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매 순간이 시작이다
《시작과 시간에 대하여》
- 사실 매 순간이 시작이다
우리는 살아가며 무언가의 시작이라는 것에 큰 의미를 둔다. 첫 출근, 첫 만남, 새해 첫 날.
하지만 모든 것의 시작에 의미를 부여하진 않는다.
지금 이 글을 적고 있는 이 순간도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이며 매 초, 매 분, 매 시간이 새롭다면 새로운 순간들이지만 이 모든 삶의 순간을 1월 1일 해가 떠오르는 순간처럼 감격하며 살아가진 않는다.
단언컨대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은 없으리라.
"특별한 처음"은 반복되지 않음에서 의미를 가진다.
365일이 모두 같은 하나뿐인 날들이지만, 새해 첫날인 1월 1일은 단 하나다. 반복되는 처음들은 일상이 되고, 권태와 만나 그 새로움과 특별함을 잃어간다.
1920년대 프랑스의 신문사 '랭트랑지장'은 당대 유명인사들에게 사회적,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그 답변을 받아 소개하는 연재를 진행했다. 다음 질문은 당시 연재되었던 유명한 질문 중 하나이다.
어느 미국인 과학자가 이 세계는 곧 멸망할 것이라고, 그것도 매우 갑작스럽게 파괴되어 수억 명이 사망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만약 이 예언이 확실한 것으로 증명될 경우, 방금 말씀드린 예언이 확실해진 때로부터 파국의 순간까지, 그 시간 동안 과연 이 예언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마지막으로 그 최후의 순간에 당신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당대 사회의 유명 학자, 문인 등이 여러 유형의 답을 내놓았다. 사람들이 금기시되던 행동들을 일삼으며 사회가 혼란에 빠질 것이라는 분석부터 계획된 카드판, 골프시합에 최선을 다해 임하겠다는 답변까지.
한참을 고민하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종말 계획을 설명한 유명인사는『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저자 마르셀 프루스트였다. 프루스트는 다음과 같은 설명을 적어 답장을 보냈다.
"제 생각에는, 귀하가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가 죽음의 위험에 놓인다면, 삶이란 갑자기 우리에게 너무 훌륭해 보일 것 같습니다. 얼마나 많은 계획과 여행, 정사, 연구 등을 우리의 삶이 우리에게 감춰놓고 있는지를 생각해보십시오. 미래에 대한 확신으로 뭐든지 끝없이 미루기만 하는 우리의 게으름 때문에 그런 것들은 결국 우리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두가 영원히 불가능해질 위기에 처한다면, 그런 것들은 다시 얼마나 아름다워질까요?
아! 만약 이번에 그 파국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잊지 않고 루브르의 새로운 전시실을 방문할 것이고, X양의 발치에 몸을 던질 것이고, 인도로 여행을 떠날 테니 말입니다. 파국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 가운데 어떤 일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일상생활의 중심부로 돌아온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거기서는 태만이 욕망을 잠재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의 삶을 사랑하기 위해 굳이 파국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인간이라는 것, 그리고 당장 오늘 밤에도 죽음이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그러기에는 충분하리라고 봅니다."
시간과 시작이 무한히 반복될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 일상에 끝이 있을 수 있음을 기억해보자.
지금 갑자기 내일이 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오늘의 남은 순간이 — 회사에서 퇴근시간만 기다리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 얼마나 소중해지겠는가.
오늘이라는 남은 시간 동안 뭘 하고 싶은지, 생각난 것들을 바로 실행에 옮겨도 채 마치지 못하고 마지막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되도록이면 작은 시작에도 의미를 찾고 신중하게 시작해보자.
매 초, 매 분의 시작을 예민하게 느끼며 살아가긴 힘들고, 감수성이 부족할지도 모르겠지만 아침에 하루를 시작하며 ‘새로운 날’이 밝았음을 느끼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금방 또 이 일상이 영원할 것이라는 오판과, 그에 따른 권태가 다가오겠지만 그러면 또 어떠한가.
어느 새로운 날에 다시 하루의 소중함을 느끼며 하루의 각오를 다져보는 것만으로도 일상의 권태를 환기시키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아모르 파티(Amor fati) –
"Love your fate", "현재를 사랑하라"
이 너무나 유명한 문장 앞엔 사실 더 큰 의미를 가진, 생략된 부분이 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
"Remember your death", "죽음을 기억하라"
죽음을 기억하고, 현재를 사랑하라. 일상이 영원하지 않음을, 죽음이라는 끝이 다가옴을.
꼭 죽음이 아니더라도 권태에 가려 빛을 잃은 소중한 내 주변의 것, 익숙한 것들을 사랑하고 항상 새로운 시작을 소중하게 여기며 생활해보자.
권태를 멀리하고, 영원하지 않을 현재에 최선을 다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