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의 흐름

40대 중년 남성의 생존 가능성에 부쳐

by 윤그림

[footnote]

2017. 9. 11


1.

<쇼미더머니> Series를 가끔, 흥미롭게 봤었다. 한번 보기 시작하면 헤어 나오기가 쉽지 않게 빠져들곤 했는데, 그 재미와는 반대로 이상야릇한 거부감이 생기는 지점이 있다. "'힙합'이라는 장르의 주제의식은 원래/대체로 다 이런가?" 하는 의문이 들면서, 다들 너무 의무적으로 '자뻑'에 빠져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다. 시즌을 통틀어 가장 맘에 들었던 뮤지션은 '비와이'였는데, 그 또한 마찬가지였다. 가장 최근 나온 [9ucci bank]라는 노래는 뭐, 아주 전형 of 전형적이다. "금을 찬 Christian, 한국 유명 인사, 차원이 다른 잘나감이 네 증오의 시작... / 5년 전 구제샵에서 산 2만 원 구찌, 엄마 이젠 200만 원이 2만 원 같아 그치, 깨끗이 입고 신자 이건 딱 니 얘기... / 물 들어오는 시간에 내가 노를 왜 저어, 비 내릴 때를 내가 고르지… / 너는 날 까야지 굳이, 나를 가만 못 두지..."


2.

노래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메시지가 참 '구리다'라고 느껴질 때가 많다, 나는… ‘리얼 힙합’을 많이 들어보질 않아서 이 친구들이 원래 그래야 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접했던 '유명한(멜론 Top 시리즈 및 쇼미 노래 포함)' 랩/힙합 음악에서는 일종의 "'내가 최고' Theme"가 에센셜인 것 같다. 나르시시즘을 뛰어넘는 자기 성애를 기본으로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손목엔 Rolex 이젠 Boring… / 뭉치면 닥치고 있어도 콘텐츠 Huh, 뭔 일이 난 거야 92년도엔.(<Bermuda Triangle>, by 지코, 딘, 크러쉬)" 그래, 손목에 진퉁 Rolex 차고 다니면 상위 몇 프로 안에 드는 대단한 인간 맞긴 할 텐데, 암만 그래도 1992년도에 니들 셋만 태어났냐고… 결론적으로는 “나는 씨발 존나 마더 퍼킹 대단해! 나는 당연히 이 정도의 돈을 만져야 하는 인간이야!!”라는 정서가 나랑은 잘 안 맞는다, 이 음악세계는. 만약 아인슈타인이 힙돌이었으면, “It's not that I'm so smart, it's just that I stay with problems longer(나는 똑똑한 것이 아니라 단지 문제를 더 오래 연구할 뿐이다).”라고 하지는 않았을 거다.


3.

태생적(?)으로는 역시 얼터너티브가 참 맞다. “I’m a Creep, I’m a Weirdo, what the hell am I doing here?” 그녀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몰라도 예쁜 여자 하나 만났다고 상대적으로 스스로를 ‘쓰레기’로 규정하는 이 겸손함, 이 자기 비하가 좋다.


4.

http://naver.me/5UbwwjuC

어떤 시인이 본인의 페이스북에 글을 하나 올렸다고 한다. 월세 계약만료 후에 이사가 지긋지긋하여, 호텔(그냥 호텔 안되고 특급이어야 한다)에서 방 하나를 제공받아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취지였다. 단순히 본인의 희망만을 담은 글이 아니었고, 한 호텔을 콕 찍어서 담당자에게 메일까지 보냈다고 당당히 밝혔단다. 본받아 마땅한 천조국 아티스트의 전례도 언급했다(도로시 파커라는 시인은 대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기에...!).

이 글의 해석에는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한 듯하다. 조심스레 판단하자면, 이 시인님은 ‘본인이 호텔이 내어준 방을 쓰는 것 자체가 일종의 홍보 효과가 있다’라고 인식하신 것으로 여겨진다. 자신의 이름이 붙으면 그것이 ‘문화상품’이 될 것임을 강하게 설파하고 계신다. 심지어 그 홍보도 미지근함 대신에 ‘끝내주게 할 텐데’라고 강조하셨다. (당신이)“호텔 카페에서 주말에 시 낭송도 하고 사람들이 꽤 모일” 거라고 하셨는데… 여러 문장을 종합해 보면 이 작가님은 스스로에 대한 인식과 애정이 굉장히 높다. “아무 곳에서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정도의 특별하고 우월한 존재라는 생각도 내비치셨다. 이분이 SNS를 통해 ‘갑질’을 하고 있다는 식의 얘기까지는 못 하겠는데... 약간 헷갈리는 게, <서른, 잔치는 끝났다> 정도면 나 같은 문학 문외한도 이름을 들어본 유명한 작품이지 않던가. 과연 이분은 진짜 그 정도로 (여전히) 대단하신 걸까, 아니면 현실 인식 없이 쓸데없는 자기애만 높으신 분일까…?


5.

이 시인의 기사와 여러 힙합 가수들의 ‘연결고리’가 왜 생각이 났냐면, 최근에 여러 지인과 [공명심]에 관련한 얘기를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공명심’이라. ‘공을 세워 이름을 떨치고픈 마음’일 텐데, 최소한 내가 아는 업계와 세계에서는 이걸 가지고 있다고 하는 이는 기본적으로는 욕을 먹는다. ‘공명심을 가지고 있다’라는 평판이 좋은 의미로 쓰인 예는 들어보질 못했다. 그 공명심이 자기애나 자기 성애와 비슷하게 ‘존나 구리다’고 생각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거 없는 게 과연 선善일까 하는 의문이 갑자기 들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다 내 작품 널리 알리고 잘 되어서 내 이름까지 널리 알리면 결과적으로는 바람직한 거 아니었던가. 시답잖은 방송국 연출자 나부랭이가 전적으로 창작자나 예술가라고 하면 해석의 여지가 있겠으나, 어쨌든 크리에이터가 공명심과 자기애가 없으면 성립이 가능하던가...?


a. "위대한 제가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는 일을 했습니다/작품을 내놓았습니다! 존나 씨발 꼭 보세요, 어마어마하거든! 안 보시면 너희들은 너드, 反지성인이에요!"


b. "미천한 소인이 세상에 도움이 될지도 모를 자그마한 일을 행하였습니다. 혹시 시간이 나시면, 바쁘시더라도 시간을 조금 내주시어 한번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둘 중 어떤 자세가 앞으로 이 일을 하면서, 인생을 살면서 풍파를 헤쳐가는 데 도움이 되려나.


......

“누군가 그 대신 상을 차리고, 새벽이 오기 전에

다시 사람들을 불러 모으리라

환하게 불을 밝히고 무대를 다시 꾸미리라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 <서른, 잔치는 끝났다>, 최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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