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임신중단법 폐지에 대해
남녀차별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강하게 몸으로 느껴진다. 가장 기본적인 남녀차별의 시작이 임신과 육아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아는가? 그런 의미에서 최근 미국의 임신중단법 폐지는 아직도 우리 사회에 깊숙이 여성차별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성폭행 또는 근친상간에 의한 임신 또한 중단할 수 없다는 점에서 보면 미국 대법관은 여자들이 남자들의 실수를 오롯이 책임지는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역사를 살펴보면 여자들은 언제나 그런 역할이었다. 남자들은 실수를 하고 여자들은 그 결과를 받아들인다. 남자들은 결정을 하고 여자들은 희생을 한다. 미국의 임신중단법 폐지는 임신 중단 그 단면이 아니라 통합적으로 사회가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을 단면적으로 보여준다. 여자들이 결정권을 갖기 않기를 바라는, 언제 어디서나 남성의 욕망이 우선시 되어야 하는 그런 세상을 과반수(59%)의 미국인들이 반대했지만 41프로의 미국인들은 찬성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남자들이 얼마나 육아에 임신에 무지하며 책임감이 없는지를 깨닫는다. 아직도 대부분의 남자들은 새 생명의 탄생을 온전히 여성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안타깝게도 성관계와 임신을 같은 선상에 놓지 못한다. 성관계는 지극히 남성적인 행위로 축복받지만 임신과 출산 육아는 여성의 몫으로 남겨진다. 나는 이 지점이 가장 남녀차별적이라고 생각한다. 남자의 사정없이 임신은 불가능하지만 수정 이후 모든 일은 여자가 감당해야 한다고 암묵적으로 사회가 강요하는 것이다. 단 하나, 임신을 중단하는 것만 빼고 말이다. 이것이 폭력이 아니라면 어떤 것이 폭력일까?
내가 나이가 들수록 깜짝 놀란 것은 남자들의 부성애는 정말 여성들의 모성애와 비할바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기를 갖고 싶어 하고 귀여워하는 것은 대부분 여성들이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여성에 비하면 아기를 갖고 싶어 하는 욕망이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미국 대법원의 판결이 새 새명을 위한 것이라는 건 허울 좋은 명분이라고 생각한다. 총기 난사로 수많은 청소년들이 죽어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그들이다. 몇 주 된 태아는 인간으로서의 자각이 전혀 없으며 고통도 느끼지 못한다. 여성한테 죄의식을 가르치며 새 생명이 될 가능성을 우선시시키는 건 여성들을 억누르려는 의도로 보인다. 내게는 미국의 판결이 The handmaid's tale (시녀 이야기)와 같은 선상에 있다고 보인다. 시녀 이야기를 혹시나 모르는 분들이 있다면 꼭 보기를 추천드린다.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배경으로 가상의 정부인 길리어드 정부는 트럼프 집권 이후의 미국을 연상시킨다. 여성의 사회활동은 엄격하게 금지되어있고 오직 아이를 낳는 기능과 남성에게 쾌락을 주는 목적으로만 존재한다. 보고 나면 너무 괴로워져서 끝까지 볼 수는 없었지만 처음 몇 개의 에피소드만 봐도 지금 현재 미국이 가는 방향과 얼마나 비슷한지 알 수 있다.
여성이 스스로의 몸에 대한 권리를 빼앗기는 건 단순하게 아기를 낳아서 기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일단 아기를 육아하기 시작하면 사회활동이 제한될 수밖에 없으므로 수입이 줄어든다. 자연스럽게 가정 내 그리고 사회 안에서의 입지 또한 줄어든다. 하나의 희생이 계속되는 희생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내가 유럽에 살면서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건 임신 중단에 대한 죄책감을 주입하지 않는 사회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결정이고 누군가가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라는 바운더리가 명확하게 그어져 있다. 내 독일 친구는 두번의 임신중단 경험을 어떠한 죄채감도 없이 자연스럽게 친구들과 공유했고 나는 당시 큰 문화 충격을 받았었다. 이 모든건 그녀의 결정을 존중해주는 부모님 그리고 사회 분위기에서 기인한 것이리라. 한국에서 임신 중단에 대해 검색해보면 언제나 죄책감을 야기하는 단어들과 여성을 힐난하는 어조가 함께 나온다. 나는 모든 여성들이 그런 통념과 편견에서 자유로웠으면 좋겠다. 네이버에서 찾아지는 임신중단에 대한 한글 검색결과와 구글에서 보여주는 영문 검색결과가 얼마나 상이하게 다른지 알고 있는가? 한국에서는 여성을 힐난하고 수술을 위험성을 강조하는 검색결과가 상위에 나오고, 영문 검색결과는 여성을 다독이고 안전한 수술이라고 안심시키는 검색결과가 상위에 나온다.
여성들은 좀 더 목소리를 높이고 스스로의 권리를 찾아야만 한다. 여자를 몇 명이고 임신시킨 남성은 부끄러워하지 않는데 그들의 실수를 여성들이 고스란히 받아들이지 않으면 벌을 받는 세상, 그런 세상이 오지 않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목소리를 높이는 것, 그런 차별을 당연시 여기는 사람들에게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것. 일단 거기서부터 시작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