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병가는 아이들이 아플 때를 위한 것이 되었다. 내가 아픈 날에는 병가를 아끼고자 참고 일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일주일을 꼬박 앓고도 아픈 게 나아지지 않았다. 겁이 났다. 내가 아프면 우리 애들은 어떡하나. 부랴부랴 병원에 갔더니 간호사도 의사도 왜 이제야 왔냐 물었다. 회사일이 바빴고 어린 아이가 둘이라 혼자 병원에 올 짬 내기가 어려웠다. 내 말의 뜻을 이해할만한 나잇대의 사람들이었다. 병원에서 돌아와 오랜만에 날 위한 병가를 냈다.
휴가를 내면 뭐 하고 싶어? 여행, 영화, 하이킹, 친구, 맛집탐방. 본래 남편도 나도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휴가를 내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꿈이다. 가만히 누워 숨만 쉬며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을 만끽해 보는 것. 병가를 내고 소파에 담요를 덮고 누웠다. 아이들이 집에 돌아올 시간이 될 때까지 간간히 돌아눕기만 했을 뿐. 오랜 소원을 이뤘다. 몇 날 며칠.
몸이 아프면 할 일과 안 할 일의 구분이 명료해진다. 하지 않을 일은 ToDo 리스트에서 뺄 뿐 아니라 마음에서도 깨끗이 지워버린다. 미련도 힘이 있는 사람이나 갖는 것이다. 조금만 지체돼도 큰 일 날 듯 쫓기던 회사일을 덮어버렸다. 짧은 안부 인사라도 묻고, 미소 띤 눈인사라도 챙겨야 할 것 같던 학부모들, 교회사람들을 당당히 외면해 버렸다. 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시원한 해방감이 마음을 관통했다.
충분한 휴식은 아니었다. 그래도 벗어뒀던 짐들을 하나 둘 집어 들기 시작할 정도는 되는 듯하다. 재부팅 한 번 않고 몇 달을 켜둬서 버벅거리던 컴퓨터를 마침내 껐다가 켠 느낌이다. 오랜만에 보는 깨끗한 바탕화면. 어떤 앱부터 켤까. 이내 끄기 전과 똑같은 상태가 돼버리겠지만. 왠지 그래도 이번엔 뭐라도 나을 것 같은. 쓸데없는 설렘이 마음을 휘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