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의 흐름

40대 중년 남성의 생존 가능성에 부쳐 - 가난이란 무엇인가

by 윤그림

<가난이란 무엇인가 — 하등 쓸데없는 정의 >


일요일입니다. 한 주를 마감하며 맥주를 마시고 싶었습니다. 분리수거를 정리하면 일요일의 일과는 끝이 납니다. 어김없이, 한 주를 마감하는 의식이 필요했습니다.

아이와 함께 찾은 편의점에서 잠시 고민합니다. 4캔에 13,000원 하는 라인이 있고, 12,000원짜리 조합도 있습니다. 그런데 4,000원에 4캔 하는 제품도 있습니다. 흔히 ‘발포주’라고 불리는, 어떤 사람들은 ‘가짜 맥주’라고도 부르는 것들입니다.

저는 항상 그 진열대 앞에서 갈등합니다. 어떤 날에는 그 의식이 숭고하길 바라며 조금은 더 비싼 것들로 제 목을 축이길 허락합니다. 하지만 매 순간 ‘플렉스’할 수만은 없습니다. 1/3 가격의 대안이 있다면, 그게 정녕 가짜 맥주일지언정 손이 갑니다. 그 냉장고 앞은 어쩌면, 제가 ‘부유하지 않다’고 느끼는 최전선입니다. 오늘은 그냥 그 한 캔에 1,000원 꼴인 그 초록색 맥주 캔을 들어 올렸습니다.


가난하게 자랐습니다. 항상 돈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가난’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합니다.


당연히 가난은 단순히 돈이 부족한 상태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가난은 어쩌면 결핍의 총량이고, 부족함에 대한 통각이며, 비어 있음에서 오는 외로움과 기대의 뒤섞임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사람에게 따라 굴레이기도 하고, 때로는 힘이기도 합니다.


가난은 ‘선택할 수 없음’의 다른 이름입니다.

부유함은 선택지를 줍니다. 하지만 가난은 언제나 선택지를 좁히고, 결국에는 어떤 길을 ‘걸러낼 수밖에 없는 길’로 바꿉니다. 이 지점은 [아비투스]라는 개념과 함께 지난번에 잠시 말씀드렸던 바가 있었습니다. 어쩌면 생의 업이 될지도 몰랐던 일들을 포기했었던 순간들에 대해서요. 실패를 감당할 수 있는 여유가 없고, 돌아갈 수 있는 기회비용을 지불할 능력이 없다는 감각... 가난은 미래를 계획하는 대신, 오늘 하루를 버티게만 만듭니다.


요즘 가장 고민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만, 가난은 ‘시간을 빼앗기는 상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돈이 없다는 것은 때로는 시간이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더 많은 노동을 해야 하고, 길 위에서 더 많은 시간을 버려야만 하고, 하나하나의 고민을 더 촘촘히 처리해야만 합니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말마따나, "가난한 이들은 더 많은 시간을 잃습니다."

부자는 시간을 돈으로 사지만, 가난한 사람은 돈을 위해 시간을 내야 합니다. 그래서 가난은 ‘내 시간을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삶’이라는 의미도 갖습니다.


당연히도, 가난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게 합니다.

가난은 수치심을 동반합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마음, 비교되는 자리에서의 위축, 조금만 잘못해도 “역시…”라는 눈초리를 받을까 하는 두려움.

급식을 먹어본 적 없이, 학창 시절 내내 도시락을 싸서 다녔습니다. 함께 살았던 외할머니가 항상 준비해 주셨습니다. 아이들에게 그 도시락이 어떠한 평판과 파장을 가져다주는지 당신께서는 알 리 없으셨을 겁니다. 김치, 콩자반, 멸치조림, 새우젓, 조개젓... 그 이상의 것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참치캔, 스팸, 소시지 정도면 점심시간에 어깨를 펼 수 있었던 시절입니다. 저는 초등학생 시절에 그래서 등굣길 어드메 쓰레기통에다 그 도시락을 비워 버리고는 했습니다. 도시락 없이 친구들을 대하는 것이, 그것을 손에 들고 만나는 것보다 나았습니다.

사회학적으로는 결국 가난은 ‘사회적 위치’입니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구성되는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혹자는 “가난한 자란 가난해 보이는 자다”라고 했겠지요. 절대적으로 물질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타인의 눈과의 비교 속에서 더욱 커지는 감정... 그래서 가난은 종종 수치심, 혹은 사회적 배제의 감정과 함께 나타납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는 순간, 우리는 가난을 더 또렷하게 체감하게 되죠.


그래도 가난은 언제나 ‘저항의 씨앗’을 품고 있습니다.

가난하게 자란 이들에게는 이상하게도 낭비하지 않는 마음, 부족한 것을 채우려는 열망, 사소한 기쁨을 크게 느끼는 능력이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작은 성공에도 크게 감사하고, 누군가의 어려움에 쉽게 귀 기울이며, 사람의 마음이 어떤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는지 빨리 감지할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영화 [다크 나이트]의 오프닝에서 조커가 비틀었던, 니체의 워딩을 좋아합니다. 이 맥락에는 맞지 않을 수 있겠습니다만...

“What doesn’t kill me makes me stronger.”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들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가난은 인간을 시험하지만, 그 속에서 인간을 윤택하게 하는 것들도 자랍니다. 뭐, 대단히 뻔한 이야기지만, 부족함은 도리어 사람을 단단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최근 부인과 이 테마를 두고 여러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가난은 상태인가, 아니면 경험의 문제인가. 부인은 전자를 이야기했고, 저는 후자를 말했습니다.

그녀는 가난은 곧 ‘미래’라고 말했습니다. 그녀 역시 물론 가난한 ‘촌’에서 자랐고 저와 아무것도 없이 결혼했던 ‘없는 사람’입니다만, 그 키워드만 떠올리면 현재의 어떠한 감정이나 에피소드보다는 그냥 미래라는 단어만 떠오른다고 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노년과 노후 자금을 걱정해야만 하는 일종의 status... 어쩌면 지금 당신은 크게 부족함이 없는 상태이니 그렇게 미래만을 걱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반문해 주었습니다.

저는 경험이나 순간순간의 에피소드로 가난을 체험합니다.

서너 달 전, 극심한 우울함이 찾아왔을 때 이런 일기를 쓴 적이 있었습니다.

“맥주를 세 캔째 마시고 있다. 잠이 오지 않는다. 조금의 취기도 오지 않는다. 역시, 불안이 영혼을 잠식한 탓이리라...

아이는 소파에서 하루를 즐거이 마감한 채 곯아떨어졌다. 즐거운 하루였으리라 믿는다. 4만 원짜리 보드게임을 '큰맘 먹고' 사주었다. 이제는 그 정도 금액을 '큰맘 먹고' 쓰게 된다. 예전에는 아비로서의 자부심이 앞섰다면, 지금은 자꾸 걱정이 생각의 뒤를 밟는다. 그만큼 나의 경제력, 나의 삶은 허약해져 있다. 당연히 아비로서의 자신감도 나약해졌다.”


지금의 저에게 가난은 ‘상태’가 아니라 ‘경험’입니다. 과거에는 도시락이 그랬고, 지금은 아이에게 사줬던 보드게임이 작지만 사무치는 통각을 가져다줍니다. 사실 상태냐, 경험이냐 뭐가 중요하겠냐만은, 그리고 이 얘기를 이 오밤중에 이렇게 길게 읊조리는 이유도 모르겠습니다만은. 어제는 왜 로또를 사지 않았을까...


"돈이 많아도 마음이 쪼들리는 사람은 가난합니다... 반대로 돈이 적어도 관계가 풍요롭고, 스스로를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덜 가난합니다" 따위의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물질의 양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살아가는 삶이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라는 말"도 모르지 않습니다. 때때로 슬픔이지만, 때로는 동력이고, 아주 가끔은 동력이지만 매우 자주 슬픔입니다. 이 글 끝의 결론은, ‘부인 말이 맞다’라는 생각입니다. 뭐가 뭔지, 왜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발포주 한 잔만 더 해야겠습니다. 허한 마음과 허한 능력이 무엇으로든지 채워지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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