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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달 Jul 14. 2022

[책 리뷰] 삼개주막 기담회

오윤희 작가 시리즈 2

제목: 삼개주막 기담회

저자: 오윤희

출간: 2021.05.21



이 책의 배경은 마포나루 어귀에 있는 삼개주막이다. 장삿배와 상인들이 쉴 틈 없이 부대끼는 이곳에서 6개의 각기 다른 스타일의 기담이 이루어진다. 요즘 흔히 다루어지는 자극적 공포가 아니라 한국적이면서도 현대적인 스토리가 불쾌하지 않은 오싹함을 준다. 그리고 이야기마다 교훈을 담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1. 그림 그려주는 노인


모르는 것보다 알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이 더 괴롭다


  삼개주막의 첫 번째 이야기는 여러 마을을 떠돌아다니며 현재 배우자 혹은 미래 배우자의 얼굴을 그려주는 노인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노인은 다른 사람의 배우자를 그려주다 보면 알고 싶지 않아도 타인의 인생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예상되는 성가신 일이 생긴다고 이야기한다. 그 말을 들은 한 보부상은 미리 알면 대비도 할 수 있으니까 더 좋은 거 아니냐며 자기 아내를 그려달라고 한다. 결국 보부상은 미리 알게 된 운명의 한 여인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인생을 살면서 한 번쯤은 미래를 미리 알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이 이야기에서는 모르는 것이 약이고, 운명을 바꾸려고 욕심부리지 않는 것이 유익할 수 있음을 알려주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의문도 든다. 보부상에게 자신의 인생에 정해져 있던 그 한 여인을 알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지 묻는다면 과연 그 보부상은 무슨 대답을 할까? 보부상에게는 평탄하게 혼자 살아가는 것이 축복일까 아니면 짧지만 설레고 강렬했던 사랑을 만난 게 축복일까?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바보 같아 보이지만 당사자가 아니면 어떤 선택이 옳은지 함부로 판단하기 힘들 것 같다.     



2. 첩의 환생


증오와 복수심은 상대뿐 아니라 자기 자신마저 태워버린다


  두 번째 이야기는 자신의 부모님을 죽음에 이르게 한 마님(본처)에게 복수하려는 노비의 계략 때문에 시작된다. 노비는 서로 견제하고 있는 본처와 첩의 관계를 이용하여 서로 죽고 죽일 수밖에 없는 덫을 친다. 노비의 계획대로 진행되진 않았지만 바람대로 마님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계획으로 인해 노비도 누구도 관심 갖지 않는 초라한 인생을 살다가 다른 사람의 손에 죽임을 당하게 된다.

 이 이야기는 악한 마음으로 남에게 해를 끼치면 결국 자신이 배로 돌려받는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매우 드물긴 하지만 나도 내 눈에 보이는 것조차 싫은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증오하는 감정은 그냥 생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과 체력을 갉아먹는다는 것을 느끼고서는 이를 악물고서라도 감정을 차단하려고 했다.

  문득 어릴 때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나를 싫어하고 괴롭히는 친구가 있어서 꼴도 보기 싫다고 울면서 이야기했는데 엄마는 그런 사람에게 욕하고 저주하지 말고 오히려 잘되길 기도해주라고 말씀하셨다. 그 당시에는 이해가 안됐지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증오는 나까지 태워버리기 때문에 차라리 미워하는 사람이 잘돼서 내 곁을 떠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편이 나에게 더 유익할 것이다. 내가 복수하지 않아도 결국 잘못한 것은 돌려받을 테니 마음 편히 살자. 그리고 악하게 살지 말자.     



3. 유괴된 아이


추악한 세상에서 순진한 아이들은 무방비 상태다


  세 번째 이야기는 염매로 희생당한 어린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염매란 아이를 굶겨 죽인 후, 영혼을 수족처럼 부리는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무당은 유괴해온 아이를 염매로 만들어서  그 영혼을 이용해 자신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보며 인간은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을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각주에 보면 염매는 동양에서 사용된 주술이고, 조선왕조실록에도 염매를 금지하는 내용이 등장한다고 쓰여 있다. 상상 속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존재했고, 사회적 약자인 어린이를 가장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죽여서 그 한을 이용한 장사를 했다는 것에 기함했다. 세상에서 살면서 많은 돈을 벌고 싶고 권력을 쥐고 싶은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이 도덕적, 윤리적으로 깨끗해야 하고 누군가를 해치며 얻은 것은 결국 잃다 못해 있던 것도 뺏길 것이다. 추악한 세상에서 함께 추악하게 행동하며 만들어놓은 사회는 결국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고통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4. 과거 보러 가는 길


  네 번째 이야기는 젊은 선비가 과거시험을 보러 가던 중에 길을 잃어 남의 집에 신세를 지면서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신세지게 된 집에는 친구에게 모함을 받아 몰락한 양반과 그의 아내, 아들, 딸 넷이 살고 있었는데 그들은 양반 출신 집안답게 지혜롭고 친절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하룻밤만 머물다 가야 했지만 선비는 그 집을 떠나고 싶지 않아 했고 결국 과거시험 날이 코 앞에 닥쳐서야 출발하기로 했다. 출발 당일 선비는 갑자기 쓰러져 넋이 나가버리는데 양반 가족들은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고 더 쉬다 가라고만 한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그 양반을 모함하여 몰락시킨 친구는 선비의 아버지였다. 선비를 맞아준 사람은 한이 맺혀 지박령이 되어버린 양반 가족이었고, 선비는 친구(현재 선비의 아버지)가 빼앗아간 양반의 아들이었다. 양반 가족은 지박령이 되어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원수의 자식으로 살고 있는 자신의 아들에게 모든 사실을 환상으로 보여주었고 선비는 충격을 받아 그 집의 지박령이 되어버린다.

  읽고 나서 든 생각은 자기 가족을 몰살시킨 원수의 집에서 자신을 키워주고 있었다는 것도 몰랐고, 남을 해친 적도 없고 오히려 백성을 위한 정치를 꿈꿨던 선비가 양아버지의 벌을 대신 받아야 하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모든 사실을 보여주어 고통받게 한 것이 다름 아닌 선비의 진짜 가족의 지박령라는 것도 이해가 안 됐다. 물론 친아들은 아니지만, 외아들이자 5대 종손으로 귀하게 키운 아들이 넋 나가 돌아온 것이 슬프겠지만 아들은 평생 혼이 나갈 정도의 고통 속에 살아야 한다는 게 안타까웠다. 남에 대한 질투심 때문에 한 가정을 파탄 내고 자신이 갖지 못했던 아들을 빼앗았고, 산산조각이 나버린 가족의 영혼들은 그 집에 남아 복수할 날만 손꼽아 기다리며 아들을 뺏어온 것이다. 잃는 것뿐인 싸움이지만 구구절절한 사연을 들으면 누구 하나 함부로 말릴 수도 없을 노릇이라 안타까웠다.

 결국 남을 해치면 그 해가 반드시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과 복수에는 수많은 희생이 따르는데 그게 자신 혹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음을 알려주는 것 같다.     



5. 열녀


  다섯 번째 이야기는 살림살이가 변변찮은 가문으로 정씨라는 여인이 시집을 오며 시작된다. 정씨의 남편인 허씨는 몸이 약해 아들이 태어나자마자 세상을 떠났다. 모진 시집살이에도 어린 아들만 바라보며 버텼던 정씨에게 시어머니는 자결하여 열녀가 될 것을 요구했다. 시어머니와 시동생은 어린 아들을 두고 떠날 수 없다며 거절하는 정씨를 자결로 보이게끔 살해하고 앞으로 펼쳐질 탄탄대로를 기대하지만 결국 두 사람 모두 끔찍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 이야기는 한국적인 소재를 다루다 보니 권선징악이라는 주제도 담고 있지만 목숨보다 절개를 중요시하던 시대에 여성의 자결을 바라보는 시선도 다루고 있다. 과거에는 여자가 순결을 잃을 위기에 처하거나, 남편이 죽으면 자결하는 것을 당연시 여겼다. 나라에서도 열녀를 높이 평가했기 때문에 열녀의 집안은 경제적 지원도 해주고 관직 진출도 유리하도록 혜택을 주었다. 이 정도면 자결이라는 말로 곱게 포장했지만 사회적 타살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6. 옹기장의 꿈


  마지막 이야기 자기 아내와 제자가 죽은 후 두 사람이 밀회를 나눴다는 것을 주인공인 옹기장이가 알게 되면서 시작된다. 옹기장이는 아내도 온 맘 다해 사랑했고 제자도 자기 친동생처럼 아끼고 보살폈다. 그런 두 사람에게 배신당한 옹기장이는 분노에 휩싸이지만 너무나도 소중했던 두 사람이기에 마냥 미워하지도 못한다. 그러던 중에 꿈에 제자가 나와 자신에게 사과하며 사건의 전말을 모두 말하고 옹기장이는 더 이상 아내와 제자를 미워하지 않게 된다.

  앞에서 나왔던 이야기들은 모두 배신을 복수로 되돌려주는데 반해 옹기장이는 용서와 포용을 선택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기 위해 마음을 다잡는다. 복수와 증오는 결국 자기 자신까지 파멸로 이끌지만, 용서와 포용은 나를 다시 살게 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삼개주막 기담회는 주모의 아들 선노미가 주막에서 들었던 기이한 이야기들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풀어내는 것을 본 양반이 선노미에게 양반 모임에서 지금까지 들은 이야기들을 풀어줄 것을 제안하면서 시작된다. 이 책은 총 3권까지 출간됐는데 여러 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어서 질리지 않게 술술 읽을 수 있고 기분 나쁘지 않은 오싹함을 주는 이야기라서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한참 먼 과거를 배경으로 전개되다 보니 시대에 맞추어 요즘 사람들에겐 낯선 단어들도 종종 나오는데 그것들을 찾아보는 묘미도 있었다.


  삼개주막 기담회는 무서운 건 싫어하지만 오싹한 분위기를 느끼고 싶은 사람, 이야기에 내포된 의미를 찾아내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추천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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