이라 해서 대나무가 많은 줄 알았는데 집 뒤 쪼금 남아 있어 이게 뭐 대밭이여, 했던 것이 기억난다. 오시대밭으로 시집 못 간 내 팔자야, 라는 말이 있어 엄청 잘 사는 동네인 줄 알았는데 잘 사는 사람은 잘 살고, 못 사는 사람은 못 살았다. 어느 동네나 다 비슷한 것이다. 논에 비해 밭이 적은 편이었다. 더구나 동네 뒤로 산이 있어 겨울이면 응달이 져서 더 춥게 느껴졌다.
아궁이에 군불을 지피려면 멀리 오서산까지 가서 나무를 해와야 했다. 남자건 여자건 화상재를 넘어 오서산으로 가는 길에는 늘 사람들로 북적였다. 어떤 이들은 해 온 나무를 광천장에 나가 팔기도 했다. 그래도 김씨 사정은 좀 여유가 있는 편이어서 나무를 팔지는 않았으니 그나마 다행이면 다행이다. 물 때문에 걱정도 많았다. 마을 앞 냇갈(광천천)에 비가 많이 오면 다리가 끊겨 건너다니지 못했다. 그러다가도 언젠가는 비가 오지 않아 4년이나 흉년이 든 적도 있었다.
논에 물 대기가 어려워 눈만 뜨면 물대기 전쟁이었다. 논 옆에 둠벙을 파 두레박으로 물을 퍼서 논에 물을 대었다. 물 때문에 웃지 못할 일도 많았다. 어떤 이는 끼니도 거른 채 밤을 꼬박 새면서 논에 물을 대었는데 다음 날 아침에 확인해보니 품었던 물이 하나도 없었다. 알고 보니 옆 논 임자가 논 가운데 구멍을 뚫어 자기 논으로 물이 흘러 들어가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런 일도 있었다. 논에 물을 대던 부녀자가 물을 대다가 지쳐서 홑치마
만 입고 논바닥에서 잠을 자다 이웃 주민이 깜짝 놀라 도망간 적도 있었다. 이런 물난리 때문에 동네에서는 ‘남한테 밥 숟가락은 줘도 물은 안 준다’는 말도 전해진다. 장곡저수지를 막으면서 장곡면 죽전리의 한이마을이 수몰되기는 했지만 그 덕분에 물 걱정은 안 해도 되니 이제 모두 옛말이 됐다.
어느새 점심 때가 지났다. 아침을 늦게 먹어서인지 배가 고프지 않다. 밀차를 밀고 비닐봉지를 하나 챙겨 집 뒤 밭둑으로 향한다. 여기저기 올라오는 머위나 뜯어볼까 싶어서다. 한창 젊었을 때는 많이 먹었지만 먹고 살기 좀 편해지면서 쳐다도 안봤다. 머위 말고도 먹을 것이 지천인데 뭣하러 고생하냔 말이다. 그런데 세상이 변했다. 머위가 해독에 좋대나 어쨌대나 하며 젊은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서 먹는다고 한다.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밭둑에 엉덩이 대고 앉자 머위를 뜯고 있으려니 등짝이 따뜻하다. 어느새 봄기운이 완연하다. 이제 조금 있으면 덥다고 부채질하는 때가 올 것이다. 언제 이렇게 나이가 들었는지 모르겠다. 남편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내고 자식들도 하나 둘 여우고 나니 혼자 남게 됐다. 자식들이 가끔 오기도 하고 전화도 하지만 품 안의 자식이라고 남편 있을 때 만큼은 못하다.
여기로 시집온 지 올해로 63년이 됐다. 이제 죽전마을 귀신이니 여기서 죽을 일만 남은 것이다. 자식들은 어머니 혼자 집에 계시니 자기들하고 같이 살자고 하지만 이제는 싫다. 평생 시부모 모시고, 시동생들 뒷바라지 하고, 자식들 여우살이 다 시켜 홀가분하기만 하다. 뭐 그렇다고 없는 살림에 자식들에게 많이 해준 것도 없다. 그러니 더더욱 늙은 몸 하나를 자식들에게 얹혀 살며 신세 지는 것은 싫다. 그저 조금씩 움직이며 밥해 먹을 수 있는 정도만 되면 혼자 지내는 것이 편하다. 누구 잔소리 할 사람도 없고, 잔소리 들을 일도 없이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심심하면 이웃 마실 다니며, 이렇게 나물 같은 거 뜯어 팔면 적어도 용돈 벌이는 되니 말이다.
비닐봉지 한가득 머위가 찼다. 밀차에 봉지를 올리고 집으로 와 늦은 점심을 먹는다. 밭에 올라온 졸(부추의 방언)을 한 움큼 뜯어 갖은 양념에 조물조물 무치니 그래도 조금 입맛이 난다. 밥을 먹고 나니 몸이 무겁고 눈이 감긴다. 잠시 머리를 대고 누운 사이 깜빡 잠이 들었다. 무거운 몸을 깨우기 위해 믹스커피 한 잔을 타서 마신다. 하루에 한 잔만 마셔야지 많이 마시면 밤에 잠이 오지 않는다. 믹스커피의 달달함이 몸을 깨운다.
밀차를 밀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한다. 코로나인지 뭔지 때문에 마을회관이 문을 열지 못한지 벌써 두 해가 된다. 망할 놈의 세상이다. 날이 따뜻한 요즘에는 버스정류장에서 모이고, 좀 더 더워지면 회관 옆 정자에 모인다. 몇 십년을 한 마을에서 본 사람들이기에 모여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지나가는 사람과 차 구경도 하다 보면 안 심심하다. 이런 게 사람 사는 맛이지 뭐 특별한 것이 있냐 말이다.
서른네 살이 되던 해일 것이다. 옆집 아주머니가 예산으로 냉이를 캐러 간다는 말에 함께 갔었다. 농사일이 없는 겨울, 냉이를 캐서 팔면 쏠쏠하다는 말에 냉큼 따라나섰다. 과수원 묵은 밭을 다니며 배낭에 냉이를 가득 담는다. 동네 여자들과 함께 다니니 심심하지도 않고 주먹밥도 나눠 먹는다. 캐 온 냉이는 냇갈(광천천)로 가져가 깨끗이 씻는다. 김씨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개건너(장곡면 죽전을 말함) 사람들도 오고, 우리 동네 사람도 가
니 그야말로 엉덩이 부딪히지 않게 자리를 잘 잡아야 한다. 냇갈에 큰 통나무를 걸고 그물을 쳐서 냉이가 떠내려가지 않게 씻는다. 5년 전까지만 해도 냉이 씻은 물로 냇갈 물이 빨갛게 변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는데 이제 나이가 들면서 하지 않는다. 늙으면 다 소용없다는 말이 새삼 실감나는 요즘이다.
버스정류장에 앉아 있으니 봄바람이 품으로 기어든다. 저 멀리 박씨가 비닐봉지 하나를 들고 털레털레 온다.
“뭐여, 뭐여?”
“막걸리 한 잔 혀~”
우리가 누구던가. 한 때 마을을 주름잡던 해롱부대가 아니던가. 한 번 마시면 끝장을 볼 때까지 마셔서 해롱부대다. 남자는 정중하게 거절이다. 동네 여자들 몇 명이 모여한 잔 두 잔 마시며 흉도 보고, 덕담도 나누며 눈물과 웃음꽃이 피었었다. 뭐가 그리 급한지 저 세상으로 먼저 떠난 사람도 있고, 남은 이들은 늙고 병들어 예전만치는 못하지만 가끔 막걸리 한 잔에 목울대를 적신다. 박씨가 막걸리를 가져오자 이씨가 집으로 뛰어가 김치를 가져오고, 오씨가 멸치볶음을 가져온다. 달큰하고 시원한 막걸리 한 잔에 오늘만큼은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한 외로움을 떨쳐본다.
혼자 사는 것이 어렵지는 않다. 다만 가는 길이 걱정이지만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개나 고양이나 인간이나 죽는 그 순간에는 그저 단지 죽는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더군다나 그 옆을 지켜줄 누군가가 없다는 사실은 생각만으로도 공포 그 자체다. 그러나 죽음 뒤에 오는 안도와 평온함이 있을 것이라 생각해본다. 그렇게라도 위로하지 않으면 두려움을 벗어날 방법은 없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죽어갈 때 누군가
손을 잡아주며 이 한마디를 해주면 좋을 것 같은데 그럴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이 모질고 험한 세상 사시느라 수고하셨어요.”
낡은 창호지 문틈으로 봄바람이 비집고 들어오며 삐걱거린다. 김씨가 모로 누웠던 몸을 일으켜 나무 손잡이를 당겨 문을 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