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임을 시작하는 거실 한 바퀴
‘일어나야 한다. 일어나기 싫다! 싫다! 싫다!’
팽팽한 눈꺼풀의 속삭임이다. 밤이 길어져 더 많이 잔 것도 같은데, 내 몸은 그 길이를 실감하지 못하나 보다. 마지막 3번째 알람이 울리고 나서야 찌뿌둥한 몸을 일으킨다. 누군가 내 몸에 가을비를 뿌리는 걸까? 두 팔을 양껏 벌리자 두둑 두둑 두두둑 소리가 요란하다. 정신을 차리려 밥을 입에 넣고 있지만, 눈은 또다시 감겨온다.
이대로 잠에게 질 수만은 없다. 뜨겁게 물을 데우며 결의에 찬 마음을 담아본다. 달콤한 커피믹스에 커피 가루를 추가해, 카페인의 농도를 높인다. 물은 한강 작가님이 떠오를 만큼이나 가득하다. 역시 먹는 것엔, 후한 인심을 아끼지 않는다. 뜨거운 머그잔을 들며 조심스럽게 소파에 앉아 맛을 음미한다. 믹스의 달콤한 맛과 부드러움은 연해지고, 커피 특유의 씁쓸한 맛이 더해져 진한 향이 전해온다. 혀에서부터 코까지, 그리고 갈색빛의 농도를 눈으로 감상한다.
할 일을 계획하면서 “아뿅~ 아뵤뵤~” 코를 엄지로 훔치고 이소룡으로 빙의한다. 어깨를 건들건들 촐싹대며 셀프 응원을 이어간다. 그 힘을 전달받아 책을 펴고 페이지를 넘긴다. 소파의 폭신함은 나를 감싸며 편안함을 선물한다. 자연스럽게 팔 받침대 부분을 베개 삼으니, 스르륵 눈이 감겨온다. 몇 번이나 눈을 떠보려 한다. 누워있으면서 잠드는 유혹을 뿌리치려 나름 애쓴다. 먹고 누우면 안 된다는 구호를 입술로 전달시킨다. “절대 안 된다. 안 된다니까. 안 된다. 아 된다. 된다.” 결국 코까지 골다 추위를 이기려 몸을 공벌레처럼 웅크린다. 꿈은 이룰 수 없는 멜로였다가, 흥미진진한 SF였다가, 좀비가 출연하는 호러까지 장르를 넘나든다. 결국 시험 보거나, 높은 곳에서 점프하는 꿈을 꾸며 번쩍 눈을 뜬다.
속이 더부룩하고 죄책감이라는 감정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커튼을 걷고, 내리쬐는 햇살을 마주한다. 그 따듯함이 좋아 잠시 하늘의 얼굴빛을 바라본다. 거실 한 바퀴라는 작은 움직임을 천천히 시작해본다. 널브러진 책들과 아이들이 꺼내 놓은 물건들을 정리한다. 운동이라고 생각하며 하나씩 제자리를 찾아준다. 그만큼 치우는 속도가 더디다. 남편이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더라면 비효율적이라며 타박했을 것이다. 재빨리 치우고 차라리 헬스장에 가라고 잔소리를 했겠지.
정리되어 갈수록 감정의 무게를 내려놓는다. 움직임은 부정적이고 나를 괴롭혔던 잡념들 또한 정리해 준다. 게으른 나에 대한 원망과 나약한 나를 향한 화살을 서서히 멈추어 준다. 좀 더 힘을 내며, 밖으로 나갈 명분을 만들어낸다. 분리수거와 아직은 덜 찬 음식물 쓰레기라도 비워야 한다. 현관을 나가자 묵직한 찬 공기가 나를 맞이한다. 가을날이라고 하지만, 코끝이 시려오는 걸 보니 이제는 겨울의 초입인가 싶었다. 나무의 모습들과 흐트러진 낙엽들, 바람을 지나친다. 잠시의 공기 쏘임이 나를 일으킨다.
3달이 넘게 준비했던 트레일런을 중도에 포기했다. 시작과 동시에, 두 종아리의 묵직함과 두 발바닥에서 전해지는 족저근막염의 통증을 견뎌내기 힘들었다. 이겨내려 할수록 통증은 강하게 느껴졌고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참아냈다. 고통은 더해져 눈물이 났다. 채 30분을 넘기지 못하고 내 의지는 바닥을 보였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서울에 왔고, 시작과 도착지가 달라 지하철까지 타며 이동했었다. 그 모든 것이 소용없는 일이 된 것 같았다. 나는 이것밖에 안 되는가? 좀 더 참고 가야 했다는 후회와 남편에게 미안함으로 무너졌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지 않다. 나는 정말 괜찮지 않아.’ 나의 감정을 인정하기조차 힘들다. 받아들일 수조차 없다. 몰아치는 감정에 나를 그대로 놓아버렸다. 다시는 달리기 따위는 하지 않을 거라고, 산에 오르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
내가 좋아했던 일들이 어느 순간부터 행복하지 않은 일이 되었다. 속도에 집착할수록, 산을 오를 때마다 빨리 나아가야 한다는 부담감이 커졌다. 몸에선 자꾸 통증을 알려왔다. 종아리가 아프기도 했고, 엉덩이와 사타구니에서 통증이 나타나기도 했다. 족저근막염은 아침에 첫발을 내디딜 때 확인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매번 포기하는 마음을 꿈꿨다. 그렇게 나는 포기했다. 마음은 복잡한 미로를 벗어나질 못한 상태가 되었다.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다시 돌아가지도 못했다.
과연, 몸의 통증을 무시하고 끝까지 완주했다면 괜찮았을까? 나에게 해냈다며 손뼉 쳤을까? 그러면 좀 더 행복했을까?
끝까지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 행복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렇게 지독한 후회에선 벗어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복잡해지려는 마음을 덜어내러 다시 거실 한 바퀴를 돌아본다. 소파 옆을 지나고, 실내자전거를 지나고, 피아노를 지나고, TV를 지나간다.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파도 같은 마음들을 맞이한다. 거센 저항, 후회, 속상함을 펼쳐본다. 이 또한 지나가길 잠잠히 기다려본다. 마음을 짓누르는 1g을 덜어내려 거실 한 바퀴의 움직임이 나를 일으킨다. 괜찮지 않은 내 마음을 바라보며 원망의 감정을 내려놓는다.
‘괜찮진 않지만, 괜찮아질 거야. 나를 위해 포기할 줄도 아는 어른이 되어가는 거야. 그 과정이 꽤 유쾌하진 않지만,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거야.’
#다이어트라고말하고다이어트하지않는반항아
#거실한바퀴돌다가감정이파사삭
#밖으로나갈명분을만들며공기쏘이기
#소파의달콤함이좋아
#커피로잠을깨고싶어카페인의농도와커피사이즈업하는녀자
#행복했던일이즐겁지않게되었던날들
#포기가뭐라고절망이라느꼈네
#소파옆을지나실내자전거를지나피아노를지나내감정도지나가길
#진정한어른이되어가고싶어
#1g마음의무게를덜어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