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함의 기준

by 이예준

미로도시 페즈를 지나 블루시티 쉐프샤우엔을 거쳐, 테투안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뜻밖의 인연을 만났다.

이름은 함자.

거무스름한 턱수염과 진한 쌍꺼풀이 인상적인 청년이었다.


우리는 ‘카우치서핑’이라는 앱에서 만났다.

낯선 이에게 자신의 카우치(소파)를 내어주고, 그 대가로 일상과 문화를 나누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처음엔 선뜻 믿기 어려웠다.

각종 블로그와 후기들을 확인해 보았지만,

혹여 내가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도 아무도 모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망설이게 만들었다.

근데 그의 태도는 정말 내 불안을 비웃듯 평범하고 따뜻했다.

“마르하바(환영해요).” 모로코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인사말이었는데,

그의 마르하바는 예삿일처럼 친근하게 다가왔다.

그는 테투안 버스터미널 앞까지 찾아와서 그의 집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가는 도중 집에서 먹을 홉스(모로칸 빵)를 포장해 갔다.

덕분에 홉스를 만드는 과정도 볼 수 있어서 신기했다.

로컬과 같이 다녀서 이런 일상을 볼 수 있는 건 너무나도 큰 행운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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홉스와 그를 굽는 화덕, 쟁반에 보자기를 씌워서 집으로 향한다.

그래도 한 가지 큰 문제가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가 초대한 집은 그의 자취방이 아닌 가족과 함께 사는 집이었던 것이다.

혼자 사는 집도 아니고 부모님도 계시는 집이어서 더욱 망설여졌다.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신경 쓰지 마.” "우리 엄마가 오히려 널 좋아하실 거야."

그리고는 나를 집 안으로 밀어 넣다시피 했다.

한국인이 ‘정의 민족’이라고들 하지만, 진짜 정의 민족은 모로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요즘 한국은 어디 가서 명함도 못 내밀 지경이다.

잠자리를 내어주는 것도 모자라, 항상 가족들이 와서 음식을 차려주었고,

밖에서 함께 식사할 때조차 내가 사겠다는 말은 번번이 거절당했다.

결국 허락받은 건 그의 조카에게 작은 과자를 사주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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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귀여운 조카.




그 호의가 이어지던 무렵, 마침 테투안에 도착한 앨런을 함자에게 소개해주었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함자의 ‘정’은 앨런에게 다소 무겁게 다가왔던 것 같다.

먼저 앨런은 호스텔에서 머물고 싶어 했지만, 함자는 그를 꼭 집으로 데려오려 했다.

드넓은 세상을 탐험하기를 꿈꾸는 함자에게 외국인 친구는 일종의 ‘예행연습’ 같았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자신도 여행하는 우리처럼 여행을 떠나겠다고 귀가 빠지도록 얘기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 호의는 앨런에게는 큰 부담이었던 것 같다.

처음의 내가 함자를 바라보던 것보다 훨씬.

의외였던 건, 함자의 고집스러운 면모였다.

오히려 호의를 베푸는 걸 받아들이지 않는 앨런을 이해하지 못해 했고,

그 사소한 부분이 마찰로 이어졌다.


한 번은 늦은 밤이 되어 앨런을 배웅하겠다며 호스텔 위치를 묻고 다녔고,

동네 사람들에게 “○○호스텔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냐”라고 물어봤다.

함자는 테투안에서 아주 제일가는 인싸였고,

그에게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나는 며칠간 그의 모습을 봐왔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것이 앨런에겐 ‘트리거’였다.


앨런은 자신이 지내는 장소 같은 개인정보에 극도로 예민했다.

추후에 들은 얘기로는 그는 아프가니스탄 참전용사였고,

그런 경험이 크진 않지만 트라우마로 남아,

작은 정보 하나 새어 나가는 것조차 위협으로 느낀다고 털어놓았다.

그렇게 그는 참다못해 함자에게 화를 내었던 것이었다.


함자입장에서는 선의로 시작한 관계였지만, 돌아온 건 무례하다는 답변이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사람마다 ‘무례함’의 기준은 이렇게나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누군가에게는 ‘베푼 호의’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침범당한 선’ 일 수도 있다는 점이 신기했다.

"호의는 좋은 것"이라고 배워왔고 느껴왔던 내 가치관과는 정반대의 결과가 눈앞에서 벌어졌다.

그건 나에게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타인의 친절조차 상황과 맥락 속에서 해석되어야 한다는 사실.

'선'이라고 믿어왔던 것에 대해서 그것이 '선'이 아닐 수도 있다는 불편한 진실.


개개인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정말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사실은

모든 것의 좋고 나쁨을 따지기 보다

상황과 맥락을 유심히 읽을 수 있는 눈을 길러야겠다는 생각을 심어주었다.


여행은 결국, 나와 다른 세계를 만나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누군가의 호의를 오해하고 누군가의 불안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어긋남은 여행이라는 낯선 길에서 틔운 작은 배움의 싹이 아니었을까.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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