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글쓰기

랩걸

by JVitae

지시받은 일을 하는 단계와 스스로 무엇을 할지 정하는 단계 사이의 이행은 일반적으로 논문을 쓰는 중간 시점 정도에 일어난다. 여러 면에서 그것은 학생이 할 수 있는 가장 어렵고 두려운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못하거나 할 의사가 없는 것이야말로 사람들이 박사 과정을 통과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다. -p99, 랩걸, by 호프 자런

주변 동기들은 대학 졸업 후 직장을 찾고, 난 박사 유학 준비를 위해 석사 과정에 들어갔을 무렵이었다. 비서가 되면 좋겠다 생각했다. *큰 결정 할 필요 없고, 큰 책임 질 필요 없는. 내가 향하는 길과 내 성향의 간극을 느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박사 과정은 주로 교수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밟는 코스다. 난 통계학을 박사 과정까지 공부해보고 싶긴 했지만 교수가 되긴 싫었다. 박사 과정을 지나며 내가 교수 재목이 아니란 사실은 더욱 분명해졌다. 저 사람은 교수 재목이구나 싶은 이들이 있다. 그들은 누구의 지시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무엇을 어떻게 연구할지에 있어 스스로의 의견이 뚜렷하다.

난 박사를 졸업하고 대기업 회사원을 택했다. 선배들이 있고 상사가 있고 상사의 상사가 있는 환경이 안정감을 줬다. 나도 조직의 한계와 답답함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러나 내게 그건 앓고 지나는 감기지 목숨을 빼앗을 중병으로 다가오진 않는다. 교수를 하겠다면서 계속 누군가의 허락을 바라고 누군가 지시를 내려주길 원한다. 그건 교수로서 목숨이 위태로운 중병이다. 난 그게 필요했다.

회사에 들어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회사원이라도 결국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이 필요하구나를 깨달았다. 충격이었다. 월에 두 번, *빵빵하게 찍히는 통장의 돈이 충격은 금방 흡수해 주었지만 난감함은 어찌해주지 못했다. 회사에서도 잘 되긴 글렀구나 생각했다.

매일글쓰기를 실천하며 이제껏 못 봤던 내 다른 면모를 본다. 내가 쓴 글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아무도 안 읽는 글을 쓰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내 글의 중심을 다른 무엇에 두고 싶지 않다. 글을 쓰는데 누구의 지시는 필요 없다. 뭘 쓰고 어떻게 쓰는지에 있어 내 의견이 뚜렷하다. 내 글에 누가 어떤 평가를 내리든 결국 내가 내리는 평가가 가장 중요하게 남는다.

난생처음 느껴보는 이런 느낌은 회사일에까지 확장이 된다. 회사 선배들이 말했었다. 네가 재밌다 생각하는 걸 네 생각대로 파. 팀원들에게 상사에게 그 결과를 공유해. 그럼 네가 보는 걸 그들도 보게 될 거야. 그렇게 일하면 돼. 이상적인 소리라 생각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박사 때까지, 25년을 시험성적에 연연하며 선생님 눈치를 보며 공부한 나에게 그보다 어려운 요구는 없었다. 이제 슬슬 그 느낌을 알 것 같다. 회사일에 자신감이 차오른다. 글쓰기 덕분이다.

*어린 시절, 비서에 대해 잘 모르고 한 생각이다. 어떤 직업도 그런 직업은 없다.
*내 기준이다. 박사 과정 때까지 입사 후 받는 한 달 월급도 안 되는 돈으로 일 년을 살았다. Talking about an order of magnitu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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