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56 그리고 119
[그러나 포퍼도 모든 종류의 혁명에 반대하지는 않았다. ... 이렇게 본다면 전제정치를 타도하고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민중이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불가피하고 정당하다. 단, 민중의 저항권 행사는 독재를 타도하고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세우는데서 멈춰야 한다. ... p181. 이런 조건에서 민중이 저항권을 행사할 수 있는 방법은 '연속. 동시다발. 전국적 동시봉기' 뿐이었다. 다른 방법으로는 국가의 폭력에 맞설 수 없었다. ... 독일과 일본 적군파가 벌인 시설파괴, 요인 암살, 항공기 납치와 같은 일은 우리 민주화운동 역사에서 한 번도 없었다. 테러는 대중의 참여를 북돋우는 데 적합한 투쟁 방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민주화운동가들은 남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죽였다. 스스로 목숨을 버림으로써 대의를 알리고 대중의 관심과 각성을 일으키려 했다] (나의 한국현대사/유시민/돌베개/2024)
요즘 읽고 있는 책, 유시민 작가의 [나의 한국현대사]에서 나온 내용이다. 민중의 저항권 행사는 민주주의가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수단이며, 그 수단 또한 파괴나 테러가 아닌, 자신을 희생을 통해서 실천하는 것이다.
윤석열 계엄령 = 123456
누군가 12월 3일 윤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를 이렇게 정의했다고 한다. ‘12월 3일, 45년 만의 6시간 동안 일어난 일’이라는 의미로 생긴 말이다. 이미 12월 3일 이후 55일이 흘렀다. 그 사이에 벌어진 모든 일들은 '헌정사상 최초' 혹은 '헌정사상 초유'라는 수식어가 붙여졌다. 2024년 연말, 먹고 사는 일, 살림살이가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것을 몇 년째 느끼고 있지만, 그저 시간이 지나가면 괜찮아지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닌, 정책별 찬성과 반대가 있는 '실용주의'에 가까운 개인이다. 세계 정치와 경제 상황을 이해하려 뉴스를 살펴보고,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도 생각해보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는 젊은 날의 객기와 무모함은 점점 쪼그라들고 있고, 정치적이든 경제적이든 어느 정도 현 상태를 유지하고 싶은 '안정 추구'의 '보수적' 색채가 '실용주의'의 이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결국, 나는 '안정 추구'가 가장 중요한 전제로 깔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119 서부지방법원 폭동
그런데, 2025년 1월 19일 그야말로 '폭동'이, 그것도 법원 시설을 파괴하는 폭동이 일어났다. 사실, 123 계엄령도 한 인간의 미숙한 판단, 혹은 광기로 '발생 가능'은 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이익, 혹은 좋게 말해 신념에 따라 이를 옹호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그러나 119 서부지방법원 폭동은 참을 수 없는, 차마 있었다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를 극심한 불안으로 밀어 넣는 끔찍한 '테러'였다. 그야말로 우리나라 헌정 사상 최초요, 그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는 폭동이었다.
119 폭동에서 나온 말이 '저항권'이었다. 기독교의 이름으로 정당을 만들고 직함을 목사로 하는 어떤 이의 선동에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고, 그를 추종하는 정치색이 강한 어떤 이들의 격려에 고무되었을 수도 있고, 동영상 크리에이터 활동으로 큰 돈을 벌고 싶은 순수 자본주의적 발로에서 행동했을 수도 있을 그들이 칭하는 소위 '저항권'은 실제로 '그날 밤 그들만의 그들에 의한 그들만을 위한 폭동'이라고 해야 한다. '그들'은 어떤 면에서 참 딱한 사람들이다. '계몽하고자 하는' 그들보다 '위에 선' 자들의 '명령 혹은 지시 혹은 계몽'에 의해 '행동' 대장이 되어준 것이다. 물론, 행동 대장들은 그들 식의 보상을 받기도 하고, '위에 선' 자들의 소기의 목적 달성을 위해 희생된 후 버려지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특히, 젊은 행동 대장들이 한없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젊은 행동 대장들은 '저항권'의 진정한 의미를 알고 '저항'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