習作 | 송장벌레(埋葬蟲)

埋葬蟲

by 윤그림

송장벌레

埋葬蟲



“이거, 여기다 꼭 써야 합니까?”

의정부 외곽, ‘마취통증과 의원’을 찾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대상포진이나 오십견으로 골치깨나 썩는 일용직 노동자들이 환자의 대부분이었다. 다 낡아빠진 간판이나 실내의 소파에서조차 흙내와 땀내가 나는 듯했다.

“처음이시면 주민등록번호는 적긴 적어야…….”

수납이며 전화 응대며 병원의 모든 잡무를 도맡아 하는 간호사가 눈앞의 남자를 기묘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남자는 미간을 잔뜩 찡그린 채 내원 차트에 눈길을 두었다. 몸이 아프고 불편해 동작이 굼뜬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한참 만에 주민번호와 이름을 차트 위에 적었다. 1975년 생, 김설. 남자는 아픈 부위를 체크하는, 차트 위 전신 그림의 양 발에다 동그라미를 쳤다.

십 수년째 이곳에서 일해 온 그 간호사는 이런 환자를 많이 봐왔다. 필시 사연 있는 사람이리라.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 이렇게까지 흔적을 남기기 꺼려하는 건 분명히 누군가 쫓는 존재가 있다는 뜻이리라. 그녀는 입구 근처 구석에 달려 있는 CCTV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홈쇼핑에서 색깔 별로 한꺼번에 샀을 법한 기능성 바지, 짙은 남색의 야구 모자는 뒤돌아서면 금세 기억에서 사라질 정도로 평범했다. 그러나 며칠 동안 씻지 않은 듯 꾀죄죄한 얼굴, 2월 말의 한기와 어울리지 않게 조금 얇다 싶은 아웃도어 점퍼는 특별해 보였다.

“다리가 어떻게 불편하세요?”

남자의 입에서 동상인 것 같다는 말이 두어 번 흐늘거리듯 흘러나왔다. 간호사는 그의 대답을 한 번에 알아듣지 못했다. 의자에 걸터앉은 그가 젖은 등산화와 양말을 벗자 검붉게 괴사된 발가락이 모습을 드러냈다. 눅진한 온기와 냄새가 순식간에 진료실을 가득 채웠다. 물집은 터지기 직전이었다. 간호사는 서둘러 의사를 부른 뒤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을 받아왔다.

“등산을 좀 오래 하다가…….”

그 말 뿐이었다. 간호사는 등산을 어떻게 하면 발이 이 지경이 되는지 묻고 싶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남자는 치료가 끝난 뒤에도 한참 동안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간호사가 진료비 결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묻자 그제야 불룩한 힙색에서 구겨진 지폐 여러 장을 꺼냈다. 간호사는 짧은 순간 힙색 안에 있던 카드를 보았다. 그러나 남자는 불경스러운 것을 들키기라도 한 듯 가방 깊숙이 카드를 밀어 넣었다. 그럼 그렇지. 간호사는 한 번 더 남자가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고 있다고 확신했다.



‘여우고개’라는 이름에 대한 기원은 확실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왕복 2차선 도로의 가장 높은 지점을 여우고개라 불렀다. 96년식 레간자는 여우고개의 가드레일 너머 대략 3, 40미터 비탈길 아래쪽의 나무 덤불 위에 얹혀 있었다. 운전석 쪽 앞뒤 바퀴를 바닥으로 향하게, 사람으로 치면 모로 누운 모양새였다. 차의 앞뒤 모두가 심하게 찌그러져 마치 웅크리고 누운 사람을 연상케 했다. 그 자리에 꽤 오래 누워있었던 것을 증명하듯 흙먼지가 모로 누운 차체에 뽀얗게 덮여 있었다. 앞 범퍼의 끝자락으로 새어 나오던 엔진오일은 얼 듯 말 듯 흙바닥을 적셨다.

준이 현장에 도착한 것은 정오가 살짝 지난 무렵이었다. 신고를 한 사람은 비탈 아래 밭에서 인삼 농사를 짓던 마을 이장이었다. 그는 며칠 동안 차를 봐왔지만 단순히 바위처럼 보였노라 진술했다. 무광의 쥐색 승용차가 그런 곳에 있으니 그럴 수도 있었겠다만 그가 조금만 더 젊어 시력이 괜찮았다면 그렇게 황당하리만큼 경찰을 늦게 부르지는 않았을 터였다.

무성하되 앙상한 나무덤불은 차와 서로 뒹굴며 많은 흔적을 나눠 가졌다. 차의 옆구리를 할퀸 흠집들은 흡사 갈비뼈처럼 보였다. 나무 덤불 여기저기에는 짙은 잿빛의 페인트가 묻어 있었다. 준은 차량 옆으로 다가가 안쪽을 자세히 훑어보았다. 기어는 D, 드라이브에 놓여 있었다. 차량 주변에는 뒷좌석 가방에서 튀어나온 낚싯대가 어지러이 흩어져 있었다.

준에게 가장 중요한 물음은 이 차가 왜 여기 있냐는 것이었다. 어떻게, 어쩌다 이곳에 굴러 떨어졌을까, 그리고 이 차를 여기에 밀어 넣은, 혹은 함께 굴러 떨어졌던 사람은 어디에 있을까.

“선배, 여기 좀 봐요.”

노란색 출입금지 테이프로 현장을 가두던 후배가 준을 크게 불렀다. 준의 물음에 대한 답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 질문에 절반만, 혹은 아주 적게만 대답해 준다는 사실이 문제이긴 했지만.

누군가 판초우의로 덮어놓은 시신 한 구. 시신이라는 단어를 가져다 붙이려니 가슴이 한 번 더 덜컥 내려앉는, 작은 사내아이의 주검이었다. 과학수사팀 요원들이 조심스레 걸어와 카메라를 들이댔다. 부검이 필요하겠지만, 얼굴과 두개골의 큰 상처는 아이가 차와 함께 추락했다는 걸 쉽게 설명해주고 있었다. 준은 송장벌레가 잔뜩 들러붙어 있는 시신을 가까이서 내려 보았다. 이제 막 초등학생이 되었을 정도의 몸집이었다. 벌레 떼는 출혈부위를 따라 얼굴과 옆구리를 집중적으로 갉아먹었다. 검정파리 유충, 그러니까 구더기가 거의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시신은 최소한 2주 정도 지난 상태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법곤충학의 기초 정도는 알고 있었다. 사체에 가장 먼저 찾아오는 곤충은 검정파리다. 파리 떼가 알을 낳은 뒤 그 구더기들이 성충이 된 이후에야 송장벌레는 등장한다. 구더기들이 사체를 먹어치우는 시기에 발생하는 암모니아가 송장벌레에겐 매우 해롭기 때문이다.

한번 부풀어 올랐던 소년의 몸은 가스가 빠지고 말라붙어 가장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단계에 접어들었고, 잡초가 무성한 바닥에는 여기저기 시신에서 흘러나온 부패액이 고여 있었다. 송장벌레가 아이의 주검을 찾기 전, 검정파리가 날아들기 전... 그리고 차가 절벽 위 가드레일을 피해 굴러 떨어지기 직전, 소년은 누구의 손을 잡고 있었을까.

준은 담배에 불을 붙이고 주위를 돌아보았다. 절벽을 마주하고 있던 호숫가 바로 앞쪽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은색의 무언가가 반짝거리며 빛을 반사했다. 차에서 십여 미터 떨어진 곳이었다. 그것이 준의 시선을 끈 것은,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양쪽 귀퉁이를 돌로 곱게 눌러놓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천천히 다가가 중요한 증거물일지 모를 쪼가리를 주워 살펴보았다. 거칠게 뜯어낸, 공책 크기의 은박 돗자리 조각이었다. 잘 나오지 않는 볼펜으로 뒷면에 무언가를 꾹꾹 눌러쓴 일종의 메모. 그것을 절박한 편지라고 불러야 할까, 희귀한 유서라고 해야 할까.


- 내가 아직 살아있네요. 미안합니다. 천덕꾸러기가 될 게 뻔한 아들과 함께 떠나려 했지만 그도 여의치가 않군요. 저는 호수로 들어가겠습니다. 얼어 죽거나, 빠져 죽거나 둘 중 하나겠지요. 누구든 혁이의 시신만은 잘 거두어주시기를 바라며 마지막 걸음을 옮깁니다. -



송장벌레로 살아간다는 것도 인간의 삶만큼 매우 힘든 일입니다. 그들은 동물의 사체를 동그랗게 말아 땅에 묻은 뒤 그 속에 알을 낳죠. 2센티미터도 채 되지 않는 벌레에게는 엄청난 노동이에요. 가장 흥미로운 건 이 벌레가 가족 단위로 생활하는 극소수의 곤충 중 하나라는 사실입니다. 송장벌레 부모는 힘을 합쳐 고기를 끌고 와서는, 세균이 번식하지 못하도록 자신이 분비한 항생물질을 잘 발라 자식들을 위한 식사를 내어 놓죠. 쉽게 말하면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이유식을 준비해 주는 셈이에요. 겨자씨만 한 뇌를 가진 이 생명체들의 습성은 어디에서 왔고, 또 어떻게 관찰되었을까요.


윤은 수도권 외곽의 대학을 전전하며 시간제로 강의를 해왔다. ‘과학적 방법의 이해’나 ‘다윈과 진화론 ; [종의 기원] 탐구’와 같이 1, 2학년 학부생을 위한 교양수업을 주로 가르쳤다. 과학과 인문학을 융합하여 가르치는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땄을 때 지도교수는 문무를 겸비한 셈이라 세뇌했고 윤 스스로도 그렇다고 자축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도저도 아닌 셈이었다. 대부분 ‘꼰대’였던 교수들에게 강좌를 구하러 다닐 때 그녀는 그들이 ‘꽤 넓지만 매우 얕은 유아용 물놀이장에서 노는 꼬마’ 정도로 자신을 업신여기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즈음 그녀의 남편 설은 12년간 다니던 대기업에서 정리해고를 당했다. 이후 선택한 일은 어린이 학습지를 판매하는 일이었다. 월급은 절반 가까이 깎였고, 판매 실적에 따른 성과급인지라 그마저도 받지 못하는 달이 많았다. 윤은 그가 해고를 당하지 않더라도 오래 버티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시간 강사를 하는 동안에도 여러 가지 자질구레한 임시직을 놓지 못했다. 자기소개서의 샘플을 쓰는 일은 건당 이만 원이었다. 보험회사 챗봇의 답변을 만들어내는 일은 몇 주가 걸렸지만, 백오십만 원가량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윤은 어떻게든 돈을 더 벌고 모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설은 정리해고를 당하기 전에 육아휴직을 신청하기도 했다. 승진 대상 첫해에 30%, 그다음 해에 나머지 30%, 또 그다음 해에 20%의 동기들이 승진했지만 설은 그 정글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조울과 공황 증상이 시나브로 시작된 건 그즈음이었다. 휴직을 낸 건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음을 깨닫고 스스로 포기를 선언한 셈이었다. 그러나 '아이를 얼마나 잘 키우려고 남자가 육아휴직을 내냐'는 주위의 야유 섞인 시샘을 들을 때마다 윤은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하루를, 한 달을, 계절을 망치고 있다고 생각하며 뒤돌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설이 만취한 채로 집에 들어와 윤 앞에 무릎을 꿇은 건 그가 복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어느 날이었다. 윤은 점심시간에 동료들을 모두 내보내고 혼자 옆 건물 옥상에 올라갔다고 했다. 그는 난간에 서서 10층 아래 주차장을 내려다보며 한 시간 동안 고민을 했다. 또 한 번은 지방 출장을 가는 길에 고속도로를 내달리던 승합차 문을 열고 뛰어내리는 상상을 했다. 실제로 차문의 손잡이를 붙들고 한참을 고민하던 순간, 기사가 마침 휴게소로 차를 돌렸다고 전했다.

그 이야기를 늘어놓는 설의 얼굴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접힌 종이 자국 사이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윤은 설의 이야기를 들으며 쓰다 만 자기소개서 샘플을 떠올렸다. 살면서 가장 어렵고 힘들었던 순간은 무엇인가요?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나요? 윤은 그 질문에 설의 이야기를 답변으로 쓰면 되겠노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순간 이후, 설과는 더 이상 예전과 같은 부부 관계로 돌아갈 수 없으리라 깨달았다.

죽을 거면 혼자 갈 것이지. 첫째 아들 혁이 남편에게 그렇게 무거운 짐이었을까. 혁에게 내려진 공식적인 진단명은 카너 증후군, 일반적인 의미의 ‘자폐’였다. 이제 아홉 살이 된 혁이 가장 자주 하는 기이한 행동은, 아무리 가르쳐도 어떤 옷이든 잘 입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었다. 겨울을 제외한 시기에는 항상 집에서 나체로 지냈다. 안팎을 가리지 않고 손님들 앞에서 소리를 지르며 바지를 벗어젖혔다. 지하상가나 백화점처럼 낯선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자주 거품을 물었다. 작은 소리가 모여 만들어내는 소음이 혁에게는 매우 무서운 것으로 다가오는 것이라 의사는 말했다. 술을 좋아하는 산모로부터 ‘태아 알코올 증후군’으로 자폐아가 생기기도 한다는데, 윤은 임신 5개월 때 남편 몰래 마셨던 맥주 두 잔 때문에 혁이 그렇게 태어난 것은 아닐까 자주 자책했다.


자식들을 위해 준비한 고기가 부족할 때, 부모 송장벌레는 어떤 선택을 할까요. 그들은 아주 정교한 평가와 계산을 거쳐 그 이유식으로 충당할 수 있는 숫자의 우월한 개체들만을 남기고는, 나머지 열등한 새끼들을 전부 직접 씹어 먹습니다. 실제로 입증된 사실이에요. 자원이 부족할 때 생명체가 생존의 전략을 바꾸는 것, 이것이 진화론을 이해하는 첫 번째 키워드입니다. 창조론으로 이걸 설명할 수 있을까요. 송장벌레를 이렇게 어렵게 만든 신의 뜻을, 그 누가 알까요.



“방송국이나 신문사에서 연락이 오면, 뭐든 응하지 마세요. 죄송한 말씀이지만, 공개적으로 알려지면 남편 분께서 충격을 받아 극단적인 선택을 하실 수도 있는 상황이니까요.”

준의 조언에 윤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빠져 죽지도 못했고 얼어 죽지도 않았던 설의 행적을 준은 일주일째 쫓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의 행적이 확인된 건, 혁과 함께 집을 나간 후 나흘뿐이었다.

의정부의 한 병원을 찾았던 설은 그날 밤 열 시경, 다리를 절뚝이며 은행 ATM기가 설치된 부스 안으로 들어왔다. CCTV에 찍혀 있는 그 장면은 윤이 눈으로 확인한 남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녀는 준과 함께 그 영상을 살피며 남편이 조금이라도 더 누추하고 불안해하며 본인의 잘못된 선택에 괴로워하는 내색을 비치길 기대했다. 하지만 주머니에 돈다발을 찔러 넣는 그의 얼굴은 몹시도 평안하고 자연스러워 보였다.

살아보려고 애쓰는 거니.

모니터 밖으로도 느껴지는 삶의 의지를 확인하며 그녀는 점점 맥이 풀렸다.

“수배 전단에 섬이나 해안가에서 나타날 수 있다는 것도 써넣으시면 어떨까요. 낚시를 워낙 좋아했으니까…….”

그녀가 준에게 그 이상 부탁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사실 설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확인되어 눈앞에 나타나길 바라는 건지 아닌지도 헷갈렸다.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든 그에게 묻고 싶기는 했다. 혁을 얻었을 때 내가 겪었던 고통과 환희를 너도 느꼈었니. 가끔 거품을 물고 난동을 부리는 아이일지언정, 하루하루를 함께 견뎌내 주었을 때의 안도감을 너는 얼마나 겪어 보았니. 당장이라도 눈앞에 나타난다면 ‘내가 아직 살아있네요’ 따위의 문장을 적어내고 고작 판초우의를 덮어놓은 그 예의 없는 손부터 잘라내 버려야겠다는 분노도 함께 스쳐갔다.

여러 차례 죽음을 생각했던 사람이 다시금 이토록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설은 병원에서 얼어붙은 다리를 치료받았고, 남아있는 돈을 모조리 찾았다. 그 돈으로 먹을 것을 얻고, 잘 곳을 빌릴 터였다. 낚시터에서 발견될 수도 있을 거라는 말을 내뱉으면서도 윤은 순간 그 상상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를 동시에 깨달았다. 고기를 낚아 배를 채우려는 것이 아닌 이상 입질하는 순간의 짤막한 환희를 기다리며 낚싯대를 띄우는 일이 과연 가당키나 할까.

차라리 함께 죽었어야 마땅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보다 조금이라도 더 괴로우려면, 지금이라도 죽는 것이 마땅해.



윤은 둘째 림을 그녀의 언니에게 보냈다. 혁보다 24개월 늦게 태어난 림은, 오빠가 갖추어야 할 지-덕-체를 모두 몰아 쥔 것 마냥 똑똑하고 눈치가 빨랐으며 애교까지 많은 딸이었다. 그렇기에 크게 걱정할 것은 없었다. 엄마의 슬픔을 야무지게 눈치채버린 림과 함께 혁의 장례를 가까스로 마친 후, 준과 만나는 일을 제외하면 윤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남편이 정신과에서 받아놓았던 신경안정제를 자신의 것인양 한 번에 세 포씩 털어 넣고는, 침대에 뿌리내릴 기세로 누워만 있었다. 잠에서 깨면 온종일 휴대전화를 들여다보았다. 사진첩을 천천히 쓸어 올리며 울어대는 일, 혹시 남편과 혁의 기사가 뜨지 않는지 온갖 단어를 조합하여 한 시간 간격으로 검색하는 일, 다른 부모들의 소셜미디어를 순회하며 행복해 보이는 그들의 사진 위로 혁과 자신의 얼굴을 겹쳐보는 일 따위가 그녀가 할 수 있는 일과의 전부였다.

그 작은 네모 안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은 자신의 경험을 과장하고 단순화했다. 비슷비슷한 사연들은 서로 하트를 얻기 위해 시장의 상품처럼 경쟁하고 있었다. 가슴과 골반을 실제보다 크게, 허리는 비현실적으로 잘록하게 왜곡한 여자의 사진처럼 허구의 고백과 가상의 육아기가 즐비했다. 게다가 심각하고 감동적인 대부분의 글에서조차, 독자라 할 수 있는 웹-친구들이 정독하거나 경청하지 않을 것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윤이 보기에 이것들은 새로운 장르 문학이었다. 윤은 나무늘보처럼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설이 남긴 편지를 다시 꺼내보았다.

‘내가 아직 살아있네요. 미안합니다.’

그녀는 그에게 묻고 싶었다. 이게 네 마음을 편하게 만들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하는 나름의 방식이냐고. 이게 무슨무슨 대나무숲 따위에 가벼이 올리는 웹-고백 같은 것이냐고. 테크놀로지와 온라인이라는 것이 사과와 고해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든다는 건 그간의 탐독으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남편은 피를 흘리며 꾹꾹 눌러쓴 오프라인 편지에서조차 용서를 구하는 것의 의미를 잊어버린 듯했다.

윤이 생각하는 진정한 사과에는 세 가지가 필요했다. 우선 당신이 나를 공격했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두 번째는 그 공격이 나에게 치료가 필요한 상처를 주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당신 때문에 내가 입게 된 상처를 어떻게 보상해 줄 것인지 나에게 물어야 한다. 그러나 목적어를 비롯해 많은 것이 생략된 윤의 ‘미안합니다’는 소셜미디어 속 고딕체를 닮아있었다. 일말의 용서나 호응을 바라기보다 철저히 자신만을 위해 쓴 새로운 장르 문학. 윤은 돗자리 조각에 휘갈겨 쓴 몇 마디 말로 설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가벼워졌다고 생각하자 심한 욕지기가 올라왔다.



‘알 수도 있는 계정’에 준이 있었다.

형사의 휴대전화 번호를 사무적으로 저장했으니, 소셜미디어 역시 사무적으로 그의 계정을 추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윤은 액정 위의 엄지를 왼쪽으로 밀어냈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돌려세웠다. 림의 또래 정도로 보이는 딸아이를 안은 채 환하게 웃고 있는 준의 프로필 사진이 그녀의 호기심을 끌었다. 그리스나 이탈리아 해변처럼 느껴지는 따스한 햇살 아래의 그는, 몇 번 건조하게 만났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서 있었다. 전문가의 손길이 느껴지는 사진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런 사진은 피사체에 대한 애정 없이는 탄생하기 어렵다는 걸 윤은 잘 알고 있었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앞으로 남은 무수히 많은 날 중에도 그녀에게는 없었고, 없을 사진들이었다. 준의 공간에는 ‘전체 공개’로 설정되어 있는 글과 사진이 많았다. 그건 그가 사적 영역에 둔감하기보다 자신을 모르는 사람에게조차 행복을 과시하고 싶은 욕망이 크기 때문이라고 윤은 생각했다. 척박하리만큼 건조한 얼굴과 목소리를 가진 그가 이렇게 유려하고 때로는 익살이 가득한 문장을 쓰는 사람일 줄이야. 여러 해 축적된 글을 책으로 낸다면 흔하디 흔한 육아 에세이 정도는 될 법했다. 윤은 몇 시간에 걸쳐 준의 일상을 탐독했다. 더 이상 넘길 페이지가 없어졌을 때 윤은 생각했다.


그의 계정을 들여다보지 않았더라면.


림과 동갑내기 딸을 키우는 아빠로서도 그는 설과 전혀 다른 유형의 사람이었다. 그 사실이 시샘과 원망 어디쯤에서 윤의 부아를 돋우었다.

준은 본인에 대한 소개를 ‘데바닷타 Devadatta’라 짧게 적어놓았다. 데바닷타라면 석가모니를 배신하고, 질투에 눈이 멀어 교단을 탐했으며 심지어 그를 암살하려 했던 제자 아니던가. 교단의 새로운 지도자를 꿈꾸었지만 너무나도 엄격한 계율에 집착한 나머지 자멸하고 말았던 불교 역사상 최고의 악인. 윤은 준이 왜 그러한 별명을 자신에게 붙였는지 궁금해졌다. 패자로서의 비운이 측은했을까, 혹은 그의 순수하고 순결한 근본주의에 매료되었을까. 아니면 둘 다일까.

본인의 딸이 나중에 자라 ‘판사, 의사, 공무원 필요 없고 팜므파탈이 되길 바란다’니.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엔 ‘수학문제 한 두 개 더 풀 시간에 차라리 연애를 하라’는 아빠라니. 100여 명의 친구들이 그 글에 ‘좋아요’를 눌러주었다. ‘기브 앤 테이크,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 가훈이라는 글에는 오랜만에 피식 웃음이 났다. 딸의 생애 첫 크리스마스에는 영국 프로축구 구단의 유니폼을 세트로 맞춰 입고 사진을 찍었다. 그 자그마한 유니폼 뒤에 그녀의 이름을 새기는 정성까지 보여주었다.

“집을 나서면 아빠는 또 흉측한 사건 파일을 뒤적이게 되겠지, 그리고 이상한 사람들, 아니면 전, 현직의 범죄자들을 쫓으며 음지의 이야기만을 골라 듣겠지, 기구한 사람에게 달려가 눈물의 무게를 달고 상처의 깊이를 재려 들겠지, 그리고선 집에 들어가면 그(것)들의 기운이 단 일 그램도 이 아이이게 닿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내 인생에서는 부재했던 ‘부성’이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거나, 아니면 비혼모의 자식이었거나. 여러 가지 추정을 하게 만드는 글이었다. 본능적으로 발현되는 부성애에 따른 삶을 충실히 사는 것인지, 아니면 이성적으로 그나마 좋은 아빠가 되려는 연기를 하는 삶을 살아내는 것인지. 둘 중 무엇일까. 뭐가 됐든 준은 훌륭한 아빠였다. 훌륭한 아빠처럼 보였다. 아비라는 존재의 의미와 부성이라는 개념 따위를 모른다고 하더라도, 윤은 그가 딸이라는 존재를 사랑한다고 스스로 믿고 있으며 그녀를 행복하게 해줘야 한다는 의무를 갖고 있다고 느꼈다.

그녀가 림을 키우면서 조금씩 쌓아놓았던 육아 철학과 매우 흡사한 내용의 글도 올라와 있었다. 3년 전의 게시물이었다.

“네 살배기 아이와 단순히 100미터를 함께 걸어오는 일이 한 시간이 걸릴 때도 있다. 보고 싶은 것, 만지고 싶은 것은 너무나도 많다. 좋은 육아의 핵심은 헌신, 관용, 집중된 투자 따위가 아니다. 단지 연애에서도 똑같이 발현되는 적절한 수준의 ‘밀고 당기기’이다. 네 살이 되고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내가 좋아하는 표정을 ‘일부러’ 짓는다. 나는 그것을 최대한 기분 나쁘지 않게, 또 상처받지 않게 좌절시키는 일을 꽤나 자주 해야 한다. 반대로 아이 역시 그렇게 나를 길들인다.”

윤의 심기를 건드리는 글도 있었다. 키즈 카페에서 아이와 놀아주며 느낀 바를 ‘잡설’이라는 제목으로 끼적여 놓은 글이었다. 그곳에선 아이와 함께 뛰어노는 것 말고도 다양한 부모를 관찰하게 되는 재미가 있다고 준은 적어 놓았다. 구석에서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는 절대다수의 부모와, 대놓고 누워 자는 몇몇 아빠들을 보면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고 했다. 준의 기준으로 그중 최악은 '입구에서 아이만 들여보내는 부모들'이었다. 그들은 아이의 등에 이름과 연락처가 적힌 자그마한 스티커를 마치 부적이라도 되는 양 붙여놓고 쇼핑을 하러 떠났다. 홀로 남겨진 아이들 중에는 림 또래의 혹은 림보다 어린아이도 많았다. 자신이 대단한 아빠는 아니라며 겸손을 떨었지만, 준은 그런 부모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의 경험적인 통계로, 홀로 남겨진 아이들 중 대부분은 예의가 없다. 그와 딸이 함께 블록 놀이를 하고 있을 때 난데없이 다가와 애써 지어놓은 것을 부수는 건 언제나 그런 아이들 중 한 명이다. 유아들도 본능적으로 지키고 싶어 하는 사회적 거리가 있는데, 그 영역을 폭력적으로 침범하고 횡포를 부리는 것도 대부분 홀로 남겨진 아이들이다. 질서를 파괴하는 아이들이 나타나는 순간 말려줄 수 있는 보호자는 대부분 옆에 없다. 부모와 함께 있어도 아이가 예의 없는 경우를 물론 보았지만, 홀로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 중 예의가 바른 경우는 거의 없다. 그리고는 주변에서 어른이 열심히 놀아주고 있는 그룹을 찾아 곁으로 다가온다. 그것이 아주 희귀한 풍경인양 부러운 눈으로 물끄러미 쳐다보고, 어른의 관심을 갈구한다. 그런 식으로 외로운 영유아들은 정말 쉬이 눈에 띈다고 준은 적었다.

준이 그 글과 함께 첨부한 기사는 윤도 언젠가 본 적이 있었다. 괌에서 여행하는 도중 어린아이 둘을 차 안에 두고 쇼핑을 하러 간 한국인 부부의 사건이었다. 아이들은 고작 여섯 살과 한 살이었다. 땀에 흠뻑 젖은 채 차 안에 잠들어 있던 아이들은 현지 경찰에 의해 무탈하게 구조되었지만, 부모는 ‘사소한 경범죄 Petty Misdemeanor’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기사가 대중의 관심을 크게 받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서른여덟의 남편은 대형 로펌의 변호사였고 서른다섯의 아내는 지방법원의 판사였다. 게다가 부부는 아이들이 구조된 후에도 50분이 지나서야 나타났다. 그러고는 심지어 '3분 정도 잠깐 마트에 다녀왔을 뿐'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준은 그 뉴스를 보면서 키즈 카페에 홀로 남겨져 놀던 아이들을 떠올렸다. 질서와 예의를 체득하지 못한 그 아이들처럼 법조인 부부의 아이들도 전인적으로 ‘잘 안 될’ 확률이 높다고 확신했다. 물론 그렇게 홀로 남겨진 아이들이 크게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듣지는 못했지만 그가 느끼기에 분명 커다란 결핍을 가슴에 안고 자랄 가능성이 높았다. 결국은 아빠와 엄마가 모두 ‘사짜’ 직업이니 두 아이들은 좋은 음식 먹고 비싼 옷 입고 안락한 곳에서 잘 자라겠지만, 형‘사’의 딸이 더 괜찮은 인간이 될 확률이 높다고 준은 말하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최고 법조인의 자녀들이 자신의 직관에 맞게 전인적으로 훌륭하지 않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기원한다는. 그래야 인생이 조금은 공평하지 않겠냐는. 준은 앞으로는 더 열심히 딸과 놀아줘야겠다는 다짐으로 글을 마무리했다.

글을 읽는 동안 윤의 얼굴이 서서히 붉어졌다. 그가 조금 유별날 뿐, 원래 다들 그러지 않는가. 키즈 카페에 아이를 맡긴 부모들은 잠깐 동안이나마 담소를 즐기고 아이의 어깨에 붙어 있는 자그마한 스티커에 기대 안심하고 쇼핑을 즐기지 않는가. 돈과 아이의 시간을 맞바꾸는 이유는 다 그런 여유를 원하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그렇게 자위해 보지만 윤은 내심 부끄러웠다. 그곳에서 설은 항상 손에서 휴대전화를 놓지 않았고 구석에서 자주 밀린 잠을 청했다. 그 사이 림과 함께 남겨진 혁은 아마도 누군가의 장난감을 빼앗고 부수며 또래 아이들을 울렸을 것이다. 자상한 부모와 함께 노는 아이들을 질시하며 괴롭혔을 것이다. 그런 장소에서 준은 설과는, 또 우리 둘과는 다른 풍경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최악이 되지 않아야 내 아이가 그나마 최선이 될 확률이 높아진다’는 그의 마지막 문장이 윤의 가슴과 머리를 헤집어 놓았다.

나는 왜 이런 남자를 만나지 못했을까. 어지러운 생각이 가라앉자 무의미한 한탄이 몰려왔다. 윤은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만났던 2학년 오빠 설과 연애를 시작했다. 살을 섞은 남자는 인생에서 그가 유일했다. 특별할 것 없던 연애에도 위기는 자주 찾아왔다. 그러나 윤은 헤어질 용기가 나지 않았다. 헤어지는 과정이 두려웠는지, 혹은 귀찮았는지 그녀 스스로도 아리송했다. 설이 군대에 갔던 2년 6개월 동안도, 졸업 후 1년 반 동안 취업준비를 할 때도 윤은 설을 기다렸다. 천신만고 끝에 설이 대기업에 취직하자 결혼 이야기를 먼저 꺼낸 건 윤이었다. 다시는 용기를 낼지 말지로 고민하며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송장벌레 가족에게 가장 커다란 역경이라는 건 뭘까요. 사람에게 가장 무서운 게 귀신이 아니라 사람이듯이, 그들에게도 같은 종족의 침입이 가장 위험합니다. 냄새를 잘 맡기 때문에 송장벌레 가족이 묻어놓은 고기를 다른 송장벌레가 쉬이 찾아낼 수 있죠. 그것을 찾아내면 그때부터는 전쟁이 시작됩니다. 그 전쟁에서 만약 침입자가 승리를 거두면, 새로운 새끼들이 자라날 공간을 만들기 위해 원래의 새끼들을 모조리 죽입니다. 그리고 침입자와 같은 성性을 가진 어른벌레는 쫓겨납니다. 성이 다른 원래 거주자는 그 침입자, 그러니까 배우자를 내쫓고 내 새끼들을 죽여 버린 그 철천지원수와 의무적으로 짝짓기를 해야 합니다. 그렇게 제2의 송장벌레 가족이 탄생하게 되죠.


윤은 준과 섹스를 하면 어떤 느낌일지 잠시 상상했다. 1년이 되었을지, 2년이 되었을지. 설은 그동안 윤을 안으려고 하지 않았다. 윤이 먼저 다가가 안아도 설의 몸이 반응하지 않아 품어줄 수 없었다. 윤은 눈을 감았다. 목탄으로 그린 크로키처럼 준을 떠올리며 사타구니에 손을 가져갔다. 아무것도 할 기운이 없다고 스스로 믿어왔던 그녀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순식간에 덩치를 키운 들불처럼 그녀의 몸이 삽시간에 뜨거워졌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오르가슴이었다. 땀이 식자 조금씩 입맛이 돌기 시작했다.



차가 좁은 골목길로 들어섰다. 이틀 전, 준은 참고인 중 한 명인 어린이 학습지 회사 팀장을 함께 만나자고 윤에게 제안했다. 윤은 내키지 않았지만 준을 만난다는 생각에 군말 없이 따라나섰다.

준은 설이 아직 살아 있다고 믿었다. 그의 직관과 경험으로는 그렇다고 했다. 준은 윤에게 시선을 주지 않은 채 대략 2주 동안 설의 종적을 좇았던 결과를 차로 이동하는 내내 설명해 주었다. 행적을 추적하다 만난 사람들은 설이 어떻게든 살아 내보려 안간힘을 쓰는 것처럼 보였다고 했다. 강화도의 한 펜션에서 3일 간 청소 일을 할 때도, 이후 경남 청도의 어느 축사에서 5일 동안 험한 잡일을 도울 때도 준은 죽기보다 살려고 애쓰는 사람 축에 더 가까웠다고 했다. 조수석에 앉아 남편의 동선을 듣던 윤은 최대한 화를 삭이며 무기력한 표정을 연기하려 애썼다.

개새끼, 멀리도 갔다.

그녀는 살면서 단 한 번도 그런 욕을 입에 담아본 적도,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추적을 피해 황급히 짐을 싸서 도망치는 설을 상상하자 그 정도의 욕은 애교에 가깝다고 여겼다.

“펜션 주인 말로는 면허가 있다고 하면서도 운전은 한사코 안 한다고 하더래요. 축사에서 일할 때도 급하게 부탁할 일이 있었는데 자기는 절대로 운전 안 한다면서. 운전하면 무슨 몹쓸 병에라도 걸리는 사람처럼 그렇게 야박하게 굴더래요.”

‘운전대를 잡으면 그게 사람이에요, 벌레 새끼지?’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려는 순간, 준과 눈이 마주쳤다. 윤은 혀끝에서 맴돌던 말을 다시 목구멍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러나 설이 운전대를 잡는 상상을 하자 그녀의 기억은 다시 여우고개 절벽에 가 닿았다. 고개 위에서 내려다본 부감, 줌인되듯 커지며 누워 있는 차체. 그리고 판초우의에 덮인 채 부패액이 얼어붙어 마치 땅에 녹아내린 듯 보이던 혁. 송장벌레가 여기저기 파먹어 버린……. 그 장면이 떠오르는 순간 그녀는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마침 두 사람이 탄 차가 학습지 회사 건물 앞에서 멈추었다.


“아휴, 여기저기서 자꾸 돈이 빵구가 나더라 안 허요.”

검정 뿔테 안경을 낀 학습지 회사 팀장은 설보다 대여섯 살 정도 많아 보였다. 그녀는 설이 회사 돈을 횡령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회사에서도 난리가 났다고 했다. 고객들에게 할인 명목으로 현금 결제를 유도한 뒤, 계약한 책값을 자신의 주머니에 챙기고 책은 보내지도 않았다고 했다. 마치 오래전부터 작정한 사람처럼 일주일 동안 오십여 명의 계약금을 받아 챙긴 것도 모자라, 남의 개인정보를 도용해 책을 계약한 것처럼 ‘가假매출’을 꾸며 회사에서 주는 인센티브까지 챙겼다고 했다. 윤은 설이 좋은 남편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별로 없었지만 나쁜 남편,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더 이상 설의 행동에 무슨 이유가 있었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심지어 설의 존재에 대해서도 별로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갸가 강하고 독해서 그랬겠까니. 그게 아니라 마음이 너무 약해서 그래, 내가 봤을 때엔. 너무 약했어.”

학습지 회사 팀장은 설을 그렇게 평가하고 표현했다. 시골 할머니들이나 쓸 법한 말투와 억양으로, 부디 법이 허락하는 선에서 관용을 베풀어 줄 것을 그녀는 바랐다. 윤은 그녀의 입을 틀어막아 버리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약해서 그랬다니. 약해서 회사 돈을 치밀하게 제 주머니에 넣고 자식새끼와 함께 절벽으로 차를 몰아 저만 살아 나온 놈이, 약한 마음을 가져서 그런 거라니. 씨발년아, 네가 뭘 안다고 떠들어. 윤은 다시 한번 침과 함께 욕을 삼켰다.


어떻게든 교훈을 주려고 노력하는 옛날이야기들에서는, 결국 원하는 바를 이루지만 파국을 맞는 인물이 항상 등장하잖아요. 자연선택설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수컷인도원숭이나 송장벌레처럼 다른 배우자를 빼앗고 새끼들을 죽여 한 가족을 파괴하는 생존법을 누가 아름답고 경이롭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적응’이라는 개념 역시 그렇습니다. 비유하자면 적응에 성공하는 인간은, 종국에는 모든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근시안적인 이기심의 집약체라고 할 수 있겠죠.


이제 인생에서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야 할까,라는 물음에 윤은 쉽게 답을 꺼내기 어려웠다. 설은 자신만의 삶을 진화鎭火하기 위해 사라졌고, 혁은 소훼燒燬되어 소멸해 버렸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녀는 헛웃음이 튀어나오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준의 눈을 피해 고개를 차 바깥쪽으로 바짝 돌렸다. 꾹꾹 울음을 참아내었다. 그녀는 단 한순간도 이기적으로 살지 않았다. 그래서 더 억울했다. 그렇게 살아온 인생이 아름다운들 누가 예쁘고 경이로운 삶이라고 얘기해 줄 수 있을까. 이제 그렇게 이야기해 줄 존재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었다.

윤은 눈물을 훔치고 준을 쳐다보았다. 차창에 왼손을 올리고 그 위에 턱을 괴고 있는 모습이 날카롭지만 세련되어 보였다. 나는 왜 이런 남자를 만나지 못했을까. 이런 남자는 왜 내 것이 아닌, 남의 것이 될 수밖에 없었을까.

“형사님.”

“네?”

“당신은…… 그렇게나 많이 다른 사람이에요?”

“무슨 말씀인지…….”

그녀는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조심스레, 또 아주 천천히 핸들을 잡고 있는 준의 오른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손등에 자신의 손을 덮었다.

준은 잠시 당황하는 듯했지만, 자신의 손을 떼지도 윤의 손을 떼어내지도 않았다. 한참 뒤 손을 뒤집어 윤의 손과 깍지를 낄 뿐이었다. 준은 윤의 행동이 어떤 암시인지 잘 알고 있었다. 마치 언젠가 비슷한 순간을 경험한 적이 있는 사람처럼 자연스럽고 익숙했다. 둘은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눈물로 가득 찬 그녀의 눈이 그동안 한 번도 본 적 없는 윤을 보여주었다. 아무 감정 없이 건조하게만 보이던 얼굴이 180도 바뀌어 아름다워 보였다. 준은 단 한 번도 외도를 해보지 않았지만, 윤이라면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만큼 윤은 매력적이었다. 결정적으로 한 번 즐긴다고 해서 크게 탈이 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준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 사이 윤은 준과의 섹스가 어디까지 자신을 끌고 갈 수 있을지 자문했다.

서로 만지작거리던 두 손을 함께 바라보고 다시 한번 눈을 마주치는 순간, 그들이 탄 차가 중앙분리대를 스치듯 들이받았다. 차는 좌우로 한참을 휘청거리다 결국 뒤집어졌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반 바퀴. 차는 왼쪽 면을 바닥에 대고 모로 누워버린 모양새로 도로 중앙에 멈춰 섰다.

윤은 정신을 잃은 준의 오른손을 다시 한번 잡았다. 그리고 그가 깨어나길 바라며 살포시 손에 힘을 주었다. 준의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윤이 손으로 훑었다. 손바닥 한 면을 흥건하게 적실만큼의 상처지만, 아마 이 정도로는 죽지 않을 것이다. 안도일지 고뇌일지, 스스로도 알 수 없는 한숨과 함께 윤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준의 집에 가서 그의 부인을 내쫓고 휘황찬란한 만찬을 차리는 유화풍의 그림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그림 속에서 윤은 프로필 사진에서처럼 환하게 웃고 있는 준의 딸을 커다란 쟁반 위에 묶어 메인디시로 내어놓은 뒤 칼로 조각조각 썰어먹는다. 윤은 다시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남자를 언젠가 어딘가로 끌고 가서 살을 섞게 된다면 그것은 진화일까, 퇴화일까. 이도저도 아니면 생존을 위한 적응일까. 쉬이 답을 내리기 어려운 질문에 윤은 다시 한번 눈을 감았다. 어둠 속 유화에서 그녀는 식탁 앞에 앉아 있는 준의 뒤로 다가가 어깨에 손을 얹는다. 그리고는 교태스러운 표정으로 나지막이 속삭인다.


우리, 너무 멀리들 간다. <끝>



2021. 1.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