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가 우산 안으로 들어왔다

by 해달

H도 나도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다. 괜히 연락하고 싶고, 목소리를 듣지 않으면 허전하고, 목소리를 들으면 얼굴을 보고 싶고, 그런 마음들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던 것은 당연했다. H도 나도 그런 감정을 처음 느껴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고 그래서 더 다가가지 못하고 밀어내기 위한 이런저런 시도를 해봤던 것 같다.


그리고 H는 나에게 일종의 소개팅을 제안했다.

“너, 내 친구 S가 만나보고 싶대. 편하게 밥 한 끼 사주고 싶다고. 만날래?”

어색하게 말을 꺼낸 H는 진짜 소개팅을 시켜주고 싶지 않은 사람처럼 말끝을 흐렸다. 내가 소개팅을 해달라고 조른 것도 아니고, H가 사교적인 성격은 아니라 친구가 많아 보이지도 않았다. 갑자기 소개팅이라니. 나는 순간 당황했지만,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으므로 얼른 대답했다.

“네. 밥 사주면 좋죠, 뭐. 어디로 가면 돼요?”

“그, 그래? 그래. S랑 너랑 중간지점이, 교대역인 것 같다. 교대역 쪽에서 봐라.”

H가 지금 막 정해버린 약속 장소가 교대역 근처였다.


그리고 약속 날 밤, 날은 흐렸다. 나는 S와 교대역 근처 어느 카페에서 만났다. 규모가 꽤 큰 카페였던 것 같은데,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닐 법한 장소에서 바로 보이는 조금 화려한 곳이었다. 카페 문을 열 때 문에 달려있던 작은 종에서 딸랑딸랑 소리가 났고, 카페 안 창가 쪽에서 문을 바라보고 앉아 있던 S가 손을 들었다. S는 금방 나인 줄 알아본 것 같았다. 이런 소개팅 자리는 처음이었고, 당연히 모든 것은 어색함의 연속이었다.

S는 유쾌하고 지적 호기심이 많은 공과대학교 3학년 학생이었다. 그는 꾸미지 않은 담백한 말투로 편안하게 대화를 이끌었다.

“H를 통해 너에 대해 들었는데, 네가 궁금했어. 만나서 좋다. 나는 스토리가 있는 영화를 좋아하는데, 혹시 너는 어떤 영화 좋아해?”

“아. 네. 저는.”

나도 스토리가 있는 영화를 좋아했다. 사실 나는 공포물이나 스릴러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로맨틱 영화나 다큐멘터리 영화, 감동이 있는 독립영화를 좋아했다. 그런데 왠지 막 수다스럽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마도 처음 만난 낯섦 때문이겠지.

“언제 시간 되면 영화 같이 볼까?”

“아. 네. 그러죠.”


말끝을 흐렸지만 성실하게 대답했던 것 같다. 어쨌든 S는 H가 소개해 준 사람이었고, 꽤 괜찮은 남자라고 느껴졌다. S는 괜찮은 집의 괜찮은 성격을 지닌 소개팅 상대로 손색이 없는 그런 남자였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밤이 늦어지고 S가 시계를 보며 말했다.

“이제, 갈까?”


우리가 나왔을 때 밤은 어둡고, 후득후득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차가운 빗방울이 눈 속으로 들어왔고, 얼굴에 떨어졌다. S는 등에 메고 있던 백팩에서 검은색 우산을 꺼냈다. 그리고 나에게 건네주었다. 내가 우산을 펼쳐 들었고, 그가 우산 안으로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