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자의 관점으로 본 흑백요리사

아이디어의 양과 질, 그리고 본질

by 라라

(스포 있음 주의)


흑백요리사 2의 서사는 마치 영화를 본 것처럼 깊은 울림을 주었다.

물론 제작진이 날 것의 영상들을 하나의 스토리처럼 잘 편집한 것도 크겠지만,

시즌 1과 비교했을 때 더 잘 짜인 스토리로 느껴지는 것은 인물들이 과제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흥미로웠기 때문인 것 같다.


요리사가 요리라는 분야의 '창작자'이듯이, 나도 업계는 달라도 창작하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특히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무한 요리 천국을 주제로 경연을 펼치는 장면이 나왔을 때, 아이디어 회의할 때의 모습이 많이 떠올랐다. 회의 시간도 무한 아이디어 천국(혹은 지옥일지도?)이다. 회의할 때 가져갈 아이디어 개수가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분명 양으로 승부 보는 사람이 있고, 적은 수의 아이디어에 공을 들이는 사람이 있다.


물론 정답은 없고, 어떤 방향으로든 본인이 잘 맞는 스타일로 풀어나가면 되는 일일 것이다. 다양한 요리로 계속해서 도전하는 다른 참가자들 가운데에서 한 가지 요리에만 집중한 두 사람이 해당 회차에서 1, 2위로 높은 점수를 받은 데엔 분명한 시사점이 있다. '무한'이라는 조건은 함정일 수도 있다는 거다. 조건에 현혹되어 맛있는 요리의 양이 아닌 오직 맛으로 높은 점수를 받아야 하는 목표이자 본질을 잊으면 안 된다. 많은 양을 모두 좋은 퀄리티로 가져갈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한정된 시간 속에서 누군가에겐 하나에 집중하는 것, 빨리빨리 많이 하는 것보다는 마지막 1분 1초까지 신중히 쓰는 것이 좋은 전략일 수 있다.


신입 때 회의 시간에 양으로 승부 보려고 했던 적이 있다. 난 아직 초보지만 많은 원석을 들고 가면, 보석을 누군가 발굴해 주시겠지 하는 어찌 보면 책임감 부족한 생각을 가지고 참여했었다. 물론 이것이 나의 스타일이었을 수 있겠지만, 지금 돌아보니 스스로의 편집 능력이 부족했던 것 같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 중에서 스스로 보석을 찾아내는 것도 능력이다. 그런 것을 골라서 갔을 때 좋은 것이 더 돋보이게 되는 것임을 어느 순간 느끼게 되었다. 앞으로 욕심이 앞설 때마다 이 회차를 떠올리게 될 것 같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장면은 많은 이들이 그렇듯, 결승전이다. 나를 위한 요리를 만들라는 미션이 결승 진출자뿐만 아니라 다른 셰프들, 심사위원들에게조차 난제로 보였다. 이제까지 줄곧 남을 위한 음식을 만들어오던 이들에게 자신을 위한 요리를 만들라는 것도 어렵지만, 그 평가기준이 무엇일지도 혼란스러웠을 것 같다. 이 미션에도 함정이 있었던 것 같다. 앞차례 경연에서 심사위원에게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왔으니 이번에도 심사위원의 니즈를 맞추려는 계산을 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출제자의 의도는 '나'를 위한 요리다. 실은 오롯이 자신을 위해 준비되었는지가 이 단계의 본질이었을 것이다. 먹어보진 못해도 두 요리사 모두 훌륭한 맛을 가진 요리를 준비했음이 분명하지만, 우승자의 스토리와 그의 요리에는 그 본질이 더 잘 담겨있었지 않았을까 한다.


내 상황에 대입하자면, 모두가 긍정적으로 반응했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들고 갔음에도 최종 채택이 되지 못했던 경험이 떠오른다. 아무리 아이디어가 좋아도 목표로 한 전략에 맞지 않는다면 결국엔 최선의 아이디어는 되지 못한다는 걸 배웠다. 문제를 푸는 사람은 언제나 출제자의 의도와 미션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있어야 한다.


끝으로 '재도전 성장 서사'가 짜릿하면서도 위로가 된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실패 혹은 성공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흑백요리사처럼 나에게도 다음 시즌이 있을 거라고 믿으며 재도전하며 성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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