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흐르는 것일까?
《감정과 시간에 대하여》
- 시간은 흐르는 것일까?
현대 과학은 아직도 "시간이 흐른다"는 개념을 정확히 정의하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 인류는 시간은 흐르는 것이며, 그것이 앞으로 간다는 인식을 2000년 전부터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아왔다.
“시간이 앞으로 흐른다”는 감각은 과학적 증명과는 별개로, 어쩌면 우리가 노화하며 자연스럽게 인지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조그마한 수정체로 태어나 내가 되고, 성장하고, 늙고, 다시 작아지며 지구의 생태계로 풍화되는 동안 우리는 시간을 자연스럽게 느낀다.
하지만 어쩌면 이 모든 것은, 현대인에게 너무도 당연하게 주어진 언어와 지식에 의한 감각일 수도 있다.
해가 뜨고 지고, 나뭇잎이 붉게 물들고, 곡식이 익는 걸 보며 우리는 ‘시간’, ‘하루’, ‘계절’을 정의하고 그렇게 살아간다.
언어나 지식이 없는 동물들은 어떨까?
사람처럼 시간이 앞으로 나아간다고 느끼고 있을까?
그들은 우리와 소통할 수 없기에 단언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인간처럼 직선적인 시간 감각을 갖고 있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는, 주인공 부부가 기르는 반려동물 ‘카레닌’과 그가 시간을 보내는 장면이 묘사된다.
주인공 부부는 신분, 이념, 빈부격차 등 많은 고난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흔들리지만, 카레닌은 그 안에서 순수한 사랑과 안정된 삶을 살며 주인공 부부와 대조를 이룬다.
인간에게 시간은 ‘선’이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지만, 카레닌에게 시간은 그저 ‘순간’이다.
‘간식을 먹는 시간’, ‘주인과 산책하는 시간’, ‘졸려서 잠을 자는 시간’, ‘자고 나니 상쾌한 시간’
그 순간들은 모두 카레닌에게 의미 있는 점(point)이다.
밀란 쿤데라는 이것을 인간의 시간과 다른 원형으로 흐르는 시간이라 표현했지만, 나는 그냥 하나하나의 점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사람들도 사실은 그러한 수많은 점들을 찍으며 살아가고 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은 ‘감정에 취해 글을 쓰는 시간’이며, 조금 후에는 ‘글을 퇴고하며 고뇌하는 시간’이 올 것이다.
이 수많은 점들이 모여 하나의 선을 이루고, 그것이 ‘삶’이라는 시간선이 된다.
그 수많은 점들이 다 예쁘고, 또 크기가 균일할 수는 없다.
어떤 점은 아름답고 부드러운 색으로 남겠고, 어떤 점은 긴박하게, 혹은 위협적으로 찍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은 크게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시간은 ‘앞으로 보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의 점들이 모이는 과정이라는 걸 인식하고,
카레닌처럼 순간순간에 충실하며 살아간다면,
그렇게 그려진 선들도 결국 꽤 볼만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