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니어 카피라이터가 생존하는 방법
작은 팀에서 일하는 것의 장점은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영향력이 커서 그만큼 연차 대비 주도적인 역할을 맡아 일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 장점은 곧 단점이기도 하다. 한 사람에 대한 기대치가 크다는 건 그만큼 부담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일을 배운 지 얼마 안 되었어도 나를 대체할 사람이 몇 없는 환경이기 때문에, 잘 해내야 한다.
내가 몸담았던 환경 또한 쉽지는 않았다. 광고 회사에서 일한 경험이 없는데, 그렇다고 누가 광고는 이렇게 만드는 거고 카피는 이렇게 쓰는 거라고 친절히 가르쳐주지도 않았다. 그럴 시간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초반에는 회의 시간에 아이디어를 가져가면 시원하게 혼만 나는 상황이 이어졌다. 억울하고 답답했다. 그런데 어쩌겠나. 그게 마음에 안 들어서 그만둘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스스로 깨우치고 빠르게 성장하는 것 밖에 답이 없었다.
그때부터 레퍼런스는 나의 참고서가 되었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서 광고가 나오면 건너뛰지 않고 지켜봤다. 여러 번 보다 보니 광고의 구조엔 반복되는 형식들이 있었다. 머릿속에 광고의 구조가 들어오니 숲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제 광고다운 광고 아이디어를 가져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거기에 회의 시간에 듣는 신랄한 피드백까지 더해져, 내가 레퍼런스를 통해 배운 것을 잘 소화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글 좀 쓴다고 생각해서 카피라이터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그런 오만한 자세로는 성장할 수 없었다. 카피는 '궁금하면 읽어보든가' 할 수 있는 콘텐츠가 아니라,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의 눈에 들어오도록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광고 안팎으로 매력적인 문장들을 수집했다. 뉴스레터 헤드라인, 전시회의 작품 제목, 책 속 문장, 영화 대사 등 눈에 밟히는 표현들은 혹시 나중에 카피 쓸 때 영감이 될지 모르니 곱씹어 읽었다. 숲에 들어갈 나무도 조금씩 그렇게 채워나갔다.
무엇보다 나는 결국 잘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나에게 잠재력이 있음을 믿고 묵묵히 견뎌나갔다. 신입이라서 서툰 게 당연할 텐데 그럼에도 모진 피드백을 준 사람들이 밉지만, 잠시만 봐주기로 했다. 인격을 건드리는 말들은 한 귀로 흘리고 필요한 피드백만 흡수하기로 했다.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나만큼은 나를 믿어주기로 했다. 힘이 되었던 건, 내가 이 일을 좋아한다는 거였다. 카피를 쓰고 아주 가끔 인정을 받으면, 그만큼 기쁜 일이 없었다. 즐기는 자를 이길 자는 없다.
스스로를 믿으며 일을 즐겼고 나만의 관점을 쌓아나가다 보니, 아이디어를 내는 독창적인 나만의 스타일이 생겼다. 어느 순간부터 팀원들이 회의 시간에 내 아이디어를 기대하며 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3년 뒤, 어느덧 나는 팀에서 놓치기 싫어하는 카피라이터가 되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