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 그대로를 받아들여야 할까?
종교와 삶에 대하여
인간은 신념의 동물이다.
그리고 그 신념의 원천은 개인마다 다르다.
자신의 경험이나 믿음처럼 내면적인 요소일 수도 있고,
부모의 교육, 혹은 속해 온 집단의 가치관처럼
외부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일 수도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뿌리 깊고 강하게 작용하는 것 중 하나는, 단연 종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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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학교에서 종교의 기원에 대해 배운 기억이 있다.
자연이나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샤머니즘이나 토테미즘과 같은 원시 신앙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 시작이었다고 한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위해
초월적 존재를 상상하고 믿으며,
지금의 안녕과 더 나은 내일을 기도해 온 것이
그 시작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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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에도 세계적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는 종교들은
대부분 특정한 인간, 특정한 집단의 가르침이
그대로 전승된 형태를 띠고 있다.
기독교, 불교, 이슬람, 힌두교 등 각각의 종교는
특정한 신과 특정한 공동체의 가치관 위에서 자리를 잡았고,
그 가르침은 오랜 세월을 지나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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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그것이 태어난 시대와 사회,
그리고 당대 사람들의 삶에 어울리는
행동 규범과 가치를 제공했을 것이다.
당시에는 공감되고, 또 필요했던 말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가르침들이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충분히 재해석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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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한 만큼 되갚아라’라는 가르침이 있다고 치자.
과거에는 주먹 한 대, 혹은 1:1의 결투 정도로 이해됐던 이 말은
지금의 세상에서는 미사일이 되고, 전쟁이 되고,
대량 학살의 명분이 될 수도 있다.
같은 말이라도, 시대가 바뀌면 그 말의 결과는 전혀 달라진다.
종교는 그들의 가르침들을
지금의 언어와 현실 속에서 다시 읽고,
다시 해석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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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이론도 초기에는
믿음의 영역에 머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반론과 실험을 통해 검증하고
기존의 이론을 뒤엎으며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간다.
반면 종교는 믿음을 전제로 하는 만큼,
그 믿음을 의심하거나 새롭게 해석하는 것에 대해
종종 강한 저항을 보이곤 한다.
그 점은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믿음이 위로가 아니라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신호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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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종교는
대중이 교육받지 못하고, 정보를 나눌 수 없던 시대에
집단을 통합하고, 혼란을 질서로 다듬는 데에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과거엔 사람들의 삶도 지금보다 훨씬 단순했다.
농사를 짓는 사람,
전쟁터에 나가는 무인,
물건을 사고파는 상인 등
비교적 명확하게 분화된 역할 속에서
각자의 삶에 맞는 종교적 규범이 작동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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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누군가는 프리랜서로 살고,
누군가는 다국적 기업의 디지털 노동자로 일하며,
누군가는 결혼하지 않고도 가족을 꾸리고,
또 누군가는 스스로의 고독을 택하며 살아간다.
삶의 양상은 너무나 다양해졌고,
그 다양성을 하나의 규범으로 포섭하고 통제하려는 시도는
이제 설득력이 없는 시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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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나는,
현대의 종교가 지금 이 시대의 인간을 위하려 한다면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인간에게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절대적 규범을 제시하고 지배하는 신이 아니라,
불안한 마음을 조용히 붙들어주는 철학이 되어야 한다.
맹목적으로 따르고 복종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곁에 있어주는 존재,
나를 나로 있게 해주는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