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라는 스위치
입에서 ‘하’하면 수증기가 느껴질 것 같은 날씨. 도톰한 옷을 꺼내입으며 밖으로 나와 걸었다. 머리 위로 몇 개의 눈송이가 내려앉았다. 올해의 첫눈. 선명하고 고운 색들의 단풍이 다소 대조적이기까지 하다. 붉으면서 갈색빛을 띤, 노라면서 간신히 손톱만큼 남은 초록빛 이파리는 아직은 가을이라고 시위라도 하는 것 같다. 분명 아름다워 보이는 것 앞에 서 있는데, 마음 한구석은 ‘쿵’하고 내려앉는다. 구멍 하나가 뚫리더니 점점 커지고, 또 다른 구멍 하나가 조그맣게 뚫리다가 서서히 커지길 반복한다.
올해도 이렇게 지나가 버리는 건가? 계획한 일들은 대부분 목표 미달이다. 중간중간 의지를 다잡으며 했다 관두기를 반복했다. 역시나 ‘의지 따위 1도 없는 사람’이라는 꼬리표가 딸려 나온다.
두툼해진 옷을 꺼내 놓으며, 살며시 옷장을 들여봤다. 검정으로 된 스포츠 의류들. 물씬 장례식장 분위기를 압도한다. 저승사자도 이렇게나 많은 검정색 옷을 구비하고 있진 않겠지라는 속절없는 자부심마저 든다. 살이 찌면서 옷 취향도 180도 달라졌다. 시커먼 옷들은 시원함과 편함이 주목적이다. 흰색 마니아라서 흰 반팔티만을 고집했던 내가, 꽃무늬 원피스를 최애템이라 여기던 내가, 빨갛고 선명한 색의 카디건과 외투를 좋아했던 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뭐든 검은색만을 골랐다. 조금이라도 팽창되어 보이지 않는, 행여 착시라도 얍실해 보이려는 마음이 가득했다.
기존의 화려한 색깔의 옷들은 구석으로 강제 이주를 당했고, 선택되는 일이 드물었다. 기분 낼 겸, ‘입어볼까?’ 픽했다가 옷이 몸에 들어가지 않아 낭패감을 얻는다. 간신히 들어는 갔으나 뭔가 내 몸이 1.5배 늘어나 있는 현실을 마주한다. 나는 한숨으로 땅을 백번도 넘게 꺼뜨린다.
두꺼운 잠바를 선택했더니 따뜻은 했지만, 내 모습은 유난히 부해 보인다. 어렸을 적 TV에서 인기를 끌었던 텔레토비의 보라돌이, 뚜비, 나나, 뽀가 나에게 ‘제5의 멤버’로 초대할 것 같은 비쥬얼이다. 색으로도 살은 커버할 수 없나 보다.
마음속 공허함은 늘 배 속의 허기짐으로 다가왔다. 입속에 무엇인가를 쑤셔 넣으며 이번만, 그리고 딱 하나만을 외친다. 문제는 무엇인가를 집어 든 손은 단 한 개로 끝나지 않는다. 군것질거리를 향해 두 개, 세 개를 더 집고도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오물오물 먹는 순간은 잠시 행복했고, 먹는 ‘낙’에 작은 행복이라도 느낀다며 나를 위로했다. 기쁨 뒤엔 역시 후회가 자리한다. 바닥을 보이는 과자 봉지에, 때론 낱개의 봉지 껍질 개수에, 입 터짐은 속 터짐으로 다가왔다.
감정에도 딱하고 멈출 수 있는 스위치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부정적인 감정이 눈 알갱이를 만들고, 눈덩이를 만들고, 눈 산을 만들기 전에 바로 멈출 텐데. 그런 요술 스위치가 없는 나로서는 걸을 뿐이다. 산책하다 보면 내 안에 매몰된 생각 속에서 벗어난다. 내 눈은 당장 가야 할 길을 바라보다 나뭇잎의 어여쁜 색깔과 하늘의 푸른 빛에 시선을 빼앗긴다. 공기는 차갑지만, 따뜻한 햇살의 눈 부심 또한 싫진 않다. 시멘트의 반듯한 길도, 흙길의 부드러움도, 지나가는 차의 소음도, 바람 소리도 모두 배경이 된다. 적절히 땀방울이 맺히며, 부정적인 감정들을 다 열거했다가 하나씩 받아들인다. 널뛰기하던 감정은 크게 휘청했다가 다시 균형을 잡아간다. 뽀로통한 기분을 이해하고 나니 구멍 난 마음의 홈이 조금은 메워진다. 그렇다고 나의 뱃살까지 사랑하겠어라는 경지에 이르지는 않지만, 운동량을 늘려 조금은 더 건강하게 살지 뭐~ 라며 나를 달랜다.
#텔레토비제5의멤버로초대장받을판
#저승사자도놀랄검정옷컬렉션
#한숨으로땅을백번도넘게꺼뜨릴수있는뇨자
#단풍의아름다움앞에서구멍나버린마음
#마음의균형이잡히더라도뱃살까진사랑하진못하지
#산책하며기분바꿔먹기
#살찐자에겐검정색옷은필수템
#다이어트그게뭐라고
#다이어트같지만다이어트아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