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by 해달

비가 내렸고, 약간 쌀쌀한 늦가을 날씨는 가슴까지 한기가 느껴졌다. 검은색 우산 안에서 S는 조금 더 저돌적으로 다가왔고 비에 젖지 않기 위해 내 팔짱을 끼었지만, 난 그저 어색하고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H는 왜 나에게 S를 소개했을까? S는 어떻게 나에 대해 알았을까? H는 S와 무슨 관계일까? H는 내가 S와 잘 되길 바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느라 내가 S에게 무슨 말을 지껄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H가 도서관에서 볼 것 같다고 전화했다. 어느 도서관인지는 자신도 모른다고. 도대체 그럼 왜 전화를 한 거야? 도서관에서 나를 볼 것 같다니! 그런 이상한 말을 하려고 전화한 거야? H의 말하는 특성이 그랬다. 돌려 말하고, 비유적으로 말하고,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려고 하는 사람처럼. 그러면 나는 H의 속 마음을 보고 싶어서 다른 말들을 해본다. 하지만 나 역시 직접적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했다. H의 말을 받아 내 맘대로 이해하고, 그걸 바탕으로 다시 비유적으로 말하고 H가 반응하기를 기다렸다. 그러다 가끔은 괜스레 뾰로통해졌다.

‘쳇, 상관없다고. 나도.’


이른 아침, 중앙 도서관으로 향했다. 서초역 6번 출구로 나와 반포역으로 가는 길을 따라 한참을 걷는다. 몽마르뜨 공원을 지나면 도서관으로 향하는 길이 나 있었다. 도서관 뜰 안은 가을, 낙엽이 거리에 온통 아픔을 간직한 채 나뒹굴고 있었다. 서둘러 도서관 건물로 들어가 열람실 번호를 골랐다. 일찍 와서 그런지 어느 정도 마음에 드는 자리를 고를 수 있었다. 창가 쪽에 가까운 자리, 61번으로 정했다. 10시가 넘어서일까. 화장실에 다녀왔는데 자리에 쪽지가 있었다. 펼쳐보니 누가 썼는지 모르지만, 알 것 같은 글씨체였다.

‘벽다방 미스자 알지?’


전공 공부를 조금 더 하다가 10시 40분쯤 자리에서 일어났다. 중앙 도서관은 누군가를 우연히 만나기에는 무척 큰 도서관이었다. 수많은 열람석, 그리고 몇 개나 되는 벽다방들. 그냥 발걸음이 가는 대로 갔다. 그리고 거기에 H가 앉아 있었다. 두서없이 H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너, 내 자리에 앉았더라.”

“네? 무슨 말이에요?”

“아냐, 그런 게 있어. 61번. 암튼, S는 이상한 말을 하더라.”


미스자에게서 블랙커피 한잔을 받아 한 모금 들이켰다. H는 여기서 말하기 좀 그렇다고 건물 밖, 뜰로 나가자며 옷소매를 살짝 잡아끌었다. 우리는 이른 아침과는 달리 잦아든 바람에 평온해진 가을 낙엽들을 바라보며 걸었다.

“S는 너한테 관심이 있는데, 너는 딴 얘기만 딴 사람 얘기만 했다고. 그 사람은 누구야?”

“네? 글쎄요. 무슨 말인지.”

H는 잠시 얼굴이 붉어지더니 힐끗 나를 쳐다봤다. 그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아, 나는, 아니 S는 몰라. S는 너 다시 만나보고 싶대.”

평소 무척 침착하고 가끔은 너무나 논리적으로 말하는 H가 살짝 무섭게 느껴질 때도 있었는데, 이렇게 횡설수설하는 H가 낯설게 느껴졌다.

“저도 싫지는 않았어요. 그 오빠 따뜻하고 재밌어요.”

“그래? 그래, 그래. 그럼, 한 번 더 만나봐. S도 그러니까.”


며칠 뒤 S와 나는 서로 직접 연락해서가 아닌 H가 지정한 장소에서, 그러니까 교대역 근처 지난번 처음 만났던 카페에서 두 번째 만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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