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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경 Dec 22. 2023

시간 도둑에게서 벗어나는 삶.

시간을 빼앗아 간 시간 도둑, 시간 도둑에게서 벗어나는 삶.



소중한 하루를 우리는 얼마나 잘살고 있을까? 오늘 해야 할 일에 치여서 자신도 모르게 삶의 여유를 잃어가는 건 아닐까? 사람들의 여유로운 시간을 몰래 훔치는 거대한 회색 신사들과 그들에게서 사람들의 시간을 다시 찾기 위해 노력하는 작은 소녀의 이야기가 있다. 독일 동화작가 미하엘 엔데 소설 『모모』가 그 이야기다. 회색 신사들은 평화롭게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에게 접근해서 그들의 여유로운 시간을 교묘하게 훔친다. 여유로운 시간을 빼앗긴 사람들은 그 사실조차 모른 채 바쁘고 지친 하루를 기계처럼 살아간다. “요즘 너무 바빠서 정신없네. 다음번에~”이런 말을 달고 사는 우리의 모습과 똑 닮은 모습이다. 




소설 『모모』에서 사람들이 빼앗긴 여유로운 시간은 이렇다. 영화나 책을 보면서 흐뭇한 감상에 젖어 드는 시간. 음악을 들으며 빛나는 달빛을 감상하는 시간. 이웃에게 관심을 가지며 그들을 돕는 시간. 소중한 가족을 돌보고 따뜻한 대화를 나누는 시간 등이다. 회색 신사들은 사람들에게 시간을 헛되이 쓰지 말고 시간 은행에 저축하라고 부추긴다. 여유 시간을 저축하느라 빼앗긴 시간 만큼 사람들의 삶에서 여유는 사라진다. 바쁘게 무엇인가를 하기 위한 시간으로 꽉 찬 하루를 사느라 다른 사람을 향한 관심과 여유로운 미소는 점점 자취를 감춘다. 만약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본 지 오래되었다면, 우리 역시 귀한 시간을 도둑맞았을지 모른다. 




『모모』에서 사람들의 시간을 훔치는 도둑은 회색 신사들이다. 그들은 마을 곳곳에서 사람들의 틈새를 노리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들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다. 지금 현실에서 여유 시간을 훔치는 시간 도둑은 누굴까? 가족과 함께하는 오붓한 저녁 식사 시간을 훔쳐간 도둑.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생각에 잠기는 시간을 훔쳐간 도둑.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외면하게 만드는 시간 도둑. 마음을 터놓고 차분히 나누는 대화조차 빼앗아간 시간 도둑. 현실의 시간 도둑 역시 멀리 있지 않고 늘 곁에서 함께 머물러 있다. 유튜브, SNS, 입시 교육시스템, 나아가 사회적 경쟁 시스템 등이 우리에게 뭔가를 끊임없이 하게 만들고 여유 시간을 가져간다. 




주어진 시간을 원하는 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것에 빼앗길 때 소중한 하루는 좌절과 절망으로 물든다. 헛된 시간 사용으로 발전할 기회가 점점 사라지고 있음을 스스로 알기 때문이다. 도둑맞은 시간으로 오늘 당장 해야 할 중요한 일을 끝내지 못한 자신이 점점 싫어지기도 한다. 살면 살수록 뒤지고 있다는 느낌이 자존감을 떨어뜨린다. 삶의 좌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시간 도둑으로부터 우리 시간을 지킬 필요가 있다. 나만의 시간을 온전히 사용하면서 알차게 보낸 하루는 그 자체로도 우리에게 귀한 축복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모르게 우리 시간을 훔치는 대표적인 시간 도둑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서 그 영혼을 꼼짝 못 하게 잡아두는 흥미로운 콘텐츠들이다. 우리의 눈을 일순간 즐겁게 만드는 유튜브나 SNS의 짧은 영상 등의 제작물이 그 예다. 물론 성장이나 교육에 필요한 좋은 제작물도 많다. 좋은 제작물은 시간을 투자한 만큼 마음에서 얻는 것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넘쳐나는 콘텐츠 세상에는 흥미로운 자극을 주는 것에 그치고 마는 경우도 많다. 아주 짧은 즐거움이나 만족을 주는 콘텐츠는 결국 우리 시간을 훔치는 시간 도둑이다. 좋은 제작물이라도 귀한 시간을 지나치게 쏟아붓고 있다면 그 역시 결국 시간 도둑이 된다. 




흥미로운 콘텐츠에 시간을 도둑맞는 사람에게 필요한 처방은 단 한주, 가능하면 한 달간 유튜브나 SNS를 멀리하는 시도를 해보는 것이다. 시간을 보람되게 잘 사용하는 사람은 그런 자신을 대견하고 자랑스럽게 여긴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잘 성취한 것이 기쁘고, 반드시 처리해야 할 일을 무사히 끝낸 것이 고마울 따름이다. 이들에게는 하루가 끝날 즈음 보람과 감동이 밀려들고 삶이 감사함으로 넘친다. 반대로 원치 않게 콘텐츠에 영혼을 빼앗긴 채 귀한 시간을 사용하는 사람은 그런 나날이 쌓여갈수록 삶이 허무함으로 가득 찬다. 소중한 우리 시간을 훔치고 있는 콘텐츠에서 자유로워지는 것만으로도 잃어버린 자존감을 찾을 수 있다.




시간을 훔치는 시간 도둑 둘째는 내면에 숨어있는 욕심쟁이 자아다. 자신에게 유달리 가혹한 사람이 있다. 이들은 높은 기준을 정해두고 그 기준에 맞춘 자신을 사랑하고 기준미달인 자신에게는 냉정한 쓴소리를 하며 자신을 학대한다. 예를 들어,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기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 자신이 할 수 있는 능력을 과대평가하고는 그것을 엄격히 지키려는 사람이다. 내면의 욕심 자아가 날마다 더 많은 것, 더 완벽한 것을 요구하다 보니 해야 할 일이 점점 넘치고 삶에서 여유는 사라진다. 욕심쟁이 자아는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 즉 ‘간절한 바람’을 먹고 자란다. 바라는 것의 크기가 커질수록 욕심 자아는 거대하게 변한다.




욕심쟁이 자아로부터 벗어 나는 방법은 ‘바라는 것’의 기준을 정하는 것이다. 우릴 지킬 수 있는 ‘바람의 기준’이란 ‘간절히 원하는 것’과 ‘얻게 될 결과물’이 다를 때,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않을 정도를 말한다. 즉, 결과에 대해 내려놓는 마음이다. ‘바람’이 지나치면 마음이 불안과 우울감으로 가득해진다. 간절함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과 두려움, 그런 상황을 감당할 수 없어 느끼는 좌절이 우울하게 만든다. 간절히 바란다고 하늘의 운이 반드시 나에게 올까. 사람은 노력만으로 모든 것을 이루거나 가질 수 없다. 하늘이 내미는 운의 손길이 절대적으로 있어야 한다. 내면의 욕심으로부터 시간을 지키려면 바라는 모든 걸 해내느라 애쓰지 말고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것까지만 노력해보자. 




시간을 훔치는 시간 도둑 셋째는 거절을 두려워하는 연약한 자아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꼭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건 적당한 거절이다. 물론 도움이 꼭 필요한 사람은 도와주는 것이 맞다. 하지만 우리의 그런 선한 마음을 이용해서 자신이 해야 하는 일마저도 떠넘기는 얌체가 세상에는 차고 넘친다. 이기적인 얌체의 일을 대신하는 것만큼 시간 낭비도 없다. 타인의 부탁에 거절하지 못하는 내면 자아는 착한 자아가 아니라 연약한 자아다. 예를 들어, 거절 때문에 관계가 틀어지는 것이 불안한 자아. 타인의 사랑과 인정에 목마른 자아. 아직 오지도 않은 미움과 갈등이 두려운 자아. 이런 속내를 만드는 것이 연약한 자아다. 




시간을 낭비케 만드는 연약한 자아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은 친절한 마음, 즉 온유한 마음이다. 자신을 먼저 사랑하고 친절히 대하자. 나를 사랑하는 사람만이 타인을 사랑할 수 있다. 만약 그동안 사랑받지 못해서 다른 이의 사랑이 간절했다면, 연약한 자아를 자신이 먼저 사랑하자. 누군가의 따뜻한 마음이 그리워 그들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다면, 연약한 자아를 내가 먼저 따습게 대접하자.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타인의 부탁에도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다. 타인의 부탁이 그들의 이기심에 기인한 것인지, 서로의 발전과 선의를 만들어낼 기초가 될 것인지 알아보는 지혜가 생기기 때문이다. 거절은 소중한 나와 내게 주어진 귀한 시간을 지키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인생에서 인정받는 어떤 것, 눈에 보이는 거대한 무엇인가를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삶만이 보람된 삶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한평생 세상으로부터 들어온 말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매일 주어진 시간을 무엇인가를 이루는 것에 투자한다. 우리에게 매일 주어지는 시간은 생명과도 같다. 우리는 생명 같은 시간을 귀한 것에 쓸 의무가 있다. 하루만큼 주어진 시간은 그만큼만 살 수 있는 생명이고 시간이 사라짐과 동시에 생명도 사라진다. 시간은 신이 사람에게 주신 가장 귀한 자본이다. 시간을 생명처럼 소중히 여기는 삶이란 인생 중간에 적당한 여유와 기쁨으로 장식하는 삶이다. 




귀중한 여유 시간을 훔쳐간 현시대의 시간 도둑은 우리의 욕심이 만들어낸 사회시스템의 한 부분이다. 부와 성공만이 우릴 행복하게 만들 거라는 잘못된 외침. 경쟁에서 이기고 한 단계 성장을 응원하는 강요된 인생 레벨업. 경쟁 구도에 지친 정신을 힐링시킨다는 명목으로 만들어낸 수많은 콘텐츠. 이들 사회시스템이 시간을 교묘히 훔치고, 포근한 인간다움이 사라지게 한다. 인간다운 삶, 여유로운 삶이라고 해서 자고, 쉬고, 즐기는 삶을 추구하라는 뜻이 아니다. 시간을 온전히 귀한 일에 사용해서 후회가 남지 않는 삶. 그런 하루가 끝나갈 즈음 잔잔한 감동이 밀려드는 삶을 살자는 것이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나, 귀한 하루를 잘 살아낸 나에게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이 한마디 건넬 수 있다. ‘오늘 하루를 잘 살아줘서 고마워. 삶이 주는 만족 덕분에 희망을 품고 내일을 살게 해서 고마워’ 내가 나에게 건네는 이 한마디는 시간을 생명처럼 소중히 여기는 마음 태도 덕분에 할 수 있는 말이다. 스스로 귀한 존재가 되어 이 세상 시간을 낭비 없이 잘 쓰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여유는 시간을 도둑맞지 않고 잘 사용해서 얻은 것에 만족하고 고마워했을 때 비로소 받을 수 있는 축복이다. 




인생에서 귀한 것을 성취하기 위해 열정으로 살아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노력하며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며 한 편의 영화를 감상하듯 자신의 삶을 감상하고 느끼는 시간도 필요하다. 이 둘의 조화가 어우러져 향기로운 삶이 된다. 간디는 이런 말을 했다. “가장 위대한 여행은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여행이다” 인생 시간 속에서 ‘열정’과 ‘돌아봄’을 조화롭게 하는 삶이 여유로운 삶이다. 자신을 돌아보는 여유는 타인을 돌아보게 한다. 스스로 삶의 만족을 찾은 덕분에 타인의 만족에도 관심을 가진다. 여유로움은 만족과 감사를 세상에 풍기는 삶의 향기다. 




여유로운 삶의 향기는 각박하게 사느라 뭐가 중요한지 까먹은 나에게 흐뭇한 깨달음을 전한다. ‘애쓰며 사느라 소중한 사람의 흐느끼는 뒷모습을 놓치지 마세요’ ‘시간의 흘러감은 생명의 사라짐과 같으니 생명을 허비하지 마세요’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은 나 한 사람 성공하라고 주어진 시간이 아니다. 곁에 있는 사람과 마음을 나누고 더불어 살라고 주어진 시간이다. 때론 지구 저편에서 울고 있는 아픈 마음을 한 번만 돌아보라고 주어진 시간이다. 여유가 삶의 향기를 풍기는 이유는 나와 타인에게 따뜻한 관심을 보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향기로운 인생이 되길 원한다면, 우리 삶을 야금야금 삼키는 시간 도둑에게서 우릴 지킬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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