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그리운 것일까?
《그리움에 대하여》
- 무엇이 그리운 것일까?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쭉 서울에서 근무 해 왔고, 이직하여 지방에 2년 정도 근무 후 작년 말 쯤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곧 서울생활을 다시 시작한지 벌써 몇 년이 되어 간다.
지방으로 내려가기 전, 내 스스로 할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을 다 주었던 친구가 있었다. 불행하게도 그녀와 내 감정의 크기는 많이 달랐지만, 근처 직장에 근무했던 친구였기에 우리는 많은 일상을 함께 했다.
점심에 근처 식당에서 만나 식사를 하고, 서점에 가 책을 고르기도 하고, 퇴근 길 한강에서 맥주 한캔씩을 놓고 대화를 하기도 했고, 근처에 살았던 그녀를 굳이 집에 바래다준다는 핑계로 더 보고 싶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에게는 일상의 시간을 단지 함께 보낸 것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으리라.
호감으로 시작한 관계가 사랑으로 커지길 바랬던 그런 시간이었을 텐데.
하지만 당시 나에게는 나만의 사랑을 키워가는 시간이었고, 그 시간들 덕분에 매우 행복했다.
남녀간 서로 감정의 크기가 다르면, 더 큰 쪽이 작은쪽의 기준에 자신을 끼워맞추며 그 작은 마음의 크기에 맞게 애써 자기 마음을 구겨넣는 아픔을 감수해야한다.
혼자 키우는 사랑은 그래서 아프다. 내 마음은 자꾸 커져가는데, 더 클 수 없게 구겨 넣어야 한다.
감추고, 상대방에게 맞추어 가야 그 관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직장을 옮기게 된 데는 여러 이유도 있었지만, 위 관계를 스스로 단절하며 온 여의도에서의 일상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는 이유도 있다.
나름 많은 일상, 수 해의 시간을 함께 보낸 그곳에는 어딜 가도, 뭘 해도 연상되는 상실과 아픔, 슬픔, 무기력만 존재했다.
시간이 흘러 다시 돌아온 서울은, 다시 돌아와 같은 일을 하게 된 나처럼 큰 변화가 없었다. 좋아했던 콩나물국밥 집도, 꽉 차는 출근길 9호선도, 무단횡단하는 사람들도.
서울로 다시 온지 몇 년이 다 되도록, 혹시나 그대로일까 두려워 가지 못했던 길이 있었다.
그녀의 집까지 바래다주던 길. 함께 이야기를 하고, 커피를 마시고, 그녀의 친구와 술도 한잔 했던, 옆에서 걷던 그녀의 얼굴을 가장 많이 봤던 그 길.
길이 변하지 않았음이 아닌, 내 마음이 변하지 않았음이 두려워 가지 못했던 그 길을 얼마 전 처음으로 다시 걸어 보았다.
그녀를 잊지 못하고, 그녀가 그리워 이런 글을 작성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오늘 그 길을 걸으며 느낀 건 그 시절, 내 나름대로 순진하게 모든 감정을 다 쏟아 사랑했던 과거의 나에 대한 그리움이다.
지금은 다시 할 수 있을 자신이 없는, 그 때의 그 마음을 가졌던 어리고 미숙했던 시절의 나.
길을 걸으며 상가를 보고, 단풍을 봐도 그 시절 그녀와의 기억은 이제 파스텔처럼 흐릿했다.
언제든 다시 가도 추억담 정도 이야기하며 지나갈 수 있는 그런 길인데.
그녀와 그 길을 걷던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내가 조금은 다르게 느껴저 낯설었다.
오늘 이런 글을 적게 된건 나름 용감했고 나름 순수했던 과거의 나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