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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 Jan 27. 2024

너는너의 삶을 바꿔야한다

진짜 너


너는 너의 삶을 바꿔야 한다.’     

얼마나 대담하고 단정적이고 그 이상으로 불쾌함을 불러올 수 있는, ‘보통’ 사람이라면 감히 함부로 누군가에게 하기 힘든 말인가자기 자신에게나 채찍질하기 위해지금까지의 자신을 부정하면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던가이 강렬한 제목에 이끌려 책장을 넘기는데나의 호흡도 점점 가빠지고 작가가 이끄는 대로 설득되고 있었다     


셀프메이커앱은 정부의 개인계발지수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진 앱으로 60세 이하 국민 절대다수가 사용하는 서비스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이 앱을 통해 사람들은 서로의 지수를 체크하고 최적화의 기술을 배우고 포트폴리오를 매력적으로 관리한다. 이야기는 ‘너’, 너를 관찰하는 사무관, 너가 한 때 부러워했던 집주인, 너의 연인, 너의 아버지, 너의 어머니에 관한 것이다.     

 

는 어느 날 의 지수가 상위 19%에서 상위 1%로 상승하여있는 것을 확인하고그때부터 의 삶은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19%에 소속되어 있던 ‘너’는 집주인이 부족한 애송이라고 생각했지만, 그의 지수는 15%였고, ‘너’보다 좋은 ‘셀프’의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가 이제는 너에게 부러움의 대상으로 연락이 오고, 너는 이것을 즐긴다.      


이제상위 1%인 는 대출이 쉬워지고 가치투자가 유망한 종목으로 보증되어 상위 1%에 걸맞은 삶을 영위하게 되는 것이다. 여행, 독서, 운동, 명상 등의 루틴들, 그리고 그런 실행들을 셀프에 게시물로 올리고 팔로워가 늘고, 너는 셀프에 루틴을 유지하는 노하우에 대해 쓰고, 사람들은 너를 따라 계획하고 소비한다. 그러다가 너는 왜 갑자기 1%가 되었는지 의문을 품게 되고, 스스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지수가 진짜 너를 반영하고 있는지부터 혼란스럽게 느낀다.     


진실은 알고리즘의 오류로 지수가 잘못 반영된 십수 명 중의 한 사람이 였고이 오류를 수정할 때 초래될 혼란 방지를 위해 국가는 오히려 오류 대상들을 관찰하게 된 것이었다. 시스템을 관리하는 통계사무관 중 하나가 ‘너’의 모든 것을 관찰할 업무를 부여받고 너의 어머니의 화장장에서 너에게 진실을 알려줄지에 대해 고민한다.      


이 소설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흡사하다고 생각했다. 전 국민이 스마트폰과 함께 눈을 뜨고 잠자리에 든다. 스마트폰을 들고 이동하면서 걸음 수가 측정되고 건강관리 앱에서는 다양한 정보와 연령대별 평균, 적정지침들이 가득하다. 온갖 다양한 SNS에서 온갖 다양한 게시물들을 올리고, 추적하면서 비교하고, 올라가고 과시하고, 부러워하고 자괴감을 느끼고, 끝없이 ‘알 수 없는 어떤 가치’를 가장한 경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소설의 ‘셀프메이커’는 그 온갖 다양한 앱들을 총망라한 빅브라더로 대중의 생각과 행동을 유도하고 통제하면서 그것을 스스로 하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하는 것이다. 시스템 오류가 보여준 진실은 ‘진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진짜로 보이는 것’이다.      


작가는 릴케와 로댕의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셀프메이커 앱 셀프가 어떻게 를 비롯한 수많은 가 또 다른 형태의 빅브라더에게 굴복하는지를 알려준다동시에 진짜 의 모습을 누가 결정하는지혹은 결정해야 하는지에 관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먼저이것은 표면적으로 언급된 의미를 실현하기 위해끊임없이 바람직한’ 삶의 방식을 실천하는 것이다. ‘너’가 셀프의 메인화면에 떠오른 문구를 볼 때마다 손마디가 저릴 정도의 두근거림을 느꼈다고 했는데, 순진한 대중들의 반응도 비슷할 것 같다. 그것은 ‘그래야 한다’는 당위성이고, 실제 그 당위성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마침내 실천했을 때 우리는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셀프메이커는 그 숨겨진 메커니즘을 생각해본다면 소름 끼치지는 두려움이 될 수도 있다우리가 마주할 수 있는 많은 자기 계발 서적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수많은 동기부여의 격언들은 우리가 제시된 격언대로 하지 않으면 게으르고 한심한 사람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짜들 사이에서 진짜처럼 느끼고 진짜로서 존재하기를 갈망했던 릴케는 로댕에 대한 논문을 쓰면 그런 삶이 가능할 것이라 믿었고 두 사람은 그렇게 가까워졌다. 릴케는 로댕에게 진짜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진짜 예술과 진짜 삶은 무엇인지 끊임없이 물었다. 그때마다 로댕의 답은 한결같았다. -중략- 편안한 삶의 방식을 포기해라,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속물적인 만족을 버려라, 계속해서 공부해라, 노력해라. 너는 너의 삶을 바꿔야 한다. (너는 너의 삶을 바꿔야 한다, p157)     


나 자신도 지금까지의 온 삶을 그렇게 누가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검열하고 스스로 채찍질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자아 계발이라는 것을 해 왔던 것 같다게을러지려고 할 때마다 자기계발서를 찾았던 것 같다. 어쩌면 우리 대다수는 그렇게 교육받았고, 그래야 성공할 수 있다고 들어왔다. 그 성공은 결국 상위 몇 % 안에 드는 것으로 증명해왔다. 그러니 필연적으로 누군가는 상위 몇 % 이하이고, 이하인 이들은 삶이 이하가 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로댕과 릴케, 모두 예술가로서의 치열한 삶과 가족에 대한 책임을 함께 지고 가는 것을 너무나 버거워했고, 독립적이고 야망 있는 여성에게 끌리면서도 정작 결혼 상대들은 자신의 야망을 위해 희생하는 여인들을 선택했던 두 사람이었다는 것.     


명성이란 결국 하나의 이름 주위로 몰려드는 오랜 오해들의 총합에 지나지 않는다.’     


릴케의 명언처럼 진짜들 사이에서 진짜처럼 느끼고 진짜로서 존재하기를 갈망했지만, 결국 릴케는 진짜로 보였던 명성이 하나의 이름 주위로 몰려드는 오해들의 총합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으로 로댕에게 고백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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