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고 가!

by 김보리

은하면 학산리 학동마을은 은하면 지리를 잘 알기 전에는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 물론 인간의 문명인 내비게이션을 활용하면 길 찾는 일이 어렵지는 않지만 표지판만으로 학동마을을 찾기는 어렵다. 그래서 마을 주민들은 마을 입구에 학동마을 표지석을 세웠고, 그래도 못 찾을 것을 염려해 마을회관까지 오는 길을 알려주기 위해 작은 표지석을 한 번 더 세웠다. 학이 길게 날개를 펼쳐 마을을 감싸 안고 있는 형국이라 '학동마을'이라 불렀다고 할 만큼 골짜기에 마을이 쏙 들어가 있어 초행자의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학동마을을 처음 방문한 날이었다. 표지석을 따라 굽이지고 작은 농로를 따라가니 까꿍 하며 마을이 나타난다. 학동마을회관이 보이고 논 건너편이 큰말이다. 가장 큰 마을이라 '큰말'이라 한다. 큰말 뒤로는 대나무가 울창하다. 6월이면 이곳저곳에 죽순이 우후죽순처럼 자라날 게다. 먹을 것이 부족하던 시절, 대나무는 요긴하게 사용됐다. 뒷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으며, 잘 자란 대나무로 바구니를 만들어 장에 내다 팔고, 철제가 보급되기 전까지 대나무를 구부려 비닐하우스를 만드는 데 사용했다. 죽순은 허기진 배를 채워주는 든든한 식재료였다. 이제는 그 쓰임새가 다양하지는 않지만 마을 풍경의 일부가 되어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다. 큰말에 있는 비닐하우스에서 봄바람을 타고 달콤한 딸기 향이 솔솔 흐르고, 벼를 기다리는 논에는 찰랑찰랑 논물이 고여있다.


마을회관이 있는 곳은 '새터말'이라 부른다. 해를 타고 넘어가는 산이 있는 곳이라 하여 해터말로 부르다가 지금은 새터말로 부른다. 예전에는 15가구가 살았지만 지금은 박곽순, 김한태 씨 2가구만이 거주한다. 점심때나 와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말에 시간을 맞춰 박곽순 씨 댁 마당에 발을 디딘다. 볍씨를 정리하고 있다가 소리를 듣고 황옥교 씨가 현관을 열고 나오며 "밥 먹어요"라고 한다. 잽싸게 뒤를 따라간다. 큼직하게 썰어 넣은 돼지고기를 넣고 푹 끓여낸 김치찌개와 두릅, 오이김치 등이 차려진다. 오늘 점심에는 큰말에 사는 윤복순 씨도 함께 했다.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먹어요"라고 말하는 주부는 자신의 부엌살림을 들킨 것 같은 부끄러운 마음과 더불어 그래도 찾아온 손님에게 뭐라도 한 끼 대접하고픈 두 가지 마음이 동시에 존재한다. 그렇지만 손님에게는 주부의 그 부끄러운 마음보다 허기를 채워주는 밥 한 그릇의 따스함이 더 큰마음으로 다가오는 법이다. 고봉으로 퍼 준 밥 한 공기를 김치찌개 국물에 쓱쓱 비벼 말끔하게 비운다. 참고로 집에서는 절대 그 많은 양의 밥을 먹지 못한다. 내미는 밥을 거절할 수 없어 배가 볼록해질 때까지 먹고 겨우 밥그릇을 내려놓는다. 그러면 어김없이 오는 말, "더 줄까?"


발길을 돌려 농로를 따라 내려오면 아무대미다. 죽은 아이들을 많이 묻었던 곳이 입말로 전해지면서 '아무더미' 혹은 '아무대미'라 부른다. 아무대미에는 박양순 씨와 이기자 씨 2가구가 거주한다. 널찍한 감자밭이 초록의 향기를 품어내는 박양순 씨 밭 위로는 딸 황진희 씨가 금지옥엽 아끼는 꽃밭 1000여 평이 펼쳐진다. 토종 백합, 무스카리, 별꽃, 나도 샤프란 등 400종의 꽃이 계절별로 아름답게 피어난다.


혼자 먹을 정도의 농사만 짓는다는 이기자 씨 역시 계절의 흐름을 따라 감자, 고구마, 참깨, 고추 등을 집 근처 밭에 심는다. 대문이 닫혀있으면 외출을, 열려 있으면 집에 있다는 뜻이다. 이는 일종의 암묵적 표식이다. 나 혼자 사는 곳이 아니니 '나 오늘은 외출하지 않고 집에 있소'라고 얘기하는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고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대문을 열어놓는 일, 이 또한 마을에서 함께 살아가는 기쁨이 아니고 무엇이겠는. 열어 놓은 대문에 발을 딛고 현관을 열면 환하게 웃는 이기자 씨가 보인다. "커피 마셔야지?"라며 후다닥 물주전자를 올린다.


다음 날, 아무대미를 지나 내남마을 방향으로 직진하면 우측으로 장수골이다. 장수골은 땅을 아무리 깊게 파도 물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물이 귀해 물 수(水)자를 써서 '장수골'이라 부른다고 한다. 꼼꼼한 이건월 씨를 닮은 감자밭이 위치하고, 이정옥 씨의 환한 웃음이 담겨 있는 고추밭이 있다. 그 뒤로는 고즈넉한 장명자 씨의 주택과 밭이 자리한다. 풀이 너무 많이 자라지 않았는지 밭을 둘러본다. 그리고 학동마을 박상돈 반장이 오토바이를 타고 어디선가 나타난다. 마을에 어떤, 무슨 일이 생겨도 어디선가 그 모습을 드러내는 박 반장이다.


"계란 먹어, ", "참외 있으니까 냉장고에서 꺼내 먹어."."우유 마실래?"라며 갈 때마다 무언가를 내민다. 부인 김태자 씨가 "밥 먹고 가"라는 한마디에 냉큼 밥상 앞에 앉았다. 배추김치, 열무김치, 계란 프라이와 김이 올라온다. 이 얼마나 간소하고 간결한 식단이란 말인가. 당연히 고봉밥을 잊지 않았다. 후식으로 커피까지 말끔하게 비우고 집을 나선다.


삼일 째 되는 날, 장수골을 지나 가라실로 향한다. 마을 일부가 끼어 있어 '가라실'이라 부르는데 앞가라실과 뒷가라실로 구분한다. 앞가라실에는 박상선, 박형순, 박형순, 조명옥 씨가, 뒷가라실에는 채병산, 정태호, 권종국 씨가 거주한다.


박상선 씨 마당으로 들어서니 성대 수술을 해서 목이 쉬어버린 반려견이 낯선 손님을 향해 짖어대지만 그 목소리가 가냘프기만 하다. 박상선 씨 부인 김순자 씨가 내어준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박형순 씨 고추밭으로 향한다. 큰말 윤복순 씨와 새터말 황옥교, 정찬희 씨가 고추심기를 함께 한다. 트럭이 올라오기 힘든 골짜기에 밭이 있어 박형순 씨가 나무지게로 고추묘를 옮긴다. 오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 김명희 씨가 머리에 소반을 이고 산길을 올라온다. "새참 드셔~"라는 반가운 소리에 모두가 엉덩이에 묻은 흙을 털어내고 한자리에 모인다. 오늘의 새참은 즉석 쌀국수다. 겉봉지를 뜯어 뜨거운 물을 붓고 젓가락을 반으로 쩍 갈라 손으로 비벼댄다. 쌀국수라 금세 익는다. 김을 호호 불어가며 국수를 돌돌 말아 김치 한 조각과 먹으니 노동으로 인한 허기진 배에 든든함이 채워진다. 후식으로 캔커피까지 모두 마시고 다시 일을 시작한다.


고부라진 농로를 따라 길을 가다 보니 뒷가라실의 고즈넉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뒷가라실에 살던 박상선 씨가 앞가라실로 이사 오고, 마을 원주민들이 이사를 간 집터에 귀농귀촌인들이 모여 산다. 일부러 계획한 일이 아닌데 어쩌다 보니 모여 살게 됐다. 2000년에 귀촌한 채병산 씨, 2011년에 귀촌한 권종국 씨, 2012년에 귀농한 정태호 씨가 아기자기한 울타리 속에서 마을살이를 한다.


가라실을 나와 돌아오는 길에 볼록한 배를 두드린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번진다. 우리에게 밥은 단순히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섭취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밥은 생명인 동시에, 사람과 나눈 정이다. 마을 사람들과 나눈 밥 한 그릇의 정이 물수제비 뜨듯 얇고 잔잔하게 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