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보리
그야말로 정보 홍수의 시대다. 온라인에서 검색만 하면 나오니 적절한 정보를 찾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다. 나 같은 아날로그 세대는 더욱 그렇다. 그 흔한 좋아요 한 번 누르기가 쉽지 않다. 다만 그 많은 정보들을 찾아내어 깨알같이 업로드하는 모든 이들에게 지면을 빌어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그 많은 정보 속에서 과연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는 글을 쓰는 이의 몫이다.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자신이 져야 한다.
정보를 수집할 때는 신문기사나 에세이 형식으로 작성된 자료가 아닌 공식적으로 인정된 기관의 자료를 수집하는 것이 객관적 타당성을 가질 수 있다. 신문기사 역시 당시 현안에 대해 보다 적확한 자료를 찾아 기술했을 것이다. 당연히 출처를 밝혔을 것이고 그 흐름을 따라 꼬리 물기를 하면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나는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한다. 정보의 꼬리 물기를 하거나 먼 거리라도 자료가 있다면 직접 찾아간다. 발품을 들이면 들인 만큼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온다.
하지만 기억의 개념과 근거가 부정확한 경우가 많다. 기억은 개인의 의식 속에 간직된 경험 등을 생각해내는 일이다. 나의 생애와 경험을 기억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마을의 기억이나 내가 거주하는 지역의 기억은 같은 경험이라 할지라도 그 시기와 내용이 조금씩 다르기 마련이다. 내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부분은 머릿속에서 실타래처럼 엉클어지기 마련이다. 마을에서 공동 작업을 했어도 어떤 이는 기억하지 못하는 일을 다른 이는 생생하게 기억한다. 이럴 때는 제삼자에게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야 정확한 정보가 된다.
○○마을을 조사할 때의 일이다. 마을에서는 일제강점기 안동장씨 문중에서 운영하던 소학교가 있었다. 학교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2000년 무렵에 작성된 지역신문 기사를 봤다. 하지만 그 기사에 근거해 글을 작성할 수는 없었다. 마을 내에서는 이를 기억하는 이가 모두 작고했거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했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 반복해서 물어봤다. 도시에 살고 있는 안동장씨 한 분과 어렵게 연결이 되었다. 직접 찾아갔다. 다행히 그분은 윗대 어른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마을로 다시 돌아와 지역신문 기사에 대한 정보를 줬던 어르신을 다시 찾았다. 이야기를 전해 듣던 어르신은 벌떡 일어나 족보를 가지고 왔다. 오랜 흑백사진 속에 있는 인물의 이름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사실 우리는 어제 일도 기억하기 쉽지 않다. 나이가 점점 들어가니 그 증상은 더 심해진다. 냉장고에 휴대전화 넣기가 가능해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막상 ‘어제 뭐 했어?’라고 물어보면 ‘음 뭐했지?’ 하며 우물거리고 만다. 하물며 4~50년 전 일을 어떻게 선명하게 기억하겠는가.
하지만 마을 조사 기간 중 어르신들이 기억과 추억 사이를 왕래하는 일은 분명히 즐거운 경험이 된다. 그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 또한 인터뷰어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