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1월 16일, 새가 울고 창밖이 희붐해질 무렵 정 씨가 눈을 떴다. 오늘은 마을 총회가 있는 날이다. 이장과 반장, 총무 등을 선출해야 한다. 정 씨가 첫 이장을 맡은 지가 1959년과 1963년, 1972년, 1993년이니 이제는 젊은이들에게 내어줄 때다. 1989년에 마을에 들어온 이연복이 후보에 올랐다. 올해 마흔두 살이 된 이연복은 서산 해미 출생이다. 부지런히 농사짓고 사는 젊은이다. 총회에서 젊은 피를 원하는 주민들의 호응에 힘입어 이연복이 이장으로 선출됐다. 작목반 반장으로는 최병창이, 총무로는 정운섭이 선출됐다. 총회가 끝나고 주민들과 뜨끈한 떡만둣국을 나눠 먹었다.
다음날 은하면에서 바르게살기 모임이 있었다. 경제 극복 다짐대회를 가지고 결산 보고회를 마쳤다. 요즘 사회 안팎이 어지럽다. 제일은행과 한국은행이 공개매각을 하고, 나산그룹이 최종 부도 처리됐다. 어려운 경제 상황에 우리 농부들은 그저 열심히 땅을 일구며 사는 수밖에 없다. 이런저런 볼 일을 마치고 뚝쪽논에 딸기 거름을 주기 위해 나섰다.
1월 20일, 대한에 큰 눈이 내렸다. 최병창, 정운섭과 함께 서울 딸기 상회에 잠시 다녀왔다. 딸기 종자 가격을 확인하고, 작목반 회의를 통해 호당 1만 원씩을 걷기로 했다. 대한이 지나고 며칠 째 눈이 내린다. 이럴 때면 마을이 고립된다. 버스도 들어오지 않는 마을에서 큰 눈이 내리면 고개를 넘어 목현마을로 가는 일도 힘들어진다. 특히 산모랭이 위 소나무가 그늘져 눈이 쌓이면 도대체가 녹을 줄을 모르고 빙판길이 되어버린다. 소나무를 몽땅 베어버릴 수도 없고 그저 눈이 녹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며칠 뒤 어느 정도 눈이 녹았다. 부인과 함께 홍성 목욕탕에 다녀오기로 했다. 며칠 전부터 한파 때문인지 몸이 으슬으슬한 기운이 있다. 하긴 내년이면 정 씨 나이 환갑이다. 그저 매일같이 밥 먹고, 일만 했을 뿐인데 언제 이렇게 나이가 들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목욕탕에서 나와 부인과 함께 자장면을 먹었다. 마을로 배달이 안 되니 이렇게 한 번씩 나와 먹는 자장면 맛은 그야말로 꿀맛이다.
1월 28일 설날이다. 날씨도 맑다. 서울에 있는 큰 아들 지윤이와 둘째 지명이가 도착했다. 설을 보내고 친척들과 자식들이 모두 가고 나니 조금은 허전하다. 2월이 되어 딸기논 비닐을 씌우는 작업을 했다. 5일에는 최병창과 기성의 처, 지성의 모, 지욱의 처, 운섭의 처가 함께 했다. 7일에는 최장성 딸기 논에 비닐 씌우기, 8일에는 지명 모와 지성 모 딸기 논 비닐 씌우기를 했다. 작목반이 있으니 서로가 도와가며 일한다. 봄이 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같겠지만 시골에서의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것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자연이 주는 혜택이다.
3월이다. 딸기 흰가루병약과 타이포약을 살포했다. 3월 16일 구름이 많이 낀 날이다. 오늘은 서울과 일산에 볼 일이 있어 다녀와야 한다. 지욱 조카의 트럭을 얻어 타고 결성으로 나가 광천 가는 버스를 탔다. 광천역에서 오후 2시 35분 서울행 무궁화열차를 4800원을 내고 표를 끊었다. 서울에 들려 볼 일을 보고 일산으로 갔다. 18일 일산에서 백마역에 도착해 서울역으로 가는 통일호 열차를 탔다. 다시 서울역에서 홍성으로 오는
무궁화 열차를 3800원을 내고 표를 끊었다. 홍성에 도착해 점심으로 2500원짜리 칼국수를 먹었다.
3월 20일 마을회관에 때 아닌 잔치가 벌어졌다. 주민들이 십시일반 돈을 보탰고 강병록이 돼지를 잡아 크게 한 턱 냈다. 주민들과 함께 푸지게 먹었다.
4월이 되어 딸기를 수확하기 시작했다. 첫 수확은 상품 5짝, 중품 2짝이다. 5월 중순까지 딸기 수확이 계속된다. 딸기를 수확하면서 못자리도 함께 준비한다. 5월 중순까지 이어진 딸기 수확이 잘 되었다. 올해는 상품 277짝, 중품 102짝, 하품 36짝이다. 이 중 일부는 지욱 조카의 트럭 편에 광천장에 내다보낸다. 여기저기 꽃 피는 봄이다. 부인을 위해 홍성장에 나가 금잔화를 사다 심었다.
5월이 되니 숨 쉴 새도 없이 바쁘다. 참깨도 심고, 고추도 심는다. 딸기를 수확한 논에 논 꾸미기도 들어간다. 5월 27일 감나무논, 버드나무논, 밭논에 모심기를 했다. 5월 31일, 첫 손주 백일잔치가 있다. 마을 주민들에게 아침식사를 대접하느라 부인이 바쁘다.
광천중학교 2학년 때 정 씨는 서울에 올라가 마포고등학교로 전학했다. 3월에 입학을 했는데 6월에 한국전쟁이 나면서 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배우지 못했던 한이 두고두고 남았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들 둘만큼은 대학까지 공부를 시켰다. 그랬던 아들 녀석이 어느새 혼례를 올려 손주까지 품에 안겨주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6월 4일 제2회 지방선거가 있는 날이다. 아침 일찍 서둘러 은하초등학교로 갔다. 이번 투표는 1995년 제1회 지방선거보다 낮은 투표율로 54.0%를 보였다. 은하면은 47.1%의 투표율로 나타났다. 이번 선거에서는 자유민주연합의 이종근 후보와 무소속 이상선 후보 2명이 출마했는데 선거 도중 이종근 후보의 피선거권에 문제가 있는 것이 발견돼 이상선 후보가 100% 득표율로 당선됐다. 홍성군의회 선거는 11개 선거구에서 1명을 선출하는 소선거구제를 실시하고 정당공천제는 실시되지 않았다. 은하면 선거구에서는 정성훈 후보가 당선됐다.
7월 7일 바람이 많이 분다. 오전에 못자리논 도구치기를 했다. 다음날에는 들깨 모를 정식했다. 12일에는 최병창이 담배 건조장을 짓는다 해서 일손을 보태줬다. 담배농사는 힘들다. 정 씨도 담배농사에 손을 대봤지만 개갈 안 나 2년 하고 그만뒀다. 중순부터 이삭거름을 주고, 고추도 수확한다.
8월 15일 오전 10시 30분에 문화회관에서 열리는 광복절 기념식에 참석했다. 오후 3시에는 결성으로 가서 만해제에 참석했다. 이런저런 행사에도 참석을 해 줘야 한다. 그래야 이런저런 정보도 듣는다. 언젠가는 피고 되고 살이 될 정보들이다. 물론 오늘은 별다른 정보는 없었지만 말이다. 말일에는 배추 씨를 넣고, 무를 집 뒤 밭에 심었다. 올해 김장에 사용할 배추와 무다.
9월 10일 중리마을회관 준공식에 참석해 3만 원을 냈다. 우리 마을회관도 어느새 11년이나 됐다. 회관 페인트가 벗겨지기 시작한 지는 이미 오래전이다. 올해 총회에서는 마을회관에 대한 문제를 이야기해봐야겠다. 24일에는 바르게살기와 새마을협의회 사람들이 모여 공동묘지 무연고 분묘 벌초작업을 갔다. 면 직원들도 함께 했다. 오후에는 은하면 대천식당에서 친목회가 있어 2만 원을 지출했다.
10월이 되면서 벼 바심이 시작됐다. 딸기를 다시 심어야 하니 서둘러야 한다. 설상가상 벼 바심을 하다가 기계가 고장 나 작업이 중단됐다. 광천에 나가 기계를 손 봐가지고 돌아와 다시 시작했다. 21일에 건조기에서 벼를 빼내고 결성정미소로 벼를 보냈다. 올해 벼 수확량은 총 320포다. 다음날 딸기논 똘치기를 하고 짚을 치웠다. 말일에는 로터리를 치고 딸기를 심었다.
11월 18일 아침부터 가는 눈발이 내린다. 딸기논 하우스 철제에 구멍을 내고, 구부리는 작업을 시작했다. 철제를 논바닥에 꼽아 비닐을 친다. 26일에는 김장을 했다. 배추를 절이고 다음날 갖은양념을 넣는다. 빨갛게 물들어가는 배추는 한겨울 든든한 먹을거리다. 정 씨는 뒷마당 장독대 주변에 김칫독을 묻을 구멍을 판다. 한겨울 시원한 동치미에 먹는 군고구마를 떠올리며 정 씨가 입맛을 다신다.
12월 4일 정웅섭 아들 지건이 결혼을 한다. 돼지를 잡는다고 아침부터 부산스럽다. 본래 식은 6일 홍성 한마음예식장으로 잡혔다. 식을 올리기 전 마을 잔치를 벌이는 거다.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딸기논 하우스에 문을 달아주고 치마두르기 작업을 했다. 내년에도 올해만큼만 딸기 농사가 잘 되었으면 한다. 오후에는 연탄 500장도 주문했다. 눈이 많이 오면 배달이 안 되니 큰 눈이 오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 28일에는 군청 노덕호가 정년퇴임식을 군청 강당에서 한다고 해서 다녀왔다. 어느새 또 이렇게 한 해가 가고야 만다. 1999년을 알리는 종소리가 퍼진다.
* 이 이야기는 1930년생 정준섭 씨의 1998년 농가 영농일지를 바탕으로 재구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