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쥐가 될 것인가. 커다란 코끼리가 될 것인가.

by 이예준

“작은 쥐가 될래? 아님 큰 코끼리가 될래?”

사하라 사막 한가운데서 만난 중년의 벨기에 아저씨가 나에게 한 질문이었다.


동이 트기도 전인 이른 새벽, 마라케시 한 호스텔에서 눈을 비비며 일어난다. 그리곤 한 검은색 봉고차가 내 앞에 멈춰 선다. 흠칫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올게 온 것이군” 끄덕이며 그 차에 올라탄다.

그렇다. 오늘은 모처럼 신청한 투어 날이다. 투어보다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여행하는 걸 선호하는 나이지만, 이번은 확실히 예외이다. 사막에서의 2박 3일, 숙식까지 제공해 주는 패키지가 무려 70유로라니!! 너무나도 파격적인 가격에 홀라당 구매해 버린 나.

물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식비는 포함되어있지 않았다.


가장 싼 옵션 때문인지, 가장 이른 아침에 봉고차에 탑승한 듯하다. 이내 짐을 풀고 맨 뒷자리에 자리한다. 그리고 속속들이 다른 여행객들도 탑승한다. 중국인부터 시리아인, 독일인, 벨기에인, 그리고 자국을 여행하는 모로코인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10명 남짓한 자리를 꽉 채운다.

아뿔싸, 곧 후회하기 시작했다. 10시간 넘게 이동하는 일정을 소화해내야 하는데, 맨 뒷자리에 자리 잡은 나는 정말 바보가 아닐까. 자유도도 떨어지고 갑갑한 이 자리를 명당으로 생각한 내가 미웠다. 하루는 정말이지 이동 > 밥 > 가는 길의 유적지를 반복하면서 꽤나 지루한 경험이었다.




그래도 많은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친해질 수 있었는데, 10시간 동안 데이터도 잘 터지지 않는 곳에서 지루함을 달랠 수 있는 건 역시나 대화였다.

정신없이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첫날 숙소에 도착한 듯싶었다. 정말 오지에 가까운 곳이었는데, 어느 깊은 산골 절벽들이 낭자한 곳에 한 호텔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정말 귀신이 나올 법한 곳이라고 느꼈는데, 밥을 먹고, 관광지에 도착해 다 같이 내리던 여느 때처럼 모두가 내릴 줄 알았는데, 기사가 “오이 꼬레아!!”라고 외치는 것이었다.

세상에, 그곳에 내리는 것은 나 혼자였다. 순간 황당한 표정으로 “Only me?”라고 재차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Yeah only you!”였다. 솔직히 조금 두려웠다. 이거 뭐 투어라고 하지만 길거리에 보이는 투어사에 들어가 흥정해서 얻어낸 사막투어였기에 신용도가 떨어졌고, 밖에 가로등 하나 없는 곳에, 나 혼자 이 호텔에서 잔다..? 진짜 쥐도 새도 모르게 작업당해도 이상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머리를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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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산골짜기의 호텔, 반겨주는 건 오직 두마리의 강아지.

쭈뼛쭈뼛 주변을 경계하며 호텔 로비에 도착했을 때,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듯 주변을 경계하고 있는 중년의 백인 아저씨가 카운터 앞에서 호텔 직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바로 그와 대화를 시작했다.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고자 시작한 대화였을지도 모르겠다. 대화를 하고 있다 보니, 어느덧 직원이 다가와 체크인을 도와줬다.

놀랍게도 그 호텔의 금일 숙박객은 우리 둘 뿐이었고, 석식을 제공시간을 정하라고 알려주었다. 어찌어찌 석식 제공시간을 맞추고 방에 들어갔다. 1월의 어느 날이었는데 어찌나 그 냉기가 강하던지, 심지어 히터를 트는 건 유료였다.



아무렴, 저녁 시간이 다가왔다. 저녁 메뉴는 모로코 전통식 사인 따진 이 나왔다. 토마토 스튜 비슷한 찜요리로, 고기류와 감자, 당근을 고깔모양의 뚜껑 그릇에 넣고 푹 고아낸 요리이다. 그 타진이 근데 하나만 나온 것 아니겠는가. 안 그래도 처음 보는 외국인 아저씨와 뻘쭘한 식사를 하는 것이거늘, 음식까지 공유하다니. 묘하게 낯설고도 따뜻한 저녁식사자리였다.


그렇게 그와의 식사 데이트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체크인할 때 당시의 못다 한 대화를 시작하였고, 통성명으로 시작해서 어느덧 각자 나라에 대한 이야기까지 하고 있었다.

그 이후, 한 편의 설교를 듣기 시작했는데, 이 괴짜아저씨는 나보다 우리나라를 더 걱정하는 듯 보였다. 취업난과 치솟아 오르는 집값 문제, 출산율 문제, 그리고 각종 사회적인 갈등까지. 각종 한국의 사회문제를 꿰뚫고 있는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사회학에 관심 많은 아저씨였다. 그는 벨기에 한 대학의 사회학 교수였고, 그렇게 각종 사회현상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리곤 말했다. 포기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큰 꿈을 꾸며 살아가라고, 그리곤 이어지는 대사는 이랬다. "작은 쥐가 아닌 큰 코끼리가 돼라." 모닥불 앞에서 그와 대화를 나누던 게 어느덧 3시간이 지나갈 무렵, 내용이 꽤나 지루해지고 있을 무렵, 지루함을 깬 말의 핵심은 '꿈을 크게 꾸고 할 수 있다고 끊임없이 되뇌기.'였다.

본 내용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지난 일임에도 이 내용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나에게 가장 와닿는 구절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를 굳게 믿으라는 말, 하나를 하더라도 꾸준히 하는 것에 약한 나에게 새로운 가치관을 심어준, 그리고 그 의지를 가지게 해 준 말이라서 더욱 기억에 남는 것 같다. 그리곤 이야기를 끝마칠 때 넌 미래에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라는 것이었다.

마무리가 조금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끝이 났지만, 나를 굳게 믿고 그 방향성을 공고히 하면 이뤄낼 수 있다는 의지를 심어준 그에게 다시금 감사함을 표한다. 세상을 살다 보면 정말 대단한 사람을 많이 마주치고, 내가 초라해지는 순간은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그럴 때 좌절하기보다, 지금의 내 위치를 알고 방향성을 공고히 한다면, 결국 시간이 해결해 줄 일만 남은 것 아니겠는가.

오늘도 인생에 있어 큰 배움을 얻은 가치 있는 여행을 한 하루구나, 생각하며

패딩과 두 개의 담요 속에서 천천히 잠을 청해 본다.

IMG_4226.heic 혼자 쓰는 방이지만 너무 추워...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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