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 산지 20년, 한국이 낯설다

by COLOUR

외국에서 오래 산 한국인으로서 나의 정체성을 찾는 일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다.

나는 한국인이라기에 한국을 떠난 지 너무 오래되었고 여기에 사는 네이티브라고 하기에는 뭔가 애매하다. 상충된 가치관이 부딪치는 일은 빈번하고 세계의 다양한 곳에서 모인 친구들과의 대화에서는 어쩔 수 없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언제나 존재한다. 그러나 이 충돌은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과도 종종 일어난다.


외국인들이 흔히 한국에 갖고 있는 편견은 가족 중심적이고 보수적일 거라는 것이다. 인도라든가 중동에서 온 친구들은 '너도 이해하지?' 이런 식으로 당연히 나도 그들이 겪는 고민을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사실 잘 이해하지 못한다. 나와 부모님의 관계는 굳히 따지자면 미국적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사실 세세하게 따지고 보면 그렇지도 않다. 내가 살았던 나라 중 미국은 개인주의를 중시하는 나라이고 가족끼리의 유대감도 평균적인 아시아의 나라들과 비교하면 그렇게까지 돈독하지 않은 편이었다. 보통 18살쯤 자식들의 대학을 가고 그 뒤로 부모님 집으로 돌아와서 사는 경우는 직장을 잃었거나 이혼을 했다거나 해서 집이 없을 경우를 제외하면 거의 없다. 나와 부모님은 함께 살지 않은지 거의 20년이 되었고 1년에 한두 번 내가 귀국할 때만 보는 편이니 남들 눈에는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다 하지 않는 것으로도 보이는 것 같다. 가족들과 전화를 매일 하는 내 인도 친구는 한 달에 한번 정도만 통화하는 나를 좀 신기하게 봤다. 그 대화를 하면서 나는 죄책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못하는 것 같아, 내가 이기적인 걸까? 그러나 우리는 떨어져 있을 때 더 사이가 좋고 돈독한 편이다.


우리 가족의 커뮤니케이션은 유니크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버지의 경우는 남의 얘기 듣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신다. 내가 힘든 일을 얘기하는 것도 스트레스받는다고 듣고 싶어 하지 않으신다. 그렇기 때문에 전화 통화를 30분 하면 주로 내가 아버지의 얘기를 90프로 정도 듣다가 끊는다. 대화 주제는 다양하지만 내 얘기를 듣지 않으신지 너무 오래된 아버지는 광고계에서 일하는 내가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 잘 모르신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아버지의 설교가 대화의 대부분이 되는데 사실 나한테는 낯설게 들리는 일이 많다. 누군가는 돈을 몇억씩 번다더라,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을 해야 한다. 1-2억 갖고는 아무 의미가 없다 등등 (우리 아버지는 사업을 하시기 때문에 돈에 굉장히 관심이 많으시다.)


이 순간 그냥 아버지가 하는 얘기를 20분 정도 들어드리는 것으로 내 자식 된 도리를 다 한다. 위에서 말했듯이 아버지는 어차피 내 의견은 궁금하지 않으시다. 내가 100억 정도 벌지 않는 한 사실 내 직장 얘기는 지루하실 것이다. 아버지는 내 친구관계도 그들이 어느 나라의 재벌이 아닌 이상 사실 별로 궁금하지 않으시다. 순진한 내 외국 친구들은 날 만날 때마다 물어본다. 너네 부모님은 어떤 분이셔? 사진으로라도 만나 뵙고 싶어. 우리 부모님은 네 친구들은 왜 이렇게 돈이 없냐고 하신다. 우리 부모님의 성공의 기준은 높고 아마 나는 거기에 평생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한국에서 살았다면 아마 이런 부모님의 모습에 그다지 의문을 품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주변에 이런 일을 겪는 한국 친구들이 아주 많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식의 의견은 궁금해하지 않고 사회의 통념을 강요하는 부모님의 모습은 사실 한국뿐만이 아니라. 중국/대만에서 온 친구들도 거의 똑같은 경험을 한다. 딸의 취향은 고려하지 않고 가능하면 몇 살 이전에 그녀를 좋아하는 못생긴 남자와 결혼하라는 친구의 어머니 때문에 친구는 좋아하지 않는 남자와 꾸역꾸역 키스까지 했다. 대만인인 내 친구의 어머님은 딸이 임신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딸 집에 부적까지 숨겨놓고 가셨고 원하시는 대로 친구는 25에 혼전 임신을 하였다. 지금은 애 둘을 낳고 결혼해서 사는 그 친구는 이렇게 얘기했다.


"God, asian society is so toxic for women!"


난 이 말이 너무 웃기면서도 마음속에 깊이 박혔다. 'toxic' 그건 정확한 표현이었다.


내가 20년 동안 외국에서 살면서 추구하던 가치관, 경험, 나를 형성하는 그 모든 경험은 부모님이 없는 곳에서 이루어졌다. 부모님의 내 얘기를 (가끔) 듣기는 하시지만 이해하실 의지는 없으신 것 같다. 아버지는 내가 외국에서 돈을 한 1년에 5억 이상 벌었으면 하시는 것 같고 어머니는 그냥 내가 한국에 귀국해서 결혼하고 아기를 낳기 바라신다. (5년 전에는 연봉 1억이면 됐는데 아버지의 기준이 인플레이션과 더불어 5배가 뛰었다)


한국에서 60년 가까이 사신 부모님의 가치관이 이제와 나라는 존재로 바뀌지 않는다. 60년이라는 세월 동안 마모되고 밀어 넣어지며 결국은 한국 사회에 꼭 맞는 일원이 되신 우리 부모님은 지금 아주 편안하시다. 변화를 도모하는 사람들은 지금 상황에서 뭔가 이상을 느끼고 불편함을 느껴야 한다. 아마 부모님이 가끔 어딘가 불편하신다면 그건 한국에서 정한 성공의 틀에 꼭 맞지 않는 나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내 삶에 굉장히 만족하고 있다. 미국에서 유럽으로 거주지를 옮기면서 아무래도 적응 기간이 필요했고 이제 겨우 내가 원하는 집에서 일과 삶이 밸런스를 이루는 삶을 찾있다. 10년 전 뉴욕에 살 때는 엄두도 못 냈던 내 드림 컴퍼니 중 한 곳에서 아트 디렉터로 누구나 알만한 대기업 클라이언트와 작업하고 있다. 주말에 함께 와인 한잔 기울이고 함께 유럽의 외딴섬을 여행할 친구들이 있다.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꾸준히 데이트하는 남자들이 있다. 내 삶은 20년간 폭풍 같았던 외국인 학생/노동자의 관문을 거쳐 드디어 평온하고 행복하다.


그러나 이런 디테일은 부모님한테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으시다. 부모님은 그냥 내가 한국에서 편안하게 부모님 밑에서 이미 깔려있는 성공이라고 쓰인 길을 남들과 함께 사뿐사뿐 걸어갔으면 하신다. 나라는 존재가 온전히 받아들여졌으면 하는 소망에 지난 15년 동안 이 주제에 대해 부모님과 대화를 시도를 해보았으나 언제나 도돌이 표이다. 한국에서는 부모님의 말을 잘 듣고 순응하는 자식이 사회적으로 칭찬받는다. 그 반대는 불효라고 손가락질을 받는다. 그러나 소통이라는 건 쌍방이 아니었던가. 일방적인 기대와 조건부 사랑은 폭력이고 이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바로 이 지점이 나와 한국 친구들 그리고 나를 그들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아시아 또는 중동에서 온 친구들과의 차이이다. 디테일과 문맥은 무시되고 무조건 가족이니까라는 이름하에 지어지는 일방적인 의무와 책임, 난 언제나 이게 이상하다고 생각했고 여기에 의문을 표하는 나는 때때로 이해받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