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다방에서 마주친 세대의 온도차

by 해달

별다방에서 마주친 세대의 온도차


점심을 먹고 제법 나른한 오후 두 시, 한 동네 사는 네 명의 친구들이 차 한잔하기로 했다. 네 명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친구의 집 바로 앞에 별다방이 있어서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거기에서 자주 본다. 오늘도 잠시 얼굴 보고 약간의 수다 시간을 가질 요량으로 별다방에서 약속을 잡았다. 나도 걸어서 갈 거리라 운동화를 신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을 나섰다.


별다방은 늘 그렇듯이 약간은 어수선하지만 다양한 연령대와 다양한 스타일과 온갖 다양한 사람들로 가득 찬 그런 느낌을 전달한다. 자리가 산발적으로 드문드문 비어있고, 우리는 모두 네 명이니까 네 명 자리를 찾아야 했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막 20대가 된 듯한 앳된 여학생이 동그란 테이블 두 개를 붙이고 혼자 앉아있었다. 한 테이블 위에는 라떼를 올려놓고, 다른 한 테이블 위에는 아이패드를 펼쳐놓고 그 앞에는 노트 한 권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 위로 휴대폰을 올려놓고 보고 있었다. 그 여학생의 자리 옆으로 두 명이 앉을 수 있도록 배치된 동그란 테이블 하나와 의자 두 개가 있었다. 나는 가운데 서서 양쪽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그 여학생에게 다가갔다.


“저, 학생, 미안한데 혹시 옆자리에 일행이 있나요?”

“아니요.”

“아, 그럼 우리가 네 명이 앉을 거라 옆에 2인용으로 옮겨줄 수 있을까요?”

여학생의 표정이 좋지 않다. 눈을 바라보았는데, 정말 눈빛으로 거부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왜 그래야 하죠? 그게 나와 뭔 상관?! 전 4인용에 앉는 것이 훨씬 편한데!’

그런 속마음이 느껴져서일까, 나는 조심스럽게 괜찮다는 듯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싫거나 불편하면 그렇다고 말해도 돼요.”

놀랍게도 여학생은 내가 그렇게 말하자마자 빛의 속도로 말했다.

“네, 그냥 있을래요.”

“네, 그래요.”


그리고 나는 다른 방향으로 걸어갔다. 마침 부부로 보이는 두 남녀가 막 4인용 테이블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나는 그 옆쪽에 서 있다가 그들이 완전히 일어난 후 자리에 앉았다. 바로 이어 나의 일행들이 하나둘 도착하고 앉은 자리에서 그 여학생이 있는 쪽을 힐끔 쳐다보았다. 그 여학생은 휴대폰으로 무언가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별다방 안을 찬찬히 둘러보니, 꼭 그 여학생이 아니더라도 혼자서 4인용을 떡하니 차지하고 있는 이들이 제법 된다. 이 일을 친구들에게 얘기하니 소크라테스 시대부터 유행하던 말이 나온다. ‘요즘 애들’


요즘 애들의 문제가 맞나? 돌이켜보니 우리의 사고방식이나 예의의 범주도 많이 바뀐 것 같다.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표현하는 것은 바람직한 것 같다. 타인의 부당한 요구에는 논리적인 근거를 들어 거절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경우도 그럴까? 딱히 그렇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그건 그 여학생의 태도가 당연해서가 아니라, 어쩌면 나는 그런 식의 사고방식과 태도를 이미 많이 겪어왔고, 그래서인지 놀랍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그런데도 뭔가 아쉬움이 계속 남는다. 그래, 아쉽다. 사소하지만 이런 일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꼰대’라고, 혹은 역으로 ‘당신이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비난을 받으려나? 나는 처음부터 혼자 간 것이라면, 4인용에 앉지도 않지만, 혹시라도 그런 상황이라면 당연히, 오히려 미안해하며 바로 옮겨주는 삶을 살아왔고, 내가 알고 있는 대부분 사람들이 그래왔기 때문일까, 여전히 그 여학생이 아쉽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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