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과 실제

어떻게 죽을 것인가-3

by JVitae

현대인의 죽음이란 가능한 모든 의학적 수단을 사용해 버티고 버티다가 끝내 이세상에서 저세상으로 환자를 인계해 버리고 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호스피스 케어는 패배와 포기의 다른 말인 줄로만 알았다. 삶을 어떻게 마무리하고 싶은지에 대한 선택인 줄은 몰랐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이어가는 공격적인 치료는 그 낮은 성공 확률에 비해, 부작용으로 인한 극심한 고통을 겪을 확률과 몸이 되레 빨리 쇠약해질 확률은 아주 높단다. 특히 시한부를 선고받은 말기 암 환자들에 있어 끝까지 항암에 매달리는 쪽과 호스피스 케어를 선택한 쪽의 생존 기간에는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고.

최대한 통증을 제어하며 가능한 스스로 몸을 가누고 내 정신을 유지하며, 얼마 안 남은 하루하루를 의미 있는 사람들과 의미 있는 일들로 꽉꽉 채우다 삶을 마무리하겠는가. 아니면 내 보호자들에게 모든 결정을 맡긴 채, 오락가락하는 정신 속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도 모른 채 몸에 온갖 관을 끼우고 온갖 치료에 시달리다 가족들과 인사다운 인사도 하지 못하고 끝인 줄도 모르고 생을 마감하겠는가. 이렇게만 놓고 보면 물으나 마나 한 당연한 선택 같아 보이고 심지어는 호스피스 케어라는 것이 로맨틱하게까지 느껴진다. 그러다 문득 95세를 살고 계신 외할머니 생각이 났다.

외할머니께서는 내가 미국으로 유학을 나오던 2010년부터 "내년 겨울방학 때 또 찾아뵐게요!" 인사를 드리면 "글쎄, 내가 내년까지 살아있을지 모를 일이지" 하며 돌아가실 가능성에 대한 말씀으로 날 당황하게 하셨다. 3년 전쯤 핑크를 낳고 찾아뵈었을 때는 조용히 엄마를 붙잡으시더니 이제는 정말 며칠 안 남은 느낌이 든다며 발치까지 드리운 것 같은 죽음의 그림자 앞에 몰려드는 두려움을 고백하셨다. 몸이 너무 아파 병원에 가도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며 자꾸 돌려보낸다고. 하루 한 번은 꼭 하시던 외출을 그만두신 것도 그즈음이었다. 티비가 늘 켜져 있는, 천장 등은 꺼져 있는 어두컴컴한 방. 외할머니께서는 하루 종일 거의 침대에만 누워 계셨다. 나는 당시 한창 결혼을 하고 첫 집을 마련하고 첫 아이를 낳아 살아가는 중이었다. 그런 내 눈에 외할머니의 삶은 마지막에 다다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외할머니의 삶은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외할머니께서는 의젓한 자식이 셋이나 있으심에도, 혼자 사는 게 제일 편하다시며 작은 집을 얻어 꿋꿋이 혼자 살고 계신다. 주중 오전이면 정부에서 연결해 준 도우미 이모님이 찾아오셔서 서너 시간 집을 정리해 주고 말동무가 되어주신다. 주말에는 자식들이 외할머니께서 드시고 싶어 하시는 음식을 사와 함께 점심을 먹고 오후를 보낸다. 부엌에 나와 밥만 겨우 드시고는 작은 방 침대에 누워 티비만 보시는 외할머니 옆에서 매주 대화거리를 찾으며 몇 시간씩 있다가 오는 것이 생각보다 힘든 일이라고 엄마는 말씀하신다. 책의 내용으로 따져보니 우리 외할머니께서는 아직 책에서 염려하는 대상에도 들지 못할 정도로 행복한 노후를 보내고 계신다. 매일 만나는 사람들이 있고 혼자 화장실을 가시고 혼자 밥을 드시고 혼자만의 공간에서 자신이 원하는 스케줄에 따라 살고 계시니 말이다. 내게는 마지막으로 뵈었을 때 이미 위가 잘려 나간 나무의 몸통만이 죽은 건지 산 건지 분간하기 어려운 상태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말이다.

우리 외할머니처럼 노환으로 생을 마감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 사람에게 남은 하루하루를 의미있는 사람들과 의미있는 일들로 꽉꽉 채우다 삶을 마무리한다는 것은 동화 속 이야기처럼 보인다. 노환이 아니라 중병에 걸려 빠른 속도로 죽음을 맞는 편이 차라리 낫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그래도 여전히 외할머니같은 편이 낫다고 해야할까. 내가 외할머니의 나이가 되어 외할머니와 같은 생활을 하게 되면 지금 내 눈에는 안 보이는 그 속에서의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될까.

책에서 명료해보였던 것들이 막상 현실에 갖다대고 아는 척을 해보려니 허공에 팔 벌리고 허우적대는 느낌이다. 호스피스 케어도 무엇도 더 나은 것은 없고 죽음이란 복잡하고 힘든 이야기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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